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릴 적 집 앞엔 Y자형 개울이 흘렀습니다. 버들치, 깔딱 메기, 가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 가재가 사라졌으니, 전기와 가재는 역상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은 심심산골 1급수나 되어야 가재를 볼 수 있으니 그 많던 가재가 희귀종이 되었습니다. 가재는 잡식성으로 죽은 생물의 사체나 물속에 가라앉은 썩은 나뭇잎과 유목, 수초 등의 식물성 유기물들을 주로 섭취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옆새우, 플라나리아나 살아있는 물고기나 올챙이 등도 사냥하는 포식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싸리나무를 삽 한 자루 길이만큼 잘라내서 개구리를 잡아 몸통을 제거하고 다리 부분을 막대 끝에 칭칭 동여매어 가재가 있을 만한 돌 밑에 넣어두면 가재들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그다음은 가재와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지요. 살살 잡아당기면 먹이에 눈이 먼 가재가 딸려 나옵니다. 양재기에 담아놓으면 호기롭게 집게발을 벌리고 달려드는 것이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을 연상시키지요. * 당랑거철 : 사마귀가 수레를 멈추려고 앞발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 가재는 갑각류입니다. 먹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잡아 온 가재를 불에 구워 먹곤 했지요. 불에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98년 10월 29일 가을빛이 완연한 종로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양반과 천민, 선생과 학생, 양가 부인과 기생, 선비와 승려, 갓바치, 백정 등등 금방 수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다. 앞에 단상이 놓여있다. 행사 사회를 보는 독립협회 인사가 연설자를 소개한다. 그 순간 군중들 사이에 일순간 침묵이 흐른다. 이내 ‘우와…’ 함성이 터진다. 첫 연설자로 소개된 사람, 그는 뜻밖에도 박성춘이라는 백정이 아닌가. 박성춘이 뚜벅뚜벅 단상으로 걸어가 열변을 토한다.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길은 관과 민이 합심하여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차일(遮日: 햇볕가리개)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역부족이지만 많은 장대를 합하여 받치면 그 힘이 매우 공고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과 민이 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만만 년 이어지도록 합시다.” 청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고 박수가 터진다. 사회 저명인사가 아닌 천민 중의 천민인 백정이 만민 앞에 우뚝 선 것 자체가 뇌성벽력이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세계 처음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30년이 지난 요즘에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잘 정착되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의 98%를 재활용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2024.8.9)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가축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하는 우리나라의 정책을 극찬했다. 국민은 불편을 감수하고서 분리수거에 협조한다. 돈이 들더라도 종량제 봉투를 사서 사용한다. 귀찮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여 배출한다. 이처럼 환경 보호에 적극 협조하는 착한 국민이 있음에도 국제 환경단체는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른다. 국민 대부분은 한국이 기후 악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왜 한국은 기후 악당이 되었을까? 지난 2016년 영국 기후 변화 전문 미디어 ‘Climate Home News’는 국제 환경단체인 ‘기후행동추적(CAT)’의 분석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 4개 국가를 ‘기후 악당’이라고 평가했다.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이 기후 위기에 무책임하다는 이런 평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배연국 원장님의 책 《내 삶이 보물이 되는 순간》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난 뒤, 다시 책을 휘리릭 넘기다가 성공학의 창시자 오리슨 스웨트 마든의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든의 말이 저에게 다시 펜을 들게 만드네요. 이 말은 <행복 레시피>라는 글에 인용된 말입니다. <행복 레시피>는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인디언 체로키족)인 11월의 첫 글이구요. 오리슨 스웨트 마든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나뭇잎 하나에 감탄하고, 꽃 한 송이에서 신성한 의미를 찾는다. 아름다운 경치만 보면 기쁨으로 영혼이 울렁거리고, 저녁노을이 질 때면 그의 영혼까지 발개진다. 다른 한 사람은 그저 평범한 나뭇잎 하나, 꽃 한 송이, 저녁노을이라고 무심하게 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미적 감상과 미적 쾌락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 원장님은 36살에 대장암으로 숨진 영국 극작가 샬롯 키틀리를 얘기하면서, 마든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키틀리는 죽음을 앞두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하루하루가,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며 부디 삶을 즐기며 살라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 공자의 《시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난 일의 잘못을 주의하여 뒷날에 어려움이 없도록 조심한다.” 