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애(天涯) 벗이 없다면 하늘 끝도 없고 (돌) 믿음이 없으면 땅끝도 없네 (달) 세월의 끝동에 저민 다정함 (빛) 장흥엔 지기가 지켜 있구려 (심) ... 24.12.19.불한시사 합작시 '천애(天涯'는 문자 그대로 하늘 끝, 곧 세상의 끝을 뜻하나, 단순한 공간의 극한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고독과 교유(交遊)의 깊이를 함께 드러내는 상징적 개념이다. 중국 해남도(海南島) 남단 바닷가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천애(天涯)’ 두 글자는, 예로부터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의 끝을 만난다는 뜻을 품고 전해진다. 그 아래에 후인이 더한 네 글자 ‘해활천공(海闊天空)’은, 비록 땅끝이라도 마음이 열리면 세계 또한 넓어진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이 ‘천애’의 정서는 등왕각의 시인 당나라 왕발(王勃)의 시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에 나오는 구절, “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곧 “천하에 지기가 있으면 하늘 끝도 이웃과 같다”라는 구절에서 더욱 깊어진다. 이 구절은 필자의 서예 스승 소전 손재형 선생께서도 즐겨 쓰시던 시귀(詩句)로, 글과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초월하는 심물합일의 교감을 상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통일의 꿈(365) 인류역사는 늘 통일의 역사 (심)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반복 (돌) 하나됨 아닌 다름의 어울림 (초) 언제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달) ... 24.12.5.불한시사 합작시 풀이1, 통일에 대한 시의 발구는 중국과 북한이 동북아에서 힘의 역학관계로 인해, 어느 한쪽에서 분열이 먼저 일어나면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통일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함께 꿈꾸어 보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심중) 풀이2, “통일은 말뜻으로 보아 ‘하나 됨’인데, 이를 ‘어울림’으로 볼 수 있나요?”라는 제 물음에 초암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개념으로 존재할 뿐, 현상계에서 하나 됨은 다름의 어울림이라는 것이 내 삶의 철학이니 그대로 넘어갑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철학적 신념으로 하신 말씀이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아마도 초암 형의 뜻과는 어긋날 수 있다. 통일은 정치적으로 ‘하나 됨’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 정신에 따라 남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 통합되는 것이다. 곧 자유민주주의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을 ‘다름의 어울림’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초암거사(草庵居士) 해남에 제발로 유배간 선비 (빛) 시화에 토굴 조각 솜씨까지 (돌) 사자산 아래서 달 바위 베고 (달) 예수와 부처가 하나로 있네 (심) ... 12.20. 불한시사 합작시 초암(草庵)은 조각가 강대철의 아호다. 그는 80년대를 앞뒤로 발군의 조각 작품을 발표하더니, 어느덧 높고 깊은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다. 전남 장흥의 사자산에 들어가 수행과 공부에 몰두하고, 최근 7년 동안 수행 삼아 “조각토굴”의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시화집을 비롯해서 소설도 발표했다. 그는 말한다. “늘 마음 바탕을 찾아 거칠어진 성정을 다스리며, 순간순간 나를 챙기며 산다”라고. 유배 길로 떠밀린 동파(東坡)나 추사(秋史)와 달리 초암은 스스로 유배 길에 올라 자신을 극복해 가고 있다. (한빛) 아랫글은 불한시사 시벗들이 '초암거사'를 시제로 쓴 4인의 합작시에 대해 겸사(謙辭)를 표현한 초암의 글이다. 그 아래는 라석의 화답글이다. 두서없이 살아온 세월 부질없이 드러나니 동짓달 눈발처럼 분분하구나 몸둥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인생 끝자락에서 인연 닿는 벗들과 담담한 회향(廻向)*놀이 해보려 한 것이 만만치가 않구나 머물러 바라보며 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진의 영랑시인 생가 기다리기만 하면 모란 피나 (돌) 기다리지도 않으면 안 피나 (빛) 때 되면 피고 때 되면 지거늘 (초) 꽃이 피고 지던 저 세월 넘어 (달) ... 24.12.29. 