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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신재효ㆍ진채선, 판소리 역사를 바꾼 두 예인의 만남

《귀명창과 사라진 소리꾼》, 한정영 글, 이희은 그림, 토토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봄이 드니

구경 가세 구경 가세 도리화 구경 가세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인가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화인가

아리땁고 고을시고 나와 드니 빈방 안에

햇빛 가고 밤이 온다 일점 잔등 밝았는데

(p.144)

 

<도리화가>를 부르는 채선의 목소리는 고왔다. 스승 신재효가 선물해 준 곡이었다. 한때 아이돌 수지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영화, <도리화가>의 제목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포스터를 가득 채운 수지의 해사한 얼굴과 그 뒤로 보이는 배우 류승룡의 근엄한 표정이 아직도 쉬이 잊히지 않지만,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해서인지 신재효과 진채선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이 책, 《귀명창과 사라진 소리꾼》은 ‘우리나라 역사를 수놓은 두 인물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제로 한 토토북의 ‘아름다운 만남’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로 펴낸 책이다. 진채선과 신재효, 이 둘의 만남이 어떻게 판소리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는지 풀어낸 청소년 소설로,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그려놓아 재밌게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요즘은 오히려 소리꾼이라고 하면 여자 명창을 쉽게 떠올리지만, 조선 말기만 해도 여자 소리꾼은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에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은 실로 한국 판소리의 역사를 바꿔놓았고, 진채선을 시작으로 한국에도 여류 판소리 명창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진채선의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과 신재효의 탁월한 가르침이 있었다.

 

진채선이 처음 신재효의 ‘동리정사’를 찾아왔을 때 신재효의 반응 역시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리정사는 신재효가 자신의 호인 ‘동리’를 따서 지은 소리꾼 강습소와 같은 곳으로, 소리를 하기만 하면 무료로 숙식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도 배울 수 있어 온 나라에서 소리꾼이 몰려들고 있었다.

 

신재효는 여기가 기방이냐며 동리정사를 찾아온 채선을 내쫓으려 했지만, 진채선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동리정사는 신분과 관계없이 소리를 가르치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곳이 아니냐며 여자라서 꿈을 접을 수는 없다고 맞섰다.

 

(p.147)

“동리정사는 신분의 차별이나 편견이 없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리 한 번 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치시려는 건지요?”

이번에도 다부진 말투였다.

“방금 네가 답을 냈지 않느냐? 조선에는 여자 소리 광대가 없느니라!”

“하오면 제가 처음으로 여자 소리 광대가 되겠습니다.”

 

결국 신재효는 동리정사에 그녀를 받아들이고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연예기획사에 처음으로 여자 가수 연습생이 들어온 셈이었고, 신재효는 이들의 연습과 선보임을 총괄하는 ‘귀명창’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고을 이방 자리를 물려받았던 그는 하루가 멀다고 양반들이 여는 연회에 나갈 소리꾼을 구하다 보니 어느새 귀가 트이게 되었다.

 

 

재산도 많고 중인이라는 신분도 나쁘지 않았지만, 양반들에게 당하는 멸시와 하대에서 오는 울분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동리정사를 세워 누구에게나 소리꾼이 될 기회를 주고, 양반들이 소리꾼을 광대라고 업신여길 때 자신은 이들을 귀하게 대해 주고, 양반들이 되레 소리를 듣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진채선은 그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리꾼이었고,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조선에서 그 누구도 천하다 여길 만한 신분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으뜸 소리명창이 되면 조선의 천대받는 여인들도 꿈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수련에 매달렸다. 신재효는 소리꾼도 양반들에게 천대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예인이라 생각하고 품격을 갖추어야 하니 글 또한 열심히 배우라 일렀다. 채선은 이를 따라 글까지 열심히 배우며 진정한 예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소리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채선은 한 연회 무대에 섰다가 여자 소리꾼의 소리는 역시 들을 게 못 된다는 양반들의 모진 질타를 받자 백일 독공에 들어갔다. 토굴에서 백일동안 오로지 소리만 하는 수련이었다. 백일을 채 버티지 못하는 소리 광대도 많았지만 채선은 목에서 피를 쏟고 다시 소리를 하기를 반복, 결국 백이십일만에 기절한 채로 토굴에서 업혀 나왔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채선은 마침내 득음하여 고창을 시작으로 가까이는 정읍, 멀게는 광주 땅까지 가서 소리를 했다. 점점 좋아지는 채선의 소리를 보던 신재효는 마침내 경복궁 낙성식 연회에 채선을 보내는 ‘통 큰 결정’을 한다. 채선에게 임금과 대원군 앞에서 소리를 하는 최고의 무대에 서는 기회를 선물한 것이다.

 

채선은 경복궁 낙성식 이후로 동리정사로 돌아올 수 없었다. 채선의 소리에 반한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궁궐의 예인으로 채선을 발탁한 것이다. 신재효는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채선의 밝은 앞날을 조용히 기원했다. 채선이 경복궁에서 돌아오지 않은 뒤로 두 사람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자세히 실려있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이는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탓도 있는 듯하다.

 

진채선과 신재효, 이 둘은 한국의 첫 여류 소리꾼 배출이라는 꿈을 위해 함께 달렸던 스승과 제자이자, 같은 꿈을 꾸는 동지였다.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금녀의 구역이었던 판소리계에서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렸고, 판소리 소리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사설집이 판소리계 전체의 발전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목구멍이 찢어지고, 피를 뱉으며 정신이 까무러칠 때까지 소리를 했던 진채선의 노력, 그리고 그런 제자의 재능을 아끼고 독려했던 스승 신재효의 안목. 이들의 아름다운 만남은 한국의 소리계에 크나큰 행운이었다.

 

책 후반부에는 판소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아니리, 발림 등 판소리 용어에 대한 설명도 함께 실려있어 이해를 돕는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여자 명창의 존재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 끝에 가능했던 것인지를 알고 나면, 책장을 덮을 때쯤 여류 명창이 부르는 판소리 한 대목이 슬며시 생각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