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 구라하시 요코(倉橋葉子, 71)씨로부터 신문 기사 한 장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어제(7일) 석간 아사히신문이었다. 기사 내용은 50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일본인 기사였다. 이 기사는 6일(월)과 7일(화)에 걸쳐 2회로 연재했는데 구라하시 씨가 보낸 것은 2회차였다. 50년 전에 한글 교실을? 그렇다. 이날 기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와 그들이 현재 지속하고 있는 일을 두 팀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었다. 한 팀은 한국어를 배워 현재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의 수필을 읽고 있는 팀이고, 다른 한 팀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해 학살당한 조선인을 추도하는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61) 씨 이야기다. 이들은 1970년부터 ‘현대어학숙(現代語學塾)’이라는 한국어교실을 만들어 꾸준히 한국어 실력을 쌓아 왔다. 한국어교실은 김희로공판대책위원회가 사무실로 쓰기 위해 빌린 도쿄 요요기역 근처의 사무실이었다. 이들이 한국어교실 문을 연 계기는 1968년 재일동포 김희로 사건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김희로는 가난한 집안형편과 일본사회의 차별과 천대를 겪어내면서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세상에서 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교시절, 영어 외 제2외국어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억나는 외국어로는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실 영어도 외국어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항상 제2외국어 친구들과 거리를 둔 채 부동의 제1외국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특수 신분인 ‘영어’는 차치하고,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제2외국어교육의 문제점’을 두고 시정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시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곳은 ‘외국어교육정상화추진연합’(상임대표 단국대 정형 교수, 아래 ’정추련‘)으로 지난 8월 21일(토), 전국의 제2외국어 전공 교수 및 교사 130여 명이 비대면 화상으로 모여 열띤 토론을 했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2022 개정교육과정 외국어교육 전문가 정책토론회>였다. 왜 전국의 교사와 교수들은 제2외국어 교육에 대한 정책적 토론을 벌여야 했을까? 이날 토론한 ‘외국어교육 정책토론’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정추련에서 마련한 토론회 취지는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외국어교육 정책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해결방안을 교육부에 제안’하고자 함에 있었다. 이날 개회사에서 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올리버 알 애비슨((Oliver R. Avision)ㆍ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ㆍ스탠리 에이치 마틴(Stanley H. Martin) 선생을 ‘2021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세분의 선생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가혹하게 우리 겨레를 탄압한 조선총독부에 항의하고 그들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던 의료선교사들이다. 애비슨 선생은 1860년 영국 요크셔주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 6월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부임하였다. 1892년 제중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고종의 시의(侍醫)도 겸했으며, 의학교육도 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일어나자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발생한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 및 보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헌병의 가택 수색과 환자 이송에 저항하고 항의했다. 3·1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선교사 회의에서 한국인 차별 철폐, 집회ㆍ출판의 자유 등을 요구했고, 선생은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한국 독립 봉기(3·1운동)에 대한 비망록’을 작성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날은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뒤였다. 때마침 방학 중이었는데 학교로부터 교직원들을 긴급 소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로 달려가니 운동장 한편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학교측에서는 나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수업용으로 쓰던 각종 교재와 서적류, 공문서 등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나와서 구덩이에 던져 넣으라고 했다. 경황없이 주섬주섬 가져가 구덩이에 넣자 이내 불을 붙였다. 종이 서류들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던져진 물건 중에는 나무로 만든 가미다나(神棚: 일본의 가정이나 관공서, 상점 등에 꾸며 놓고 날마다 참배하는 작은 제단)도 있었다.” - 스기야마 도미 씨의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 가운데서- 조선에서 태어나 19살부터 대구달성공립국민학교 교사로 5년을 근무한 일본인 스기야마 도미(杉山とみ, 100살)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한국인이 맞이한 광복의 기쁨과는 정반대의 상황과 맞닥트렸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조국, 일본의 패전을 조선땅에서 맞은 것이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조선에 건너와 처음에는 전라도 영광에서 넓은 땅을 소유하고 과수원을 경영했으며 어느 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3년 9월 1일 낮 11시, 일본 관동지방(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 군마, 도치기, 이바라기, 치바현)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이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를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간토다이신사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관동대지진’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관동지방에 체재하던 조선인들은 일제의 조직적인 ‘조선인 학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지진으로 혼란한 틈을 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명목으로 도쿄ㆍ가나가와ㆍ사이타마ㆍ치바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들은 ‘조선인 폭동’에 대한 전문(電文)을 준비해 9월 2일 오후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後藤文夫)의 명의로 전국의 지방 장관과 조선총독부ㆍ타이완총독부에 타전했다. 