불한시사 합작시 세모의 바람이 스산하던 날, 남도의 끝자락 강진에 이르러 우리 불한시사 다섯 벗들은 고요한 한옥 한 채 앞에 섰다. 그곳은 김영랑의 숨결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 생가였다. 담장은 낮고, 뜰은 비어 있었으며, 모란은 아직 깊은 겨울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적막한 빈 뜰에는 이미 한 편의 시가 조용히 피어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래된 시비는 마치 오랜 벗처럼 우리를 맞이하며, 보이지 않는 꽃의 시간을 가만히 들려주고 있었다.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기다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영랑의 시는 기다림의 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절정이 다가오기를 향한 내면의 미묘한 떨림이며, 동시에 그 절정이 스쳐 지나갈 것을 미리 아는 상실의 시대 예감이기도 하다. 모란은 단지 한 송이 꽃이 아니다. 피기 전에는 설렘으로 가슴을 적시고, 피어나는 순간에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흥사(大興寺)가는 길 반세기 전 비바람 속 갔던 길 (돌) 일지암 바라며 옛 생각하네 (달) 차 한잔 속 담겨있던 깨달음 (초) 선차보다 초의 차맥 이었네 (심) ... 24.12.31.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는 불한시사 시벗 다섯 사람이 남도 여행 중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는 숲길 한 주막에서 점심을 하며 함께 읊은 합작시이다. 오래전 비바람 속에 이 길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걷는 길 위에서 발구하고 각자가 한 구절씩 보탰다. 남도의 산길과 세월의 기억, 그리고 차향(茶香)이 겹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즉흥의 시편이다. 승구(둘째 줄)의 '일지암(一枝庵)'은 조선 후기의 선승이자 차인인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물며 차를 달이고 사유를 펼치던 암자다. 대흥사 뒤편 산자락의 작은 암자지만 조선 차문화가 다시 살아난 중요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는 이곳에서 차의 이치를 정리한 글을 남기고,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물론 당대 한양의 여러 문인과 교유하며 차의 정신을 널리 전하였다. 특히 남도 차문화의 흐름을 말할 때 다산 정약용과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강진 유배 시절의 다산은 인근 절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념무상(無念無想) 말 잊고 생각 없이 바라보네 (달) 염에 이르러 염을 다한 마음 (돌) 이제 아쉬움 다 없어졌느니 (빛) 지금 여기 이미 갖춰진 자리 (초) ... 25.2.10. 불한시사 합작시 옥광 시벗이 산책길에서 보내온 구절에서 합작시의 초구(初句)로 삼았다. 그의 “말을 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바라보네. 이것!”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다. 그는 언어 이전, 사유 이전의 자리에서 세계를 마주한 체험을 건네주었다. ‘말을 잊는다’라는 것은 분별의 언어를 거두는 일이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것은 개념의 그림자를 거두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대상도 관념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이것’의 현전이다. 그가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이것'은 멀리 있는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현존이다. ‘이것’은 주관적 심상도 객관적 사물도 아니다. 마음과 사물이 나뉘기 이전, 곧 심물합일(心物合一)의 장에서 드러나는 일물(一物)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Es spricht(그것이 말한다)”의 ‘그것’ 또한 존재의 드러남을 가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눈 길 눈 위에 남긴 까마귀 발자국 (돌) 흰 눈 맞으며 무얼 찾고 있나 (달) 분별없는 바탕 자리 가는 길 (초) 흰 종이에 글 쓰듯 함 없는 함 (심) ... 25.2.6. 불한시사 합작시 눈 위에 남긴 까마귀 발자국은 잠시의 흔적이다. 한 번의 날갯짓, 한 번의 디딤이 남긴 자국은 찰나의 존재 증명처럼 보이지만, 해가 기울고 기온이 오르면 이내 스스로 자취를 지운다. 발자국은 ‘있음’이면서 동시에 ‘사라짐’의 예고이며, 남김이 곧 소멸로 향하는 길임을 드러낸다. 서산대사의 ‘답설(踏雪)’ 선시가 일러주듯, 눈 위를 밟고 간 자는 발자국을 남기되 마음에는 남기지 않는다. 