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탑 1 ▲ 돌탑-2 ▲ 돌탑-3 ▲ 돌탑-4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논산 쌍계사의 돌담에 열지어 서있는 돌탑들 ! 비록 작은 돌탑들이지만 그 모양들이 다양하여 선선해져가는 이 가을의정서와 좋은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홍릉의 홍살문과 석상과 침전 ▲ 홍릉의 석상들 ▲ 말과 낙타 ▲ 해태와 사자 ▲ 코끼리와 기린 ▲ 기린과 무관 문관 ▲ 홍릉의 홍살문과 석상과 침전 ▲ 실물을 보고 만든 코끼리(유릉의 코끼리) ▲ 실물을 보고 만든 낙타(유릉의 낙타)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임금(황제의 입장에서는 제후)의 능과 황제의 능은 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능의 배치가 달라지고 능의규모가 커지며 능에 들어서는 건물의 형식도 달라지고 능을 호위하는 석상들 종류가 많아지고 그 석상들의 크기도 커진다. 황제는 측근에서 보필하고 호위할 문인석 무인석의 위용도 크게 달라진다. 조선왕릉을 볼 때 대부분의 다른 능에서는 문인석 무인석의 규모도 2.0m 내외의 크기가 대부분이나 고종황제의 능인 홍릉의 경우에는 그 규모가 3.0m 정도로 커져있다. 또 왕릉의 경우에는 석인 석수들이 왕릉의 바로 앞에 배치가 되는데, 황제릉에 있어서는 능앞이 아니라 침전의 앞 신과 왕만이 드나드는 참도 좌우에 나열되어 있다. 임금의 능에 있어서는 제사를 지내는 능의 앞쪽에제각이 정자각이라 하여 정(丁)자 형의 건물이 들어서지만, 황제의 능에 있어서는 반듯하게 일(一
▲ 유릉의 홍살문과 침전 ▲ 황제릉의 석인 석수들 ▲ 침전에서 본 석인 석수들 ▲ 황제의 침전 ▲ 유릉의 능상 ▲ 유릉의 제각 ▲ 황제의 경호대장 ▲ 황제의 비서실장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조선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동안 일본과 청나라는 먼저 개항하여 근대국가가 되었다. 이후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등살에 시달리다 떠밀려 개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은 일본이나 청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며 청나라에 사대하는 왕국에서 독립하여 황제국임을 선포하고 이후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고쳤다. 이에 따라 황제의 능이 2개 생기게 되었으니, 현재 남양주시에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이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홍릉과 유릉에는 조선의 다른 왕들에 없는 많은 석물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다른 능들은 제사를 모실 때 정(丁)자형의 제각에서 제사를 모셨으나 홍릉과 유릉에는 반듯한 일(一)자의 제각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또 제각의 앞에는 문관 무관과 그리고 각종 동물상들이 늘어서게 되었다. 다른 왕릉에서는 볼수 없는 석상들로 곧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설치한 조상들이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
▲ 천양정이 있는 다가공원 ▲ 천양정의 외관 ▲ 천양정의 내부 ▲ 사대에서 과녁을 향해선 궁사들 ▲ 사대에서 140m 아스라이 보이는 과녁 ▲ 진열된 화살들 ▲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궁사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전주는 조선왕조의 기원을 둔 곳이다. 그 이름도 전주(全州)이니 부족한 것이 없이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고을이라는 자부심도 들어있는 우리말로 온 고을이 곧 전주다. 현재 전주에는 조선왕조의 유적이 여러곳 남아있는데, 영조 때 세워진 전주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과 그의 부인인 경주김씨의 위패를 모신 덕진의 조경묘가 있고, 태종때 이성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교동의 경기전에 있으며, 고려말 명궁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성계가 황산벌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장병들을 위로하는 피로연을 열었던 오목대가 전주 한옥마을 바로 위에 있다. 이성계는 활 잘 쏘기로 이름이 났던 장수로 전설 같은 명궁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예를 들면 화살 하나를 쏘아 노루 2마리를 잡았다는 일화, 화살 하나로 까마귀 5마리를 맞추었다는 일화, 사냥가서 곰을 40마리 잡았는데 모두 둥골만 맞추어서 잡았다는 일화, 왜구와 싸울 때는 17발을 모두 왼쪽 눈만 맞추어
