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교자(轎子) 타는 금법(禁法)을 거듭 밝히어 당상(堂上) 수령으로 2품과 승지를 지내지 않은 자는 쌍교(雙轎)를 타지 못하게 하고, 당하(堂下) 수령은 지붕의 있고 없음은 물론, 가마를 모두 금하소서. (가운데 줄임) 이후부터 관찰사가 일일이 적발하여 임금에게 글로 올리게 하고, 찰방(察訪, 역참(驛站)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 발각하지 않으면 역마(驛馬)를 빌려준 죄로 벌하소서." 이는 《숙종실록》 숙종 37년(1711년) 11월 2일 기록으로 ‘교자(轎子)’란 조선시대 종일품 이상의 벼슬아치와 기로소의 당상관이 타는 가마를 이르던 말입니다. 특히 말 2필(匹)이 끌고 가는 가마(駕馬) 곧 쌍교(雙轎)를 아무나 타는 일이 잦자 조선 중ㆍ후기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전반을 총괄한 실질적인 최고의 관청인 비변사가 임금에게 청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품계에 따라 수레나 가마를 타는 데 차등을 두었던 교여지제(轎輿之制)가 있었지요. 이에 따르면, 평교자(平轎子)는 일품과 기로(耆老:60살 이상의 노인), 사인교(앞뒤로 네 사람이 메는 가마)는 판서 또는 그에 해당하는 관리, 초헌(軺軒, 외바퀴 가마)은 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물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가 있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황제의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국새를 만들었는데 이 유물의 제작과정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서 등극하는 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大禮儀軌)》를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으며, 대한제국의 국새 전반의 현황을 기록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서도 그 형태와 재질 그리고 실제 사용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새 칙명지보’는 용 모양의 손잡이[龍鈕]와 몸체[寶身]로 구성되어 있지요. 손잡이의 모양은 용 형태로서 용머리에는 사슴뿔이 솟아있고 코에는 여의두문이 있으며, 입을 벌린 채 이빨 2개가 아래로 삐져나와 있고, 여의주를 물고 있습니다. 몸 전체는 비늘이 덥혀있고, 등을 위로 솟구친 반원형입니다. 서체는 대한제국의 옥새와 같이 소전(小篆, 전서체의 하나)이며, 문자가 균일하고 좌우대칭의 정제된 형태로 나타나 제왕의 냉엄한 권위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칙명지보는 통신조서에 사용한 것인데 품질이 가장 좋은 은 곧 천은(天銀)에다 금도금한 것으로 인수(印綬) 곧 끈은 없어졌습니다. ‘국새 칙명지보’는 대한제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실없이 가을을 - 나해철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 지난 10월 24일이 상강(霜降)이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풀과 나무)들은 자람을 멈춘다.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데 들판과 뫼(산)는 깊어진 가을을 실감케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운문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을 얘기했나 보다. 이제 상강도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이 깊었다. 엊그제 한낮의 기온이 20도를 웃돌 듯하더니 이제 겨우 10여 도를 넘길 만큼 쌀쌀해졌다. 농촌 들녘도 가을걷이가 끝나고 휑한 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선왕의 장례와 우리 태조의 장례에 저자의 잡색 여자들을 불러다 울며 따라가게 하고, 이를 통곡비(痛哭婢)라 하는 것이 진실로 좋지 못한 일입니다. 삼가 《두씨통전(杜氏通典)》ㆍ《당원릉장의(唐元陵葬儀)》에 보면, 공주와 내관 등이 둘러싸고 모두 울고 발을 구르고 하며 따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태행 상왕(太行上王)의 장례에는 공주는 후궁으로 대신하고, 사정이 있으면 관비(官婢)로 울며 따라가게 하소서.” 위는 《세종실록》 1년(1419) 12월 21일 기록입니다. 판소리 <흥보가>에 보면 흥보가 매품을 팔러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위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왕실 장례식에 우는 노비 곧 통곡비(痛哭婢, 또는 곡비)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없어진 풍습이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상가에 울음소리가 있고 없음에 따라 상가의 수준을 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상주들은 장례식 때 곡하는 여인들은 고용하기도 했지요. 대신 울어주는 여성인 통곡비는 왕실의 장례식뿐만이 아니라 왕릉을 옮길 때와 사대부가의 장례식 때도 썼다고 합니다. 고구려 때에는 장례식 때 북을 치고 풍악을 울렸다고 하는데 성리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먹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란 구절을 정운복이 쓴 《행복한 그루터기》라는 책에서 본다. 그는 <우리문화신문>에 ‘정운복의 아침시평’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원 동산중학교 교장으로 “봄향기를 대하며 더불어 사람 냄새나는 싱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날마다 아침 편지를 써서 번개글(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란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제가 30년 넘게 아침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고 글 쓰는 잔재주를 드러내려 함도 아닙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공중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어두운 소식들 흉악범, 사기군, 협잡꾼,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상. 