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교수가 이번에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책을 냈습니다. 그동안 이 교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남성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고, 10년 이상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밝혀내는데 온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리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제목으로 한 권에 20명씩 총 10권으로 2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지요. 그리고 2018년에는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선정한 여성독립운동가 298명에다가 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하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도 냈습니다. 이 책을 낼 때만 하더라도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여성 독립운동가가 298명에 불과하였군요. 그런데 2021. 3. 31. 현재에는 도합 52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광복 후 2018년까지 298명에 불과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그 후 3년 만에 526명으로 늘었다면 상당히 늘어난 것이겠네요. 그렇지만 이 교수는 이 숫자도 얼마 안 된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서훈이 늘어나게 된 데에는 이 교수의 공도 적지 않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어떤 모임에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일생의 지기(知己)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낀다던가, 여행하다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소를 만나게 되든가 할 때 말입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보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뜻하지 않는 보석 같은 책을 만났는데, 오래간만에 ALP 6기 동기인 정우철 회장님 사무실을 방문한 때였지요. 정 회장님은 회장실 옆에 따로 서재를 만들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많이 사서 비치해둡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임을 못 하지만, 예전에 동기 모임 때면 정 회장님은 가끔 이런 책을 갖고 오셔서 동기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방문하였을 때 정 회장님이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책이 오래간만에 발견한 보석이었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마틴 슐레스케라고 독일의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쓴 책입니다.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는 나무인데, 슐레스케는 가문비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으로 낸 것입니다. 단순히 바이올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줌의 자살 약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던 혹독한 세월을 임은 어찌 참아내셨단 말입니까?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나라 잃은 35년은 실로 혹독한 세월이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다. 갓난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일제는 흥성했고 독립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임들은 계속 싸웠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윤옥 교수가 2019년 펴낸 《여성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는 이런 임들을 위한 헌사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 혹은 스스로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기도 했으며 경찰에 의해 피살되기도, 독살되기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의 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임’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주 간략한 서사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에 비해, 우리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날은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뒤였다. 때마침 방학 중이었는데 학교로부터 교직원들을 긴급 소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로 달려가니 운동장 한편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학교측에서는 나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수업용으로 쓰던 각종 교재와 서적류, 공문서 등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나와서 구덩이에 던져 넣으라고 했다. 경황없이 주섬주섬 가져가 구덩이에 넣자 이내 불을 붙였다. 종이 서류들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던져진 물건 중에는 나무로 만든 가미다나(神棚: 일본의 가정이나 관공서, 상점 등에 꾸며 놓고 날마다 참배하는 작은 제단)도 있었다.” - 스기야마 도미 씨의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 가운데서- 조선에서 태어나 19살부터 대구달성공립국민학교 교사로 5년을 근무한 일본인 스기야마 도미(杉山とみ, 100살)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한국인이 맞이한 광복의 기쁨과는 정반대의 상황과 맞닥트렸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조국, 일본의 패전을 조선땅에서 맞은 것이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조선에 건너와 처음에는 전라도 영광에서 넓은 땅을 소유하고 과수원을 경영했으며 어느 정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현상금 100만 원. 일제가 약산 김원봉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 액수다.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 60만 원의 약 두 배, 오늘날의 값어치로 자그마치 3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그러나, 약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현상금 360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끊임없이 위험한 일을 도모해야 하고, 밀정은 판치는 가운데, 한번 잘못 발을 디디면 그걸로 끝인 살얼음판. 