흔적은 생기나 집착은 두지 않는 것, 이것이 ‘설중보행(雪中步行)’의 수행적 태도다. 눈은 더러운 지표를 가리지 않고 덮는다. 얼어붙은 산하와 혼탁한 세상 위에 내리는 흰 눈은 미화가 아니라 ‘일시적 평준화’다. 덮음은 곧 드러냄의 다른 얼굴이다. 잠시 고요를 주지만, 그 고요는 해빙과 함께 본래의 결을 다시 드러낸다. 그러므로 눈은 정화의 상징이면서도 무상(無常)의 표식이다. 씻김은 지속되지 않으며, 맑음은 붙잡을 수 없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던 설경—발해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소동파의 문사향(聞思香) 향기를 들을 수 있는 동파여 (돌) 오감을 튕겨 가락을 듣는 이 (초) 홀로 그 얼마나 쓸쓸했기에 (달) 코호강 생각에 귀가 가렵나 (빛) ... 25.2.4. 불한시사 합작시 소동파(蘇東坡)에게 향(香)은 단순한 취미나 풍류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난과 유배의 세월 속에서 스스로 지켜내는 하나의 수행법이자, 일상의 자리에서 도(道)를 잇는 조용한 공부였다. 옛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향을 통한 수행, 곧 ‘향공(香供)’ 혹은 ‘향관(香觀)’의 전통을 이어왔다. 향을 피우는 행위는 종교적 제의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가다듬는 수련이었고, 향을 바라보고 맡고 사유하는 전 과정이 하나의 수행 체계였다. 향을 크게 나누어 보면, 연기로 드러나는 '향연(香煙)'과 보이지 않는 '향기(香氣)'가 있다. 향연은 눈앞에서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지는 찰나생멸의 형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생멸의 이치를 그대로 드러내는 무언(無言)의 설법과도 같다. 피어오르는 곡선과 흔들리는 흐름 속에는 미묘한 운율, 다시 말해 존재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향연을 바라보는 일은 곧 무형의 형상을 관조하는 일이며, 삶의 흐름을 잠시 멈춰 세워 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마량만(馬梁灣)에서 사람만 배타나 말도 배타네 (빛) 제주에서 타고 마량에 내려 (돌) 말들처럼 늘어선 저 까막섬 (달) 만주까지 달려가야 할 자리 (초) ... 25.1.30. 불한시사 합작시 장흥의 사자산 기슭에 자리 잡은 강대철의 토굴조각을 구경 간 지가 벌써 한참 지났다. 불한시사 시벗들이 몰려가 그가 10년에 걸쳐 파고 깎고 꾸며놓은 신비스런 조각토굴을 둘러보고, 다 함께 바닷바람을 쐬자고 가보았던 곳이 마량이다. 장흥에서 비롯한 탐진강을 따라 ‘수문리’를 거쳐 오면서, 숨어 사는 조각가 강대철을 빗대어 “숨은 이가 여기 있다고 수문리인가” 보다는 재담으로 터졌던 함박 웃음소리가 귀에 어린다. 마량은 여러 곳에 지명으로 남아있지만, 이곳은 제주도에서 키운 말들이 배에서 내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마량이란 말 마(馬) 자와 나무다리 량(梁) 자가 합쳐져서 ‘말이 건너는 나무다리’란 뜻이다. 포구의 표지판을 보니, 이곳은 조선시대에 군대가 머물던 전략요충지였다고 한다. 태종 임금 때에 마두진이 세워졌고, 정유재란 뒤에는 거북선 한 척이 묵었다고 한다. 전장을 누빌 말들이 씩씩하게 나무다리 마량을 건너오던 모습은 둘레의 까막섬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다산의 사의재(四宜齋) 목민심서의 산실인 사의재 (돌) 주막집 사랑방에서 바뤘나 (빛) 생각과 용모 말과 행동으로 (달) 유배의 길에도 의를 세웠네 (심) ... 25.1.30. 불한시사 합작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1801년 신유박해의 여파로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어, 처음 약 4년 동안을 강진 읍내의 한 주막집 사랑방에 머물렀다. 벼슬에서 물러나 하루아침에 죄인의 몸이 되어 낯선 남도의 객지 주막방에 기거하게 된 그의 처지는, 조선 후기 지식인이 겪은 정치적 박해와 시대적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바람을 막는 허름한 방, 떠도는 장정과 나그네가 오가는 주막집 한쪽 편에서 다산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학문과 성찰에 더욱 몰두하였다. 훗날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수많은 저술의 씨앗 또한 이 시기의 고독한 사색과 절제된 삶 속에서 잉태되었다. 이 주막집 사랑방 문 위에 걸린 현판이 바로 ‘사의재(四宜齋)’이다. 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하도록 경계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다산이 유배 생활의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 다스리기 위해 세운 삶의 규범이자 학문적ㆍ윤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