전문 내용을 보면 “동경 부근의 대지진을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는 등 불령(不逞 : 불평불만이 많아 멋대로 함)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여, 현재 동경 시내에는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다. 동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윤봉길 의사 고향인 충남 예산군을 찾아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연다. 예산군은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포상된 247명의 독립유공자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인 38명을 배출한 지방자치단체다. * 건국훈장 4명(애국장 1, 애족장 3), 대통령표창 34명 이번 포상 전수식은 독립유공자 포상 확대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 발굴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예산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독립유공자 유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계획되었다. 포상 전수식은 31일(화) 저녁 4시, 예산군청 대회의실에서 진행되며,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황선봉 예산군수 등을 비롯해 이번에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 유족(손자녀) 6명이 참석한다. 행사는 국민의례, 포상 전수, 축사, 기념촬영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특히 전수식에서 독립유공자 발굴 및 포상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예산군에 감사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모두 38명 포상자 가운데 이번에 유족에게 포상이 전수되는 독립유공자는 6명으로, 고 박동복 선생(대통령표창), 고 신매손 선생(대통령표창), 고 윤칠영 선생(대통령표창), 고 정계호 선생(대통령표창), 고 정대홍 선생(대통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저는 신협(이하, 신용협동조합)을 사랑합니다. 왜냐구요? 우선은 신협의 주인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주인은 예금주가 아니라 주주이지만 신협의 주인은 조합원입니다. 이것이 신협을 영원히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하면 의료혜택을 줍니까? 그러나 신협은 조합원(가족포함)이면 누구나 다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창호 ‘나의 신협’ 글 가운데, 중앙신협회보 1978.2.15. -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며, 신협의 주인은 조합원(나)이라는 말이 꽤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1978년이면 이창호(더불어사는 사람들) 대표의 나이 22살 때다. 이창호 대표라고 하면 따라붙는 수식어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벼랑 끝에 놓인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3무(3無: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 대출? 헉 그런 곳이 있나 싶지만, 확실히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아파트를 사거나 큰 차를 사기 위한 대출이 아니라 당장 아파서 병원 갈 돈을 구하지 못한 사람, 쌀 살 돈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 적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주한인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홍명기 이사장이 18일(이하 현지시각) 87살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묵념으로 홍명기 이사장의 타계를 애도했다. 기자가 홍명기 이사장을 직접 뵌 것은 3년 전(2018)으로 그날은 LA 가든스윗호텔에서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있던 날이다. 광복절 기념식이라고는 했으나 참석해보니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동포들의 잔칫날과 다름없었다. 그날 정식 행사이름은 ‘제73주년 광복절 및 도산 기념동상제막 17주년 합동 기념식 –파이오니어 소사이티 연례 오찬회-’ 였다. 1부 기념식에 이어 2부에서는 점심모임(오찬회)답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동포들은 잡채, 부침개, 삼겹살, 호박죽 등 한국 음식들로 가득한 뷔페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잔칫집 분위기였던 기억이다. 이십 여 년째 ‘광복절 잔치’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홍명기 이사장이다. 고 홍명기 이사장은 특수페인트로 미국 시장을 석권한 듀라코트사를 세웠다. 홍 이사장은 1954년 유학으로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화학과를 졸업하고 26년 동안 화학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51살의 나이로 창업을 했다. 그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꽃은 늘 음지에서 자란다. 키큰 소나무 아래서 묵묵히 자신의 꽃을 피운다. 맥문동이 밝은 햇살아래 심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해바라기나 백일홍처럼 그들만의 꽃밭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대부분 큰 나무 아래 심어둔다. 그래도 강인하게 잘 자라는 꽃, 맥문동이 지금 한창이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재일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명성 높은 일본 청소년 야구의 본선 무대에서 8강을 차지하여 재일동포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잔치 분위기다. 교토국제고는 24일 아침 8시 효고현(兵庫県)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는 한신고시엔구장(阪神甲子園球場)에서 열린 103회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도쿄도 대표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부속고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대 4로 꺾고 승리했다. 시합에 앞서 본선 경기가 열리는 날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방송을 통해 전국 생중계되자 재일동포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1947년 한국계 민족학교로 세운 교토국제고는 야구부 창단 22년 만에 야구 청소년들의 꿈의 무대인 여름고시엔(夏の甲子園)에 처음 출전하여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봄고시엔(春の甲子園) 대회 때 16강에서 패배하는 설욕을 당했으나 분발하여 이번에 8강에 오른 것이다. 8강에 오르기까지 상대한 팀은 예선전을 포함해 무려 3,603개로 이들 팀과의 접전을 뚫은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고시엔구장(甲子園球場)은 일본 프로야구팀인 한신타이거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