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다음날 먼저 찾은 곳은 조캉사원이다. 많은 티베트인들이 사원에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고, 사원 주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우리도 조캉사원은 오후에나 들리기로 하고 시계 방향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있다고, 나는 갖가지 복장과 표정의 티베트인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입속으로 중얼중얼 끊임없이 만트라를 암송하는 사람, 삼보일배로 이마까지 땅에 대며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티베트 그 넓은 땅 각지에서 삼보일배로 고향을 출발하여 이 조캉사원까지 오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한다지 않는가? 오체투지를 하고 일어서는 사람들마다 이마에는 둥그렇게 흙이 묻어 있거나 아예 혹이 생겨났다. 무엇이 이들 티베트인들로 하여금 이런 고행 속에 자기 신앙을 지키게 하는 것일까? ▲ 조캉사원 주위를 도는 순례자와 삼보일배 하는 한 아이 ▲ 오체투지하는 순레자 그런데 그런 티베트인들 틈에서 눈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푸른 제복에 총을 든 사나이들. 저쪽 옥상에도 군인들이 보인다. 혹시라도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 친일문학인들과 달리 붓을 꺾었던 늘봄 전영택 다시 한 칼이, 내 가슴에 원수 왕의 충신 되란 맹세리니 이 맹세 내 붓으로 써 펴내라니 아프구나 이 칼이 더 아프구나 몇 십 년 아낀 내 붓 들어 이 글을 쓰단말가 꺾어라, 꺾어라, 내 혼도 꺾이누나. 늘봄 전영택 선생의 벽서라는 시입니다. 선생은 일제 말 왜놈들이 우리의 문학인들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의 글을 강요할 때 저 벽서라는 시를 쓰고 붓을 꺾습니다. 서정주,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요와 협박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들이 요구하는 붓을 들 때에 늘봄 선생은 붓을 꺾었습니다. 늘봄 선생을 보면서 저들의 말은 한낱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그리고 일제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게 중에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친일의 붓을 놀린 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설가 김동인씨는 일제가 항복 선언하기 불과 2시간 전까지도 총독부 학무국을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을 꾸리자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놓기까지 합니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의 붓을 들 수밖에 없다고 칩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비행기가 이륙한다. 계속 상승 비행을 하던 비행기가 이윽고 고도를 잡더니 수평을 잡고 날아간다. 그런데 수평비행 초기에 저 멀리 밑에 보이던 땅들이 어느 순간 그보다 많이 올라와 있다. 어? 언제 비행기가 하강비행을 하였나? 아닌데, 계속 수평 비행한 것 같은데? 그렇다. 비행기는 계속 수평으로 가고 있었고, 땅이 올라온 것이 맞다. 티베트로 가면서 땅은 계속 부풀어 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비행기는 수평으로 가고 있어도 땅이 다가오는 것. ▲ 라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밤새 기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였더니 눈꺼풀은 나의 의지를 이기고 나의 눈동자를 덮어버린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드디어 라싸에 도착하였나? 창밖을 보니 차창 밖의 풍경은 어딘가 낯이 익다. 왜일까? 그렇다. 그저께 돌아보았던 납백해의 풍경이 멀리 보인다. 이런! 다시 샹그릴라에 돌아온 것이다. 아니! 이렇게 샹그릴라에 내릴 거면서 왜 샹그릴라에서 라싸 가는 비행기표를 팔지 않은 것이야? 비행기는 샹그릴라 가는 사람 있을 때만 내리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예매를 할 때에는 이를 알 수 없기에 표를 팔지 않는 것이라나? 그것 참! 아직도 공산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이왕 다시 여강까지 왔으니, 오늘은 떠나기 전에 호도협 트레킹에서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던 옥룡설산의 품에 안겨보기로 한다. 차가 여강 시내를 지나는데 전면에는 옥룡설산의 웅대한 자태가 드러난다. 서울에서도 시내를 지나다보면 앞에서 북한산이 마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에서 전면의 옥룡설산을 바라보노라니 눈은 북한산 볼 때보다도 위로 동공을 확장해야 하누나. ▲ 여강 시내에서 본 옥룡설산 이제 눈앞에 옥룡설산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여기서 멈추고, 관광객들은 모두 이곳에서 제공하는 버스로 옮겨 타야 한다. 옥룡설산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려는 조치란다. 차창 밖으로 설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른다. 한 곳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데, 그 앞으로 설산에서 내려오던 물이 계단식 돌들을 타고 내려와 못을 이른다. 백수하(白水河)다. 옥룡설산에서 내려온 물이니 물은 옥빛으로 반짝이겠지? 물이 타고 흐르는 계단식 돌은 물속에 녹아있던 광물질이 계단식으로 침전되며 생기는 것인데, 사실 저 계단식 돌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얕은 물속에서는 야크가 놀고 있다. ▲ 백수하 ▲ 운삼평 오르는 케이블
▲ 이윤옥 《서간도에 들꽃 피다》 5, 도서출판 얼레빗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쓴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로 조명하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5권이 나왔습니다. 아무도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에, 우리가 잘 모르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 주리라던 이 시인의 집념이 어느 덧 5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군요. 한 권에 스무 분의 삶을 오롯이 드러냈으니, 이 시인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늦게나마 1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관순!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입을 우물우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지하기에, 그만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계속 시로 조명하는 이 시인의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리 박수를 쳐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인은 단지 책상머리에만 앉아 시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발품을 팔아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나섭니다. 이번에도 북간도로 날아가, 이의순 지사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와 중국 국경인 수분하 거리까지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과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샹그릴라에서 맞이하는 아침. 태양이 3,200m의 샹그릴라 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 위로 떠오른다. 샹그릴라라고 하여서인지 샹그릴라에 떠오르는 태양도 뭐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본다.