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휘영), 충청북도(도지사 김영환), 영동군(군수 정영철)이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배영호), 영동군이 주관한 ‘제66회 한국민속예술제’가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군민운동장에서 진행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국민속예술제’는 지역마다 있는 고유의 민속예술을 보존, 전승, 활용하기 위해 1958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국내 최장수 행사 가운데 하나다. 올해 ‘제66회 한국민속예술제’는 일반부 21개 단체, 청소년부 11개 단체, 1,400여 명의 참가자가 출전해 열띤 경연을 펼쳤다. 이번 경연을 통해 △일반부 ‘울산쇠부리소리’를 보여준 울산광역시 울산쇠부리소리보존회 △청소년부 ‘강릉 농사풀이 농악’을 보여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농악보존회가 대상을 받으며 대통령상의 영예를 얻었다. 대상 외 일반부 경연 결과는 △최우수상(국무총리상)에 경상북도 김천농악단 ‘김천지신밟기’ △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은 충청북도 장안면 전통민속 보존회 ‘보은장안농요’, 전라남도 여수농악보존회 ‘여수 삼동 매구 마당 밟기’, 대전광역시 대덕문화원 ‘계족산 무제’ △우수상(충청북도지사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에 있는 「예천 삼강나루 주막」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예천 삼강나루 주막」은 낙동강(洛東江), 금천(錦川), 내성천(乃城川)이 모이는 곳에 있는 나루터를 배경으로 1900년경부터 2005년까지 100년 이상 주막으로 운영되어 온 역사적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갑술년(1934년) 대홍수에도 소실되지 않고 큰 변형 없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이다. 주막의 주인이 거처하는 주모방과 접객을 위한 독립된 방이 각 1칸씩이고, 뒤쪽으로 부엌 1칸과 마루 1칸을 둔 전(田)자형 평면으로, 연결동선을 최소화하여 접객의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인 공간구성을 이룬다. 또한, 부엌 내 부뚜막에서 각 방으로 연결되는 아궁이가 따로 연결, 독립된 구들난방 형식을 갖고 있다. 주모방에서 출입가능한 부엌 위쪽 다락에는 홍수나 화재의 화를 면하고 주막의 무탈을 기원하는 성주단지가 있어 가신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엌 내부 흙벽에는 외상 처리 표시를 위해 그은 작대기선 원형이 잘 남아있는데, 이는 주막 유산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매우 희소성 있는 자료다.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올해의 서울반세기종합전으로 을축년 대홍수 발생 100년을 맞이해 <미증유(未曾有)의 대홍수: 1925 을축년>을 9월 26일(금)부터 11월 16일(일)까지 기획전시실(1층)에서 열었다. 을축년 대홍수(乙丑年 大洪水)는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로 불리는 재난으로, 1925년 7~9월에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7월 9~11일과 15~19일 두 차례는 한강 연안에 비가 집중되어 경성과 그 일대가 피해를 보았다. 현재까지도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수해가 일어날 때마다 언급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전시 제목인 <미증유(未曾有)의 대홍수>는 당시 을축년 대홍수에 대한 대표적인 수식어다. 미증유(未曾有)란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다’라는 뜻으로, 비가 예년보다 많이 오면 대개 홍수가 났던 한강 연안에서 이때의 홍수를 특별하게 불렀다는 점은 그 규모와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을축년 대홍수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인 2024년 서울기획연구 ‘을축년 대홍수, 그 뒤 100년 서울의 변화’를 반영하였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을축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이재필)는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과 함께 오는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창경궁(서울 종로구)에서 전통 명절인 ‘중양절(重陽節)’을 주제로 「2025 궁궐 일상 모습 재현과 체험」 행사를 연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세시풍속으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을에 국화차를 마시며 장수를 기원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신하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 민간에서는 국화전을 부쳐 먹는 등 왕실과 민간이 함께 즐기던 가을 명절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중양절 국화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양화당과 영춘헌 일원에서는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향긋한 국화차를 맛보는 ‘다례 체험’과 ‘국화모양 자개 손거울 만들기’, 한방 약재와 국화꽃을 이용한 ‘국화 향낭 만들기’를 포함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10월 25일과 26일에는 정조시대 왕가의 행렬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이 홍화문을 시작으로 춘당지와 통명전 일대 등을 돌며 관람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함인정에서는 중양절에 시행되었던 특별 과거시험인 ‘구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운영한다. 참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휘영)의 지원으로 2025 기탁문중예우홍보특별전 ‘앎을 넘어 삶으로 실천한 영일정씨 선비들’을 9월 30일(화)에 개막한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기탁받은 유물을 활용하여 해마다 다양하고 풍부한 볼거리를 꾸준히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다. 올해는 영일정씨 강의공 호수선생 문중 8곳 70여 종의 유물로 전시를 준비하였다. 충절의 고장 영천에 자리 잡은 영일정씨 이번 전시는 영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영일정씨 강의공 호수선생 문중이 주인공이다. 영일정씨가 영천에 정착하게 된 것은 시조 정습명의 9세손 정광후(1344~1416) 때이다. 고려왕조가 멸망할 때 정몽주와 뜻을 같이한 정광후는 멸문지화를 피하려고 아버지 정인언과 함께 영천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 뒤 정광후의 후손들은 영천을 중심으로 대구, 경주 안강, 경산 등 영남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영일정씨는 정세아의 임진왜란 당시의 활동과 17살 정의번의 순절로 영천 지역의 대표적인 선비 가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세아ㆍ정의번 부자, 충효를 실천하다 영일정씨는 충신과 효자가 많기로 이름났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이재필)는 가을 정취가 깊어지는 시기를 맞아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값어치를 국민과 함께 나누고, 바쁜 일상에서 치유와 여유를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자 조선왕릉 숲길 9곳울 개방한다.