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가 네 그루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수령 600년)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의 백매(수령 450년) 순천 선암사 선암매(수령 600년)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수령 350년)가 그러합니다. 매화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세 그루는 유명한 절을 끼고 있으며, 한 그루는 신사임당과 율곡의 얼이 깃들어 있지요. (지금은 고사 중 1/10 정도만 살아있다고 하네요.) 아직 춘천은 매화가 이르지만, 광양은 절정기를 지났습니다. 매화를 다른 이름으로 ‘일지춘(一枝春)’이라고 하고 그 향기를 ‘군자향(君子香)’이라 불렀습니다. 예로부터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군자로 불렀으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고난을 이겨낸 어려움을 극복한 장한 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일지춘(一枝春)은 한 가지만 있어도 봄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니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 부지런한 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 열매는 매실로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사용되니 꽃부터 열매까지 버릴 것이 없는 꽃이기도 합니다. 매실나무는 줄기 중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명력력 노당당(明歷歷 露堂堂). 무슨 일이든 밝게 당당하게 드러나는 경지. 좋은 일을 하면 응당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수집가 하정웅이 아끼는 이 구절은 그가 걸어온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세상과 나눈 수집은 하나의 선한 씨앗이 되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꽃을 피웠다. 하정웅은 흔히, ‘미술 작품 1만 점을 기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50년 동안 수집한 1만여 점의 작품들을 한국의 공립미술관에 기꺼이 기증했다.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당시 212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포항시립미술관, 영암군립하미술관 등 전국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고, 어느덧 그 수가 1만 점을 훌쩍 넘었다. 기증 작품의 면면도 화려해 액수로 따지면 수천억 원에 달할 정도다. 수십 년 세월, 한 점 한 점 열과 성을 다해 모은 작품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인 미술관을 세워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듯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고국의 공립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한 사례는 흔치 않다. 여기에는 한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일본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았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1993~2000)에서 8년 동안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는 하버드 대학 시절부터 환경운동에 열심이었다. 정치에 투신한 이후에는 환경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92년에 고어는 《위기에 처한 지구》라는 책을 펴냈는데, 읽어 보니 대학 교재로 써도 좋을 만큼 내용이 충실한 책이었다. 고어는 2000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공화당의 조지 부시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서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했다. 그는 재검표를 요구하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트럼프와는 달리) 결과에 승복하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환경운동에 투신하였다. 고어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천 회의 강연을 하면서 환경전도사로서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6년에 고어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12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지구와 인류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 책에 따르면 킬리만자로의 눈은 거의 녹아버렸고,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는 지금도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있으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책 겸 운동 겸 도는 둘레길의 시작이자 끝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아파트 옆이어서 둘레길 들어가는 입구에 인공으로 둑을 쌓아 작은 연못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 밑에서 놀던 오리 한 쌍이 올라와서 잘 헤엄치며 놀고 있다. 오리도 그냥 오리가 아니라 수컷의 목덜미에 파란 깃털이 있어 아주 고급스러운 청둥오리이다. 달 포 전에 처음 보고 반가웠는데 어제도 또 나왔다. 그런데 남자들이야 그저 아 오리 한 쌍이 잘 놀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끝나고 곧 갈 길을 가는 것인데 그날 집사람은 조금 늦게 오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두 마리가 있는데 수컷은 자맥질도 안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암컷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며 저 앞으로 가니까 수컷이 좀 늦게 눈을 떠 보니 옆에 암컷이 없잖아요? 그걸 보더니 앞으로 바지런히 물살을 저어 가서 암컷이 있는 그 옆에 가서는 다시 또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고 저 수컷 오리가 어쩌면 나하고 저리 행동하는 게 똑같을까 하고는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그렇구나. 저 작은 동물계에서도 주변에서 먹을 것을 부지런히 챙기고 정리하고 하는 것이 암컷이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교사회였던 조선 500년 동안 한반도 곳곳에는 많은 가문이 생겼고, 이들 가운데는 명문가로 꼽히며, 승승장구한 곳들이 꽤 많다. 그러나 이 명문가라고 하는 곳들에는 그저 고래등 같은 기와집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철학이 전해지지 않는 곳이 흔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곳간이 차면 자연스레 베푸는 마음이 생겨날 법도 하건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아무리 곳간이 그득해도 갈증이 나고,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싶고 그 많은 재산을 꽁꽁 움켜쥐고 사는 것이 일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무려 300년 동안이나 깨끗한 재물, 적정한 재물을 유지해 칭송받는 가문이 있다. 