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는 납백해. 대리와 여강에서처럼 샹그릴라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현지 가이드가 회족 전통 복장으로 버스에 올라탄다. 현지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간선도로를 달리다가 조그만 시골길로 꺾어 들어간다. ▲ 샹그릴라 시내에서 버스 타고 가는데 저 앞에는 4천m가 넘는 산이 보인다. 전면에는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병풍에 굵은 띠를 두른 것처럼 흰 구름도 산맥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높이가 이미 3,200m 정도이니 저 산맥의 높이는 4,000m가 넘는다는 얘기이구나. 그런데 갑자기 눈앞으로 여객기가 기수를 낮춰 들어온다. 여객기가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 왼쪽으로 샹그리라 공항이 여객기를 맞아들이고 있는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납백해는 길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 비가 오지 않아 그저 푸른 풀밭인 납백해 ▲ 비가 오지 않아 그저 푸른 풀밭인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트레킹 둘째 날이다. 오늘도 차마고도의 길은 별로 큰 오르막 없이 산허리를 따라 가거나, 절벽에 난 길을 따라간다. 협곡 밑에서 금사강이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절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그 옛날 마방들은 길을 내기 위하여 순전히 곡괭이와 망치 등만 사용하여 이 길을 냈을 것 아닌가? 길을 내다가 아차 미끄러져 저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은 이들도 많지 않았을까? 아까 길을 지나오면서 무덤들을 보았는데, 마방들이 이렇게 길을 만들다가, 또 길을 가다가 죽으면 그렇게 길옆에 영원한 안식처를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겨우 길을 낸 거라 바닥이 평평할 리가 없다. 미끄러지지 않게 발밑에 신경을 쓰면서 산허리를 돌아가니 저 산 높은 데서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 금사강의 급류 모습 ▲ 절벽에 난 차마고도 ▲ 절벽을 따라 흐르는 차마고도의 폭포 관음폭포(觀音瀑布)다. 단순히 소리를 볼 수 있는 폭포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여기서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았다는 얘기인가? 폭포를 조금 지난 곳에는 현관사라는 조그만 사당이 절벽 위쪽에 겨우 터를 잡고 있다. 올라가보나 문은 꼭 닫혀있어 안을 볼 수가 없다. 틀림없이 이
▲ 강제윤 시인의 《섬 택리지》 표지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강제윤 시인이 이번에 《섬 택리지》를 냈군요. 그 동안에도 계속 섬을 걸으며 느낀 점과 섬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 섬에 대한 애정 등을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보길도에서 온 편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 등의 책에 풀어냈는데, 이번에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섬들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것들을 《섬 택리지》로 풀어냈네요. 저는 예전에 글을 쓰면서 참조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강시인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강시인의 글에 빠져들면서 강시인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전부 다 검색하여 찾아내 일일이 제 컴퓨터에 복사하여 넣고 틈틈이 보았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내놓은 여러 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강시인도 인문학습원에서 [섬학교]와 [통영학교]를 이끄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도 섬학교나 통영학교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 일정이 잘 안 맞아 신청을 못하다가 작년 12월 13-14일에 열린 통영학교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강시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강시인이 《섬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차가 금사강(金沙江)을 따라서 합파설산(哈巴雪山)으로 접근하면서 금사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옥룡설산(玉龍雪山)도 점점 일어서고 있다. 이제 곧 합파설산과 옥룡설산이 가파르게 일어서면서 만든 깊고 좁은 협곡, 호랑이가 사냥꾼에 쫒기다가 훌쩍 뛰어 건넜다는 호도협(虎跳峽)이다. 금사강은 이제 곧 맞닥뜨릴 그 좁고 사나운 협곡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은 유유히 호도협을 향해 흐르고 있다. ▲ 황토빛 금사강의 모습 호도협 입구인 교두진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린다. 트레킹 출발지인 나씨야거에는 버스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차로 갈아타기 위함이다. 보통 많은 트레커들은 여기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하나, 우리는 시간 관계상 나씨야거까지는 차로 이동한다. 교두진에는 건축물이 들어서고 길이 닦이고 있는 것이 예전에는 새나 쥐나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하여 조로서도(鳥路鼠道)라고도 불리었다는 차마고도에도 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음을 실감하겠다. 이러다가 우리가 머리에 떠올리는 그 차마고도는 사진과 영상에서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차가 나씨야거를 향하여 올라간다. 길은 예전 마방들이 다니던 길을 작은 차가 다닐 수 있게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보았습니다. 제가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보았다고 하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하실 것입니다. 지금 덕수궁 중명전에서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다시 생각하는 전시회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당 이회영이라고 하면 지금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당 선생과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무슨 관계인가 갸우뚱 하시는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 뒤로 중명전이 보이고, 정문에 난잎으로 칼을 얻다 전시회 선간판이 걸려있다.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당 형제들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망명하여 경학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많던 재산도 봄눈 녹듯이 독립운동에 다 사라지고, 우당 선생은 배를 주려가면서 난(蘭)을 칩니다. 우당 선생이 난 그림을 잘 그렸거든요. 그러니까 전시회 제목은 우당이 난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는 뜻이지요. 전시회에 걸려 있는 서해성 작가의 시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이를 잘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이레에 세 끼 먹는 주린 북경의 밤, 홀로 부는 젓대가락에 얼었던 호야등은 펄럭이는데 붓을 높이 들어 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