그는 그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걸어 해방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이 오히려 약산의 영화로운 한때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방 정국에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친일 경찰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일제 치하에서도 당하지 않았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약산의 삶이 《타짜》, 《식객》 등 만화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의 펜 끝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약산의 일대기를 그린 이 만화, 《독립혁명가 김원봉(가디언)》은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진행된 성남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식의 모범’이라는 뜻의 《의궤》. 이 《의궤》는 영상도, 사진도 없던 조선에서 많은 복잡한 의식과 행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졌던 비결이었다. 고려에는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한 행사가 끝나면 그 행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정리해 두는 ‘공식 행사보고서’이자, 행사를 치른 적이 없는 이들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행사 지침서’였다. 유지현이 글을 쓰고, 이장미가 그림을 그린 《조선왕실의 보물 의궤》는 ‘의궤’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대화체로 된 친근한 설명과 함께 사진과 그림이 풍부히 실려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의궤를 쉽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이런 매력을 알아본 독자가 많았던 덕분인지, 2009년 처음 출판됐음에도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책은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의궤를 임금의 탄생, 임금의 활쏘기, 임금의 혼례, 임금의 제사, 임금의 건축, 임금의 행차, 임금의 죽음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해당하는 의궤를 소개한다. 의례와 예법이 발달했던 영ㆍ정조 시대에 많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학교에 다니던 학생. 농사를 짓던 농부. 절에서 참선하던 승려.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잡화상. 독립은, 이처럼 ‘평범한’ 이들의 꿈이었다. 대한독립은, 이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독립을 향해 내달렸던 평범한 이들을 쉽게 잊곤 한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우는, 혹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접하는 위인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주연이다. 그러나 이런 빛 뒤에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을 이들이, 독립운동사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보는 이 없는 초라한 단역으로 아스라이 잊힌 것이다. 양경수 작가는 이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등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만화책을 여럿 펴내며 재치 넘치는 그림체로 유명했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빼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든 수감자카드에 기록된 이들 가운데 100인을 말끔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이 책 《대한독립,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에서는 무대가 끝나고 각자의 배역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간 스무 권에 이르는 책을 쓴 이윤옥 작가가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를 펴냈다. 이윤옥 작가는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의 높고 낮음과는 무관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독립운동사 책’에는 같은 사건이라도 여성의 활약상이나 이름 등이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책의 서술 또한 남성 위주, 학식이 있는 사람,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독립운동사 속으로 불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크게 제1장 시대별로 본 여성독립운동, 제2장 신분별로 본 여성독립운동, 제3장 나라 밖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별에서는 여성의 근대교육이 태동하던 1910년 이전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5년까지를 다루었으며 특히 1910년대에는 3·1만세운동의 중심이었던 여학생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 책에서 만세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여학생 59명의 명단을 처음 공개하고 있으며, 배화여학교 만세운동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최문정, 창해)》은 그런 약육강식의 서사구조에 반기를 든다. 과학교사였던 저자는 불합리한 인사 조치에 우울증을 얻어 휴직의 시간을 가졌다. 약자의 설움을 느끼던 그 시절, 평소 관심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시름을 달랬다.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모습은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렸던’ 자신의 모습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걷는 독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걷는 독서라니?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책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걸으면서 묵상하고, 주위 자연과 교감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걷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박 시인은 어린 날 마을 언덕길이나 바닷가 방죽에서 풀 뜯는 소의 고삐를 쥐고 책을 읽었고, 학교가 끝나면 진달래꽃, 조팝꽃, 산수국꽃 핀 산길을 걸으며 책을 읽었답니다. 그러다보면 책 속의 활자와 길의 풍경들 사이로 어떤 전언(傳言)이 들려오곤 했답니다. 감옥 독방에 있을 때에도 박 시인은 ‘걷는 독서’를 계속합니다. 비록 세상 맨 밑바닥 끝자리에 놓인 두 걸음 반짜리 길의 반복이었으나, ‘걷는 독서’를 하는 동안은 박시인의 정신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박시인은 감탄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철저히 고립되고 감시받는 감옥 독방의 그 짧고도 기나긴 길에서 아, 나는 얼마나 많은 인물과 사상을 마주하고 얼마나 깊은 시간과 차원의 신비를 여행했던가!” 자유의 몸이 된 뒤, 박 시인의 걷는 독서는 국경 너머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도 계속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