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땐 콩음식을 잘 안 해먹었다. 나는 된장보다도 청국장을 좋아해서 밥상에 자주 올려 보았지만 남편도 출근할 때 옷에서 냄새 난다고 싫어하고 아이들 숟가락으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예전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던 콩장은 밑반찬으로 훌륭한 음식이었으나 우리 집 식구들은 콩장도 별로 안 좋아한다. 콩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아는 이야기지만 콩보다도 더 맛나는 음식들이 지천이라 그럴까? 아무리 갖은 포장을 해서 밥상에 내 놓아도 그간 콩요리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파주로 이사 와서 우리 집 식구들의 입맛이 슬슬 변하기 시작했다. 4년 전 일이다. 파주 신도시로 이사 오면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이 장단콩축제였다. 이사 와서 짐 정리를 겨우 마치고 나자 남편이 어디서 알았는지 “파주 장단콩축제”에 가 보자는 것이었다. 서울 살 때는 시간이 나면 잠만 자던 남편이 공기 좋은 파주로 이사하고부터는 파주 율곡서원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을 아이들에게 구경시켜주느라 신이 났다. 파주 장단콩은 파주임진강쌀, 파주개성인삼과 함께 “장단 삼백”이라 해서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만
나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궁궐 나들이를 한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얼마 전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러 광화문에 나갔다가 아들한테 질문받은 말이 지금도 귓전을 때린다. "엄마. 저 글자는 무슨 글자야?" "응 저건 한자란다" "왜 우리나라 한글이 있는데, 저런 글자로 썼어?" "....." 아들이 광화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무엇인가 아들이 알아들을 답을 찾다가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도 아들과 같은 생각을 평소 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의 중심 경복궁은 광화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광화문은 조선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으로 바뀌고도 여전히 수도의 중심에 자리한다. 지금의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인 1395년에 창건된 광화문의 모습이 아니다. 굴곡의 역사 현장을 묵묵히 지켜본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일부 불탔으며, 1968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보수한 것을 지난해 문화재청이 관련 사료와 문헌, 사진 등을 통해 고종 2년(1865년) 중건(重建) 때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게 오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