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부터 봄·가을철 기간을 정하여 조선왕릉 숲길을 일반에게 공개해 왔으며, 관람객이 안전하게 숲길을 걸으며 조선왕릉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도록 숲길 정비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이번에 개방하는 조선왕릉 숲길은 ▲ 구리 동구릉 ‘휘릉~원릉 및 경릉~자연학습장 숲길’, ▲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 ▲ 남양주 사릉 ‘능침 뒤 소나무길’, ▲ 서울 태릉과 강릉 ‘태릉~강릉(어린이 마당)’, ▲ 서울 의릉 ‘천장산~역사경관림 복원지’, ▲ 파주 장릉 ‘능침 북쪽 숲길’, ▲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건릉 숲길’, ▲ 파주 삼릉 ‘영릉~순릉 작은 연못 및 공릉 능침 북측 숲길’, ▲ 여주 영릉과 영릉 ‘영릉 외곽 숲길’까지 모두 9곳으로 전체 길이는 19.59km다. 숲길 개방 시간은 해당 조선왕릉의 관람 시간과 같으며, 방문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더 자세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전통연희 기반 창작예술단체 연희집단 ‘The 광대(대표 안대천)’는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 꿈의숲아트센터 퍼포먼스홀에서 신작 <불편한>을 올린다‘. <불편한>은 2023년 THE 광대의 공연팀장 김용훈에 의해 처음 기획되었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창작의과정에 뽑혀 리서치 단계를 밟았고, 시범 공연 이후로 2년 동안 개발ㆍ창작을 거쳐 2025년 신작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김용훈은 “THE 광대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창작연희극을 만들었다. 불규칙한 리듬 탓에 활용하지 못한 한국 장단의 특징을 연구하고, 나아가 장단에 맞는 몸짓을 창작해 새로운 장단 활용법 제시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일상생활 속 불편한 공간, 관계, 모순, 고정관념 등으로 확장해, '취약한 남성성'을 주제로 6명의 남성 광대가 공연을 올린다. 과거부터 현실 속 편협함, 모순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 보는 이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던 광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의 관객이 부담 없이 놀고 즐길 수 있는 창작연희극을 만드는 THE 광대는 이번에도 ‘불편한’ 것을 ‘편안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미국 침례교, 특히 남침례교에는 경건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노예들을 이용하여 목화나 사탕수수의 대농장을 경영하던 경건한 침례교인들은 주일이면 말쑥하게 데려 입은 옷을 입고 교회로 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 신실한 기도를 올립니다. 이렇게 경건하고 신실한 그들은 흑인 노예들을 부리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나요? 예! 많은 농장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흑인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노예들에게는 구원해야 할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유색가축’을 기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은 그런 하느님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인을 아주 존경할 분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하느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에 욕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도인 주인을 섬기는 종들은, 그 주인이 신도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인을 더 잘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섬김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동료 신도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석복(惜福). 누릴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니, 절제와 겸양으로 누릴 복을 아껴 오래오래 보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약간 모자란 느낌이 들 때 그치는 슬기로움과도 통한다. 복록은 무한정 있지 않으니 아껴서 조금씩 누리고, 나 혼자 누리지 않고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현명하게 누리는 길이다. 정민이 쓴 이 책, 《석복》은 이와 같은 슬기로움을 가득 품고 있다. 고문헌과 고사에서 오늘날 꼭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 명쾌한 해설을 곁들였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이 청량한 죽비처럼 정신을 깨운다. 이런저런 욕심과 근심으로 혼탁해진 마음에 맑은 슬기로움 한 사발을 들이켜는 느낌이다. 책은 ‘마음 간수’, ‘공부의 요령’, ‘발밑의 행복’, ‘바로 보고 멀리 보자’의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복’은 그 가운데 ‘마음 간수’ 편에 실려있다. 석복의 지혜는 광릉부원군 이극배와 홍언필의 몸가짐에서 잘 드러난다. (p.12)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석복수전서》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평부원군 이극배(1422~1495)의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우리가 만날 토박이말은 그 이름부터 하늘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구름칼’입니다. 이 예쁜 이름의 연장은 아주 오랜 쓰임새를 품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우리 곁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칼’을 ‘삿자리를 겯기 위하여 나무를 얇고 길게 오려 내는 데 쓰는 칼’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뜻을 제대로 알려면 ‘삿자리’와 ‘겯다’는 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삿자리’는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를 말하고, ‘겯다’는 갈대나 대나무 같은 것의 씨줄과 날줄을 어긋매끼게 엮는 것을 뜻합니다. 곧, ‘구름칼’은 우리 조상들이 갈대 자리를 만드는 데 쓰던 연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구름칼’이었을까요? 말집(사전)은 그 생김새를 ‘날은 활 모양이며 두 손으로 잡아당겨 쓴다’고 알려줍니다. 바로 이 ‘활 모양으로 휜 날’에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의 부드러운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고된 일을 하는 연장 하나에도 하늘의 멋을 담아 부르던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구름칼’이 어떻게 생겼는지 더 쉽게 알수 있는 찍그림(사진) 하나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