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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30]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상앗빛을 띠는 이 백자 대접은 입술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몸체의 옆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립니다. 대접 바깥 면에는 검은색의 가는 선으로 연꽃과 넝쿨무늬를 빙 둘러 장식했습니다. 대체로 만듦새와 다듬새가 좋고 굽 깎음도 단정하며, 형태와 장식 무늬에서 매우 세련된 품격을 보여주는 대접입니다. 이 대접은 중국 원(元)ㆍ명(明) 백자의 영향을 받은 경질(硬質) 백자와는 달리 고려백자의 흐름을 잇는 조선 초기 연질(軟質) 백자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상감(象嵌) 기법으로 무늬를 장식한 조선시대 상감백자(象嵌白磁)입니다. 청자의 시대였던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가 되면 바야흐로 도자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그 중심이 옮겨갑니다. 유교를 내세웠던 조선은 임금의 그릇으로 백자를 택하였고, 유교 이념과 순백의 백자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말고도 상감백자, 청화백자(靑畵白磁), 철화백자(鐵畵白磁), 동화백자(銅畵白磁) 등 다양한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감백자는 고려시대 상감 기법 전통을 이어받은 백자입니다. 이 연꽃 넝쿨무늬 대접이 만들어진 조선 초기에는 고려청자를 계승한 조선 분청사기가 전국에서

붉은간토기 – 아주 특별한 청동기시대 토기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26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청동기시대 토기’ 하면 민무늬토기를 떠올립니다. 무늬가 가득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대비되는 말로 청동기시대 문화를 상징합니다. 한반도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됩니다. 금속이 새롭게 출현하는 시기라 ‘청동기’라는 시대 명칭이 붙었지만 시대 전반에 걸쳐 많은 양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민무늬토기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를 ‘민무늬토기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청동기시대 연구에서 토기는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고 많은 연구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청동기시대 토기는 정말 무늬나 색깔이 없을까? 민무늬토기는 넓은 의미에서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모든 토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개 좁은 의미에서 거친 바탕흙의 토기, 곧 정선되지 않은 바탕흙으로 빚고 거칠게 다듬은 뒤 8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적갈색 또는 황갈색을 띠는 토기를 말합니다. 민무늬토기는 무늬가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무늬를 내거나 색을 입힌 토기들이 발견됩니다. 점토를 붙이거나 도구를 사용해 새기거나 눌러 장식한 신석기시대 토기

<성좌도> -과거와 현재의 천문도 한 폭의 병풍에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25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성좌도>는 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 병풍입니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 예부터 사용해 온 전통 천문도와 서양에서 새롭게 들어온 신식 천문도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조선 초기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견줘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어서 서양 천문도를 ‘신법천문도’라 부릅니다. 한국의 옛 그림이나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용이 진행됩니다. 이 병풍의 그림도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여 왼쪽 아래에서 끝납니다. 가장 오른쪽에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세 가지 판본이 존재합니다. (태조 석각본, 선조 목판본, 숙종 복각본과 그 탁본)이 천문도에 그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때에 돌에 다시 새긴 복각본 또는 그 탁본을 기초로 교정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서운관(書雲觀)이 소장하고 있던 각본이다. 우리 태조 조에 평양에 있는 옛 판본을 바친 것이 있었다. 임금(태조)께서 이를 보물처럼

오세창이 상형문자로 쓴 〈어(魚)ㆍ거(車)ㆍ주(舟)〉

작은 힘이라도 합쳐야 독립의 염원을 이룰 수 있다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24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어ㆍ거ㆍ주〉는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이자 근대 한국의 대표 서예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1929년 작품입니다. 오세창은 화면 가운데에 물고기[魚]ㆍ수레[車]ㆍ배[舟]를 뜻하는 세 글자를 상형문자로 쓰고, 그 옆에 글자들의 뜻을 작은 글씨로 적었습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오세창의 인장 ‘수양(首陽)’, ‘위로고흥(葦老高興)’, ‘와전산방(瓦全山房)’이 찍혀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림 같고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어ㆍ거ㆍ주〉에는 사실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세창, 민족의 어른이 되다 오세창은 1864년(고종1) 역관(譯官)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아 1879년(고종16) 역과(譯科)에 급제했고 중국어 역관으로 활동했습니다. 또 1886년(고종23) 박문국(博文局) 주사(主事)로 근대 신문 <한성주보(漢城周報)>의 발간에 참여했고, 갑오개혁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언론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오세창은 1910년 국권을 강제로 빼앗겼을 때 일제가 내린 작위와 은사금을 받지 않았고, 1919년 민족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