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의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좌보다 마음의 자리를 택했다. 궁궐의 붉은 기와와 비단 장막을 뒤로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아 승복을 입었다. 그의 이름은 무상(無相, 684~762). 형상을 버리고, 이름마저 뜻이 이름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마침내 사천(四川)의 깊은 산중에 이르렀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계곡물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땅. 그곳에서 무상은 "정중사(淨衆寺)"를 열고, 이어 "정중종(淨衆宗)"이라 불리는 선맥(禪脈)을 세웠다. ‘맑을 정(淨)’, ‘무리 중(衆)’, 번잡한 세속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는 수행 공동체였다. 그의 선풍(禪風)은 단호하면서도 소박했다. 그는 일기일성(一氣一聲)의 수행법을 제창, 대중을 이끌었다. 문자를 세우기보다, 이론을 장황히 늘어놓기보다, “지금 이 자리의 마음”을 곧바로 비추는 가르침. 수행자들은 새벽안개 속에서 좌선하고, 낮에는 밭을 일구며, 저녁이면 고요히 숨을 고르는 일상을 살았다. 이 고요한 일상에, 언제부턴가 맑은 차 한 잔이 스며들었다. 사천은 차의 고장이다. 산자락마다 차나무가 자라고, 물은 부드럽고 향은 깊다. 무상선사는 차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공공기관에서 길나무(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전정'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앙상하게 잘려 나간 나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성과라는 잣대에 맞춰 삶을 조급하게 다듬으려 했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겉모습은 조금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됨됨이로 삶의 자리를 지켜온 여러분에게 '그루'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그루'는 본디 풀이나 나무를 베어 낸 뒤 땅에 남아 있는 그 아랫동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윗부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다시금 새순을 틔울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덜어내고 남은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그루, 두 그루처럼 수를 세는 하나치(단위)로 쓰일 때 이 말은 저마다의 생명이 가진 고유한 값어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발행하는 인문 감성 누리잡지(웹진) 《담(談)》 통권 145호(3월호)가 ‘경칩(驚蟄), 흙문을 열고 감각을 깨우는 천둥소리’를 주제로 발간되었다. 이번 3월호는 24절기 가운데 만물이 깨어나는 경칩을 맞아 정체된 사회를 깨우는 ‘신진(新進)’의 기개와 기성의 문법에 갇히지 않는 ‘독립적 감각’을 입체적으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건넨다. 정조의 신진(新進) 양성, 초계문신 제도 강문식 교수는 조선 후기 학술 부흥의 상징인 ‘초계문신 제도’를 통해 정조가 꿈꿨던 인재 육성 프로젝트의 실체를 조명한다. 문과 급제자 가운데 유능한 초급 문신을 뽑아 규장각에서 재교육한 이 제도는 홍석주, 정약전ㆍ정약용 형제, 이서구 등 당대 으뜸 인재 142명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이 직접 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도맡았던 친림시(親臨試)의 운영 방식은 정체된 사회를 깨우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선조들의 뜨거운 학문적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어둠을 도려내는 인디의 감각 이민우 기자는 경칩의 깨어남을 현대 문화예술의 ‘인디(Indie) 정신’과 연결해 해석한다. 주류의 공식과 거대 자본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우리 문화유산 특별전의 새로운 전기, 관람객 40만 명 돌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이 2026년 3월 3일(화)을 끝으로 96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5년 11월 28일 개막 이후 누적 관람객 407,045명을 기록하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역사상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 2월 18일, 3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전시 막바지까지 꾸준한 관람 행렬이 이어지며 40만 명을 돌파함으로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 문화유산 특별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2월 26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전시장을 찾아 관람하였다. 인간 이순신의 서사와 몰입감 높은 전시가 만든 성공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의 성공 요인으로는 영웅의 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점이 꼽힌다. 이순신 친필본 《난중일기》를 비롯해 <이순신 장검>, 《임진장초》, 《서간첩》(이상 모두 국보) 등 모두 258건 369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을 통해 관람객들은 전장의 지휘관이자 한 인간이었던 이순신을 마주할 수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국민이 국가유산청의 정책정보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누리집(www.khs.go.kr)을 개편하고, 이를 알리기 위한 대국민 잔치를 연다. 이번 개편은 행정안전부의 정부디자인시스템(KRDS)*을 적용하여 공공서비스 일관성과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층 보편적인 화면 구성과 직관적인 차림 체계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 정부디자인시스템(KRDS): Korea Design System의 약자. 행정기관이 준수해야 할 범정부 UI/UX 디자인으로 대다수 부처가 적용하고 있음 특히, 단순한 디자인 변경을 넘어 누리집 디자인 개편안에 대한 대국민 선호도 조사 결과(‘25.8.~9.)를 바탕으로 한 수요자 맞춤형서비스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가 자주 찾는 핵심 차림(국가유산 검색ㆍ통계, 행사ㆍ공연ㆍ관람 정보, 대민ㆍ민원서비스, 정책소식 등)를 전면에 배치하여 누른 횟수가 적도록 했다. ** ‘25.8~9월간 누리집 디자인 개편안 대국민 선호도 조사 실시(753명 참여) 국가유산청은 3월 5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누리집 개편 소식을 국민에게 알리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2026년 3월 7일(토) 저녁 4시부터 《브라질 리우 카니발: 아프리카의 영혼, 삼바의 리듬》 전시 연계 행사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하 ‘파주관’)에서 삼바 음악 공연을 연다. 