하지만 흉측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많고 아프고 슬픈 것보다는 기쁜 것이 더 많고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의 가치가 더 큼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땅이 척박해도 풀들은 제각기 뿌리를 내리고 아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8년부터 추진해 온 경복궁 계조당 복원사업을 마무리하고 9월 20일부터 복원한 계조당 권역을 국민에게 공개했습니다. 계조당은 왕세자의 공간인 경복궁 동쪽에 자리 잡은 동궁(東宮) 권역의 일부로서, 세종대왕을 대리하여 정무를 맡았던 세자(문종)가 썼던 건물입니다. 특히, 신하가 왕세자에게 하례를 드리고 잔치를 여는 등 동궁 정당(正堂)의 기능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의 권위와 후계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계조(繼照)’는 ‘계승해(繼) 비춰준다(照)’라는 의미로 왕위계승을 뜻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0년경 헐어버렸습니다. 이번에 복원한 계조당 권역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본당, 의례에 필요한 월대, 주변부 행각(行閣, 건물 앞이나 좌우에 지은 긴 줄행랑)과 담장 그리고 외곽 담장부 봉의문입니다. 문화재청은 복원과정에서 다양한 고증자료를 수집하고 관계전문가의 검토를 거쳤으며, 목재ㆍ석재ㆍ기와 등도 문화유산 수리장인이 손수 제작ㆍ가공하는 등 전통재료와 기법을 충실히 적용하였습니다. 복원이 끝난 계조당 권역은 경복궁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별도의 사전 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완창판소리-정순임의 흥보가>를 11월 11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이자 여든을 넘긴 관록의 정순임 명창이 깊은 공력의 소리로 박록주제 ‘흥보가’를 들려준다. 1942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정순임 명창은 판소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집안의 계보를 이어 판소리 계승ㆍ발전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고종의 교지를 받은 어전(御前) 명창 큰 외조부 장판개와 ‘8잡가꾼’으로 불릴 만큼 기예가 출중했던 외조부 장도순을 시작으로, 외숙부 장영찬 명창과 어머니 장월중선 명창의 계보를 이은 정순임 명창의 가문은 2007년 문화관광부가 뽑은 ‘전통예술 판소리 명가’(3대 이상 전통예술 보전․계승에 앞장서 온 가문) 1호로 지정됐다.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ㆍ거문고ㆍ아쟁 등의 기악을 비롯해 춤에도 능했던 예인 장월중선 아래서 태어난 정 명창은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좋아했다. 1950년대에는 임춘앵의 국악단 공연에 매료되어 소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단체에 입단하기도 했다. 이후 정응민 명창에게 ‘춘향가’ 일부를, 장월중선 명창에게서 ‘춘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입니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수증기가 땅 위에서 엉겨서 서리가 내리는 때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지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옛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라는 뜻입니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지요.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요긴하고,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두물머리 위로 수종사의 종소리가 물안개 사이로 걸어 나오는 잔잔한 걸음이 이른 아침 두물머리에 가면 우린 안개를 본다. 그런데 이규복 시인은 그 안개 사이로 수종사의 종소리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단다. 그렇게 아름다운 두물머리 나룻터에서 어제 10월 22일 낮 12시 (사)배뱅이굿보존회 경기도지회(지회장 전옥희)가 주최하는 제19회 <황포돛배야, 두물머리 강변에 살자> 잔치가 펼쳐졌다. 이 잔치는 벌써 19번째가 되며, 2023년 양평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행사ㆍ축제 지원사업으로 뽑혔는데 양평군ㆍ양서면ㆍ양평문화재단ㆍ양평문화원ㆍ(사)향두계놀이보존회ㆍ(사)한국국악협회의 후원으로 열린 것이다. 잔치는 두물머리 나루터 들머리부터 시작하여 행사장까지 두물머리풍물단이 길을 트고 출연자들이 함께하는 지신밟기로 시작되었다. 이날 잔치를 시작하면서 잔치를 이끄는 전옥희 (사)배뱅이굿보존회 경기도지회장은 “마지막 황포돛배 선조들의 애환과 삶을 품고서 두물머리 강변에 길이길이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과 손잡고 천혜의 자연 나루터 터전을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양평군의 소중한 문화예술의 발전에 우리 모두 예술인단체와 함께 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는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아래 《실록》) 가운데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 시기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사실을 연월로 기술하는 편찬 방법)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1624년(인조 2)부터 편찬이 시작되었고, 1633년(인조 11) 중초본(中草本)’ 1부가, 이듬해 5월에 중초본을 검토하고 옮겨 쓴 정초본(正草本) 2부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일기》 중초본’은 태백산 사고(경북 봉화)에, 정초본 2부는 정족산 사고(강화도)와 적상산 사고(전북 무주)에 1부씩 봉안(奉安)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해군일기》는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1책(권55-58)으로, 1612년(광해군 4) 7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비운의 임금 광해군 광해군은 1575년(선조 8) 선조와 후궁 공빈 김씨(1553~157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어 전란의 수습에 힘썼으며, 1608년 선조의 뒤를 이어 조선 제15대 임금으로 즉위했습니다. 광해군은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