바로 ‘경주 최부잣집’, 경주 최씨 가암파 가문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취할 수 있을 때 취하지 않고, 모든 것을 쓸 수 있을 때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은 부단한 자기수양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 책,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 가문에서 어떻게 이 어려운 일을 해냈는지, 그 저변에 흐르는 정신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경주 최씨 가암파 가문은 최진립을 파시조로 하여 12세손인 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유년 시절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산과 들에서 구한 재료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를 만들어 썼지요. 겨우내 얼음판에서 지내던 시절 봄은 색다른 추억으로 다가왔습니다. 봄은 소리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풋풋함으로 개울물이 불어나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도 하고 길어진 햇살만큼이나 뒷동산에 짝을 찾는 비둘기 울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제 막 부화한 노란 병아리의 삐악거림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버들강아지도 겨울 눈 고깔을 벗고 고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빨간색으로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비틀어 대궁을 쏙 빼면 거짓말같이 나무와 껍질이 분리됩니다. 양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한쪽에 칼로 살짝 깎아내고 불면 봄을 재촉하는 멋진 버들피리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는 봄에만 즐길 수 있는 향연이었는데 버들강아지의 꽃말이 '포근한 사랑'이라고 하니 어쩌면 풋풋한 봄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풀피리, 파피리, 보리피리 등등 소리 낼 수 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6월 25일, 그 의미를 되새기는 보도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사회면 한쪽에는 이런 기사가 떴다.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 이 소식은 그 4년 전인 2016년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다뤄졌고 사람들의 기억에도 “아 그렇게 되었나?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주고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그러다가 최근 모 언론이 조영남 씨로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받아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다시 세간에 작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80년 초반에 KBS TV뉴스에서 미술분야를 담당했던 필자는 지난 2016년 상반기에 “조영남 씨가 무명의 후배 가수를 시켜 화투짝 그림을 그리게 해 비싸게 팔아먹었다”라는 주장으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보통 사람 이상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술 담당기자였기 때문도 있지만 바로 더 4년 전에 백남준문화재단에서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 씨를 조명하는 책을 펴낼 때 조영남 씨의 글을 받아서 책에 함께 실었고, 그때 서울 청담동에 있는 조 씨의 집을 방문해 거기서 간단한 출판기념회를 가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과 들에는 풀과 나무가 스스로 자랍니다. 먹을 수 있는 나물도 봄이 되면 지천으로 돋아납니다. 이런 푸성귀를 ‘푸새’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밭에 심어서 가꾼 채소들도 있지요. 무, 배추, 당근, 오이, 호박, 상추, 치커리, 천경채..... 이런 채소를 ‘남새’라고 부릅니다. 초정 김상옥님의 시조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멧남새는 다소 거친 나물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푸새와 남새의 중간 정도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일전에 화천으로 냉이를 캐러 갔습니다. 막 얼음이 녹은 대지에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냉이를 캐어 정갈하게 다듬어 놓으니 봄 향기가 그리 좋을 수 없습니다. 냉이의 꽃말은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입니다. 맨몸으로 추운 겨울을 인내하고 맞이한 봄인데 송두리째 뽑혀서 식탁에 오른 냉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봄에는 산과 들, 밭이나 화단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여린 싹이 자라는 것이 쉽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어릴 때 밟히면 그 자람을 장담할 수 없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사무실로 여성잡지 《노블레스(Noblesse)》가 배달됐습니다. “어? 잘못 배달된 것 아닌가?” 제가 평소에 여성잡지를 보는 일이 없거든요. 미용실에서 머리 깎으며 가끔 여성잡지를 뒤적이는 일 외에는... 그래서 발신인란을 보니 ‘윤경식’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윤경식 씨는 저와 같은 이비엠(EBM) 포럼회원인 건축가입니다. 포럼의 등산셀인 <이산저산>의 등산대장을 맡고 있어, 평소 ‘윤 대장’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앞으로 윤 대장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윤 대장이 왠 여성잡지를 나에게?” 갸우뚱하면서 포스트잇 인덱스로 표시해놓은 쪽을 펼치니 금방 의문이 풀렸습니다. 바로 윤 대장이 전남 함평에 철학자 최진석 교수를 위해 지은 호접몽가(蝴蝶夢家)에 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함평이 고향인 최 교수가 고향집 마당에 ‘새말 새몸짓 기본학교’ 강의동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건축을 의뢰할까 하다가, 평소 건축에 철학적 사유를 덧입히던 윤 대장이 생각나서 윤 대장에게 부탁을 한 것이지요. 최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젠 뭔가 새로운 철학,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라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는 우리나라의 탈핵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였다. 후쿠시마는 작은 도시여서 사고 후에 방사능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반경 30km 이내에 사는 인구가 17만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부산 근처의 고리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반경 30km 이내에 무려 340만 명이 살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만에 하나라도 원전 사고가 나면 부산과 울산을 포함하여 동남권은 몰락하고 이어서 우리나라가 주저앉게 될 것으로 염려된다. 2012년의 대선에서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친원전 정책을 계승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하였다. 그러다가 2016년 9월 경주에서 진도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다. 경주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첨성대가 기울어졌고, 불국사 지붕 기와가 땅에 떨어졌다. 원전이 밀집된 동남권은 더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지역 주민들의 원전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높아졌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종교계에서는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