▲ 소매물도에서 본 등대섬 ▲ 소매물도의 폐교 ▲ 등대섬의 정경, 언뜻 보면 토끼처럼 보이기도 한다. ▲ 기암괴석의 등대섬, 그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밭도 있다. ▲ 육지를 오가는 연락선 ▲ 소매물도 맨 위에 있는 등대 [그린경제 = 최우성 기자] 경남 통영에서 배를 타고1시간 20분 여객선을 타고 가면 나타나는 소매물도! 거제도 저구항에서는 40분 정도 걸린다. 거제 저구항까지 가려면 그만큼 먼 길을 달려가야 하니 경제적으로는 통영에서 가는 것이 훨씬 좋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하지만 소매물도에서 보는 아름다운 등대섬 때문에 소매물도는 한국의 꼭 가보아야할 비경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다. 또 그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비경은 애국가와 함께 하게되어 더욱 더 유명해져서 국민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섬이다. 소매물도는 매물도가 아닌 작은 매물도라는 뜻이다. 매물도는 소매물도의 바로 옆에 큰 섬이고 소매물도는 그 섬의 옆에 작은 섬이란 뜻이다. 그럼 '매물도'란 무슨 뜻일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알고보니 '매물'이란 말은 경상도 발음으로 '메밀'을 '매물'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매물도가 농
▲ 처마밑에 매달린 풍경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고요한 적막감이 감도는 사찰의 오후. 스님들도 풍경도 조용히 쉬고 있습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고인돌을 찾은 사람들 ▲ 고인돌을 만들던 시대의 집들 ▲ 고인돌과 움집. 당시에는 땅을 파고 살림집을 지음 ▲ 고인돌 옆에 지은 움집 ▲ 고인돌 공원 ▲ 거대한 고인돌 ▲ 여기 저기 돌무더기들도 다 고인돌 ▲ 고인돌과 사람의 크기를 비교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세계 고인돌 가운데 60~70%는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유럽과 남아시아, 태평양지역 일부에 고인돌이 남아있으며그 다음이만주지역이다.이 지역을 뺀나머지 지역에서는 고인돌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우드넓은 대륙에서는 별로 발견된 것이 없고,요동반도 동쪽과산동반도 쪽에몇기가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 현재 남아있는 고인돌은파악된 것만으로도 2만여기에 이른다고 하니 한국은 가히 고인돌의 왕국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한국에 남아있는 고인돌 중에도 집단으로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전남 화순과 전북의 고창 그리고 인천광역시 강화지역인데 강화의 고인돌은만주지역의 고인돌과 같은북방식고인돌이 주로 많이 있고,고창과 화순에는 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남방식 고인돌들이 많이 남아있다. 북방식은 탁자석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은 대신탁자석을 받치는 다리가 높지만, 남방식은 탁자석의 두
▲ 남부지방 부안에는 해갈의 단비가 내렸다. ▲ 산안개가 드리운 산사 ▲ 석탑도 지붕도 촉촉히 젖었다. ▲ 대웅전 문앞에 앉아 촉촉히 젖은 뜰을 본다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지난 주말 중부지방은 맑았지만 남부지방에는 오랫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 자리한 내소사에도 비가 많이 내려 산사를 촉촉하게 적셨다. 오랫만에 많은 비로 가을 가뭄이 해갈되고 논곡식 밭곡식들이 생동감을 되찾고막바지 알곡이 영글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촉촉히 젖은 산사의 뜰을 거닐어 보면서 만물이 살아가는데는 늘 맑고 햇볕이 가득한 화창한 날만 필요한 것이아니라, 당장은 활동하기 힘들지만 빗물이 있어야만 만물이 살아갈 수 있다는 이치를 실감해본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
▲ 선운사 사리탑들 ▲ 사리탑과 비문 ▲ 백파율사비 추사의 글씨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모르면보아도 보이지 않고, 알면 더욱 새롭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선운사 스님들의 사리탑도 늘 보아오던 대로 크고 작은 사리탑과 스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가운데는 불교가 탄압받던 어려운 조선시대 불교의 엄격한계율을 철저히 지켜서 스님들은 물론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추사 김정희까지도 감화를 받았다니 놀랍다.선운사에는백파스님의 행적을 기리는 추사의 비문이 남아 있다.이제라도 알고보니 더욱 뜻이 깊어지는 듯하고 추사체 비문과 함께 새롭게 느껴보는 백파율사의 법향이 느껴진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
▲ 무장관아 ▲ 관아의 파취루 현판 ▲ 관아의 성문 ▲ 성문의 외부 옹성 ▲ 무장현 관아 ▲ 관아의 남쪽성문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무장관아는 조선조에 부르던 이름이고 현재는 고창군이다.조선시대 선조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장관아는 그동안 발굴과 복원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여 현재는 관아본관과 좌우익사가 복원되었고 관아 내 누각과 관아 주변의 성곽일부가 복원되었으며 성문과 옹성도 복원되었다.현재 복원된 객사는 본채에는 임금을 뜻하는 궐(闕)자 판을 중앙에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예를 올렸다고 하며, 그 외에 나라의 애사나 경사시에도 한양에 있는 왕에 보고하듯 보고 하였다고 한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