이번 공연에는 평소 브라질 삼바 음악에 깊은 애정을 지닌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Lucid Fall)을 비롯하여 전문 공연단이 브라질 삼바의 대표 작곡자이자 가수인 카르톨라(Cartola, 1908~1980)의 노래들을 재해석하여 선보인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브라질 삼바 삼바는 아프리카에서 브라질 농장에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의 고난과 애환을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졌던 음악과 춤 중심의 문화이다. 2031년 세종 이전 건립을 대비하여 세계민속으로 주제를 확장 중인 국립민속박물관은 작년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대표적 삼바 전승단체인 망게이라(Mangueira) 삼바스쿨의 자료를 수집하여 현재 파주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카르톨라의 삼바 음악과 함께하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 전시 카르톨라는 브라질 삼바를 대표하는 작곡자이자 가수로, 망게이라 삼바스쿨 설립의 주요 단원이며, 서정적이고 시적인 가사, 절제된 선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공연예술단체 연희집단 The 광대(대표 안대천)가 대만 대표 축제 <2026년 대만 등불축제>(2026台灣燈會在嘉義, Taiwan Lantern Festival)에서 전통연희 공연을 펼친다. 본 공연은 3월 9일(월)과 3월 10일(화) 대만 자이현 정부 광장 앞 무대에서 밤 9시 모두 2회 열린다. 오랜 전통을 가진 대만의 대규모 축제에서 연희집단 The 광대는 수준 높은 우리나라 전통연희 무대로 함께한다. <2026년 대만 등불축제>는 오는 3월 3일(화)부터 3월 15일(일)까지 자이현 일대에서 열린다. 원소절(元宵節)을 기념하는 이 축제는 매회 나라 안팎 관광객의 주목을 받는 대표적인 봄맞이 축제다. 특히 올해는 게임 브랜드 닌텐도(Nintendo)와 협업해 ‘슈퍼 마리오(Super Mario)’ 주제마 등불 구역을 조성하고 다양한 체험형 공간을 마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연희집단 The 광대 대표 안대천은 “대만 공식 대표축제와 함께 해 매우 뜻깊다”라며 “밤하늘의 등불을 배경으로 연희집단 The 광대만의 신명과 멋을 담은 전통연희 공연을 약속한다”라고 전했다. 화려한 판굿과 사자놀이, 눈길을 사로잡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시립서울청소년센터(관장 정진문)는 공교육의 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은 고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적응과 진로 탐색, 다양한 대안교과를 제공하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 ‘동그라미학교’를 운영한다. 동그라미학교는 출석을 통해 정규학교의 교육과정이 인정되는 위탁교육기관으로 특성화 교육인 제과제빵 및 바리스타 등 대안교과 수업을 통해 전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여 청소년들의 진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등 다양한 진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육과정은 1년 과정으로 보통교과(국어, 영어, 수학 등) 및 대안교과(제과ㆍ제빵, 바리스타, 슈가아트 등)로 진행된다. 현재 동그라미학교는 2026학년도 새 학기를 맞아 신규 위탁생을 모집 중이며, 전화상담 접수 뒤 내방상담, 준비적응교육 과정을 통해 최종 입학이 확정된다. 한편, 시립서울청소년센터는 대한민국 1호 청소년 기관으로,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격형성과 균형 있는 성장을 돕기 위한 다양한 청소년 활동을 수행하여 청소년들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바지함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이 지도는 1872년에 만들어진 경기도 광주 지도 일부다. 방향은 왼쪽이 남쪽이고 위쪽이 서쪽이다. 이 지도에서 오른쪽 맨 위에 남한산성의 동대문이 보인다. 보다시피 산수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지리 정보를 잘 갖추고 있다. 유심히 보면 주막(酒幕) 정보가 많이 보인다. 위에서만도 4개의 주막을 찾아볼 수 있다. 조지 포크는 1884년 12월 13일 이천의 주막을 떠나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그는 여행기에 세밀화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그 여정이 지도상에서 어디일까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 1872년도 지도를 보니 감이 어느 정도 잡힌다. 사경을 헤매던 그가 기적처럼 임금이 보낸 관리(선전관-宣傳官)를 만났던 길, 그리고 그들의 안내로 묵었던 주막을 이 지도에서 가늠해 보았다. 어명을 들고 나타난 관리를 만나는 이적이 일어난 곳은 보라색 네모 친 구간의 길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또한 그들이 만난 뒤 남한산성으로 가는 도중에 묵었던 주막은 보라색 물방울 모양을 친 곳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한다.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2월 1일부터 9일까지 모두 5회 진행된 해우림 국악관현악단과 사랑국악앙상블의 불가리아 순회 연주는 단순한 나라 밖 공연을 넘어, 전통음악의 나라 밖 소개라는 차원을 넘어, 장르 간ㆍ문화 간 번역의 가능성을 실험한 복합 예술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필자 이진경(사랑국악앙상블 단장)과 해우림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안준용이 함께 구축한 이번 무대는 국악관현악의 구조적 밀도와 현장성이 국제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단순한 연주 교류가 아니라, 음악ㆍ신체·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하나의 문화적 제안이었다. 불가리아 전통음악과의 협업은 공연의 핵심 축이었다. 서로 다른 음계와 리듬 체계를 지닌 두 전통음악은 충돌하기보다 병치와 공명을 통해 새로운 음향적 마당을 형성했다. 한국 전통악기의 농현과 불가리아 특유의 선율 감각은 서로를 대비시키면서도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전통이 고립된 유산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지금의 언어임을 드러냈다. 이는 문화 교류가 단순한 병렬적 나열이 아니라, 상호 호흡을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안무는 이러한 음악적 만남을 공간적으로 조직하는 또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