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0 (수)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추천문화재 깊이 보기

전체기사 보기


정조가 쓴 <제문상정사(題汶上精舍)>

- 제왕의 이상, 글씨에 남다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32]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장원급제 김명육이요~!” 장원급제(壯元及第)! 과거를 치르러 모여든 숱한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의 영예를 차지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1797년(정조 21) 음력 12월 5일, 제주에서 귤이 올라온 것을 기념하여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치러진 감제시(柑製試)의 장원은 유학(幼學, 벼슬하지 않은 선비) 김명육(金命堉)으로 정해졌습니다. 아마 김명육, 그의 입꼬리는 기쁨으로 치솟다 못해 찢어지지나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김명육의 인생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를 급제시킨 독권관(讀券官, 과거시험을 담당한 고시관) 이병모(李秉模, 1742~1806)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에게 다음과 같은 차자(箚子, 간단한 상소문)를 올렸던 것입니다. “신(臣)이 김명육의 시험지를 자세히 보니 운율이 어긋나고 대구가 맞지 아니하여 일정한 격식에 크게 어긋날 뿐만 아니라, 글자체가 기울고 비뚤어져서 글씨가 괴이함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신은 정신이 모두 나가서 혼동한 나머지 우등으로 매겼습니다. 지금 문체를 바로잡고 필법을 바르게 하는 때를 당하여 이러한 시권은 결코 유생들에게 반시(頒示, 반포하여 보이는 일)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받침 있는 은잔[銅托銀盞]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31]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1971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습니다. 구운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이 벽돌무덤[塼築墳]은 백제 제25대 임금이었던 무령왕(재위 501~523) 부부의 안식처였습니다. 무덤 주인을 알려준 것은 바로 무덤 내부에 있던 묘지석(墓誌石)이었습니다. 여기에 적힌 내용 덕분에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 주인과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왕비의 관에 넣은 은잔 무령왕릉에서는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 청동거울, 다리미 등 다양한 금속공예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발견되었기 때문에 매장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발견 위치와 용도 등을 통해 처음에 묻혔던 위치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출토품은 크게 임금과 왕비의 목관 안에 있던 것과 관 밖에 있던 것으로 나뉩니다. 관 안에 있던 유물은 다시 임금과 왕비가 몸에 착장하고 있던 착장품과 부장품으로 구분됩니다. 그 가운데 왕비의 관에 넣었던 받침 있는 은잔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526년 11월에 죽은 왕비는 529년 2월 무령왕 곁에 묻혔습니다. 왕비의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30]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상앗빛을 띠는 이 백자 대접은 입술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몸체의 옆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립니다. 대접 바깥 면에는 검은색의 가는 선으로 연꽃과 넝쿨무늬를 빙 둘러 장식했습니다. 대체로 만듦새와 다듬새가 좋고 굽 깎음도 단정하며, 형태와 장식 무늬에서 매우 세련된 품격을 보여주는 대접입니다. 이 대접은 중국 원(元)ㆍ명(明) 백자의 영향을 받은 경질(硬質) 백자와는 달리 고려백자의 흐름을 잇는 조선 초기 연질(軟質) 백자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상감(象嵌) 기법으로 무늬를 장식한 조선시대 상감백자(象嵌白磁)입니다. 청자의 시대였던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가 되면 바야흐로 도자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그 중심이 옮겨갑니다. 유교를 내세웠던 조선은 임금의 그릇으로 백자를 택하였고, 유교 이념과 순백의 백자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말고도 상감백자, 청화백자(靑畵白磁), 철화백자(鐵畵白磁), 동화백자(銅畵白磁) 등 다양한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감백자는 고려시대 상감 기법 전통을 이어받은 백자입니다. 이 연꽃 넝쿨무늬 대접이 만들어진 조선 초기에는 고려청자를 계승한 조선 분청사기가 전국에서

붉은간토기 – 아주 특별한 청동기시대 토기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26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청동기시대 토기’ 하면 민무늬토기를 떠올립니다. 무늬가 가득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대비되는 말로 청동기시대 문화를 상징합니다. 한반도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됩니다. 금속이 새롭게 출현하는 시기라 ‘청동기’라는 시대 명칭이 붙었지만 시대 전반에 걸쳐 많은 양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민무늬토기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를 ‘민무늬토기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청동기시대 연구에서 토기는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고 많은 연구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청동기시대 토기는 정말 무늬나 색깔이 없을까? 민무늬토기는 넓은 의미에서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모든 토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개 좁은 의미에서 거친 바탕흙의 토기, 곧 정선되지 않은 바탕흙으로 빚고 거칠게 다듬은 뒤 8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적갈색 또는 황갈색을 띠는 토기를 말합니다. 민무늬토기는 무늬가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무늬를 내거나 색을 입힌 토기들이 발견됩니다. 점토를 붙이거나 도구를 사용해 새기거나 눌러 장식한 신석기시대 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