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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스승으로 둔 교장선생님

《행복한 그루터기》, 정운복, 생각나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먹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란 구절을 정운복이 쓴 《행복한 그루터기》라는 책에서 본다. 그는 <우리문화신문>에 ‘정운복의 아침시평’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원 동산중학교 교장으로 “봄향기를 대하며 더불어 사람 냄새나는 싱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날마다 아침 편지를 써서 번개글(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란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제가 30년 넘게 아침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고 글 쓰는 잔재주를 드러내려 함도 아닙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공중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어두운 소식들 흉악범, 사기군, 협잡꾼,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상. 하지만 흉측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많고 아프고 슬픈 것보다는 기쁜 것이 더 많고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의 가치가 더 큼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땅이 척박해도 풀들은 제각기 뿌리를 내리고 아무리 세상이 어둡다고 해도 사람들은 희망의 작은 촛불을 켭니다. 누구에겐 스팸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지워야 하는 귀찮은 쓰레기일 수도 있으며 누구에겐 안구(眼)의 노화(化)만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작은 촛불을 켜는 마음으로 오늘도 자판을 두드립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그의 책 서평을 쓰고자 한 것은 그저 지인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날마다 그에게서 날아오는 글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그런 글들을 엮어 책을 낸다는데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내는 편지글을 보면 우리 고전과 중국 고전은 물론 서양 철학자들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를 활용해서 우리에게 잔잔한 알림을 보내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그는 텃밭을 가꾸면서 배운 철학을 담담하게 얘기해준다.

 

“텃밭은 단순히 먹거리를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키워내는 작물들의 성장을 보면서

과정의 기쁨을 맛보고, 잘 돌보는 만큼 풍성함으로 되돌려주는 땅의 정직함을 배우는 자연 학습장입니다. 욕심을 부린다 한들 더 많이 걷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씨앗을 촘촘히 뿌린다고 한들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안달한다고 해서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씨앗의 발아부터 성장하고 열매 맺는 과정을 충실히 겪은 후에야 가을의 수확을 맞이할 수 있으니 텃밭은 그 자체가 좋은 스승입니다. 올해는 쌈채를 두루두루 심고 호박과 가지, 열무를 한 고랑 가득 심어 결과물을 공유하는 행복을 누려볼까 합니다. 땅만 파놓고 결과를 꿈꾸는 것은 이른 일일지 모르겠으나 봄의 나른한 햇살만큼 푸근한 땅의 정감을 온몸으로 느낀 아침이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문득 나도 텃밭에서 푸성귀들을 가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텃밭을 스승으로 둔 그가 부럽기만 하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학자가 아이들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합니다. 싱싱할 딸기 한 바구니를 놓고 가장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딸기를 모두 주겠노라고 한 것이지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바구니에 도착하여 둘러앉아 딸기를 맛있게 나누어 먹지요. 학자가 묻습니다. ‘1등으로 가면 모든 딸기를 차지할 수 있는데 왜 같이 달렸느냐?’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어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구동성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책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예다. 그는 '우분투(UBUNTU)'라는 아프리카어가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본받으라고 귀띔한다.

 

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지식과 행복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그것을 나눠주려고 아침마다 자판을 두드리고 드디어 《행복한 그루터기》라는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다만 이 책은 글로만 채우고 있는데 가끔 삽화나 사진을 넣어 풍성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런 약간의 아쉬움이 이 책의 훌륭함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이 《행복한 그루터기》는 나의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꺼내 보면서 가슴을 그의 덕으로 채우고 그 덕의 향기가 만리에 퍼져 그가 소망하는 꿈을 이루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그루터기》, 정운복, 생각나눔,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