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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수입된 지 백년도 안 된 고무신, 전통신은 아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996]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잡지 《조선》 1923년 1월호에 수록된 “호모화(護謨靴)에 관한 조사”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호모화의 유입은 1919년경부터 개시되어 당시는 양화형(洋靴型)의 것으로 극히 소량에 불과했으나, 1921년 봄 무렵 선화형(鮮靴型)의 것이 나타나자마자 별안간에 조선인들의 환영을 받아 도시에서 시골로 보급되고 지금은 한촌벽지에 이르기까지 잡화상의 점두(店頭)에도 고무신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 질기고 질겼던 60~70년대의 타이야표 통고무신

여기에 나오는 ‘호모화’라고 말은 곧 ‘고무신’을 이르는 것인데, ‘호모’는 ‘고무’의 일본어식 음차(音借)표기입니다.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을 잡지 《조선》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지요. 처음에는 서양식 구두를 본떠 단화 형태로 나왔지만 나중에 조선식으로 개량해 나온 뒤 도시는 물론 시골두메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린 듯합니다.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신어온 짚신을 팽개치고 고무신 한 짝을 갖는 것을 소원할 정도가 되었던 게지요.

이러니 다투듯 고무신 공장이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대륙고무공업’은 광고 문안에 순종 임금은 물론 모든 궁인들이 다 대륙고무가 만든 고무신을 애용한다고 광고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고무신에 큰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땀이 나면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그 바람에 발에 부스럼이 나 문제가 된다는 기사가 날 정도였습니다.

 

   
▲ 동아일보 1921년 8월 19일 자 고무신 광고

이런 문제점과 함께 전 세계적인 대공황의 여파로 한층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들어 고무신 배척과 함께 짚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싸고 질긴 고무신의 인기는 사그라질 줄 몰랐습니다. 그 뒤 60~70년대는 타이야표 통고무신의 유행이 일기도 했지요. 어쨌든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도 안되는데 고무신이 마치 우리의 전통신인 줄 착각하여 여성들이 한복을 입을 때 꽃무늬가 그려진 고무신을 신어야 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전통신이라 하면 짚신과 함께 양반들이 신었던 태사혜, 흑혜, 당혜 따위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