이 구절이 바로 《징비록》을 쓴 이유이다. 징계할 징(徵). 삼갈 비(毖). 부끄러운 잘못을 스스로 꾸짖고 앞으로 삼갈 바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승리를 복기하기는 쉬워도, 패배의 자취를 더듬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특히 한 나라의 정승으로, 임금 다음으로 그 패전에 책임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책임지는 용기’가 대단한 까닭이다. 최지운이 쓴 이 책, 《책임지는 용기, 징비록》은 망국이 눈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시기, 전쟁을 총지휘하며 이끌었던 한 재상의 ‘전쟁회고록’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전후 사정뿐만 아니라, 최고위급 관료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세세한 일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훗날 숙종은 책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기도 했다. 전쟁을 총지휘하는 자리에 있었던 유성룡은 모든 사건을 보고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누구보다 전쟁에 대해 총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을 가장 높은 시점으로 조망할 수 있었던 이런 인물이 붓을 들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백로(白鷺) 쓸쓸히 외다리로 졸고 있나(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있나(빛) 물에 비친 제모습 바라보니(초) 조는듯 그모습 중도 같구나(심) ... 24.10.26. 불한시사 합작시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으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작업 중 다이너마이트 불발탄이 폭발하여 눈앞에서 죽은 사람만도 10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이 갈가리 찢겨 나갔고, 바윗돌이 가슴을 덮쳐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사체의 행방은 잘 모른다. 강제징용자들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으로 죽었다. 터널 공사 중 나온 돌덩어리를 나르는 짐차에서 떨어지거나 터널 받침목을 제대로 설치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 나가는 것을 수백 번 이상 목격했다. - 나가노 히라오카댐(長野平岡) 강제연행노동자 김창희 증언, 경북 월성 출신, 160쪽 -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수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어디서 어떠한 극심한 노동을 하며 삶을 마감했을까? 조선인들의 강제노역지는 일본 전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만 특히, 발전소용 댐 건설지, 비행장 건설 현장, 도로 건설지, 군수용품 공장, 탄광 등이 유력한 곳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8일, 조선인 강제노역을 다룬 《본토결전과 외국인 강제노동》을 쓴 곤도 이즈미(近藤 泉, 73) 씨 일행과 대담을 했다. 곤도 이즈미 씨는 나가노현 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6월 어느날 궁녀들이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살금살금 깨금발을 한 채 복도를 걷고 있다. 장지문 앞에서 발을 멈춘다. 숨을 죽인 채 창호문에 구멍을 뜷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 안에서는 고종 임금이 미군함 트렌턴호Trenton의 함장을 비롯한 사관생들을 접견하고 있다. 트렌턴호가 최초의 방미 사절인 민영익, 서광범, 변수를 뉴욕항에서 태운 후 6개월 동안의 항행 끝에 제물포항에 들어온 것은 1884년 5월 31일이었다. 그 배에는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라는 이름의 해군 소위가 동승했다. 당시 한국말을 구사하는 미국인이 천지에 오직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조지 포크였다. 그도 그날 트렌호의 사관들과 함께 조선의 임금을 알현하고 있다. 그날의 일을 그는 7월 22일자 부모님전 상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저희가 임금을 알현할 때 궁녀들이 창호문 뒤에서 우리를 엿보려고 안달하던 광경이 재미있었답니다. 알현했던 방은 사방이 창호 문이었답니다. 일분 정도마다 '푹!' 하고 창호지가 뚫리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구멍을 내어 엿보려는 것이지요. 머리가 영리한 여자들은 손에 침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류(韓流). 우리 문화가 파도처럼 흘러가 세계를 매료시키는 현상이다. 드라마에서 음악, 그리고 이제는 소설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우리 문화는 현지에서 변주를 거듭하며 문화 다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이 옛날에도 있었을까? 물론이다. 그것도 상당히 먼 옛날에 말이다. 바로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파한 아직기와 왕인이 그 처음이다. 이들 덕분에 아직도 일본에는 백제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찍이 왜는 백제와 가까이 지내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백제 근초고왕은 왜왕에게 ‘칠지도’라는 칼을 내려주기도 했다. 이런 교류의 연장선에서 백제에서 학문으로 이름 높던 박사였던 아직기는 임금의 명으로 왜로 파견되었다. 아직기를 왜로 보낸 임금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근초고왕이나 근수구왕, 아신왕 가운데 아신왕이 가장 유력한 설로 인정받고 있다. 아신왕 때 왜와 교류가 무척 활발했기 때문이다. 아직기는 말 두 필과 칼, 거울을 가지고 왜로 건너갔다. 왜왕에게 말 타는 법과 기르는 법을, 토도치랑자 왕자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건너가 토도치랑자 왕자와 왜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수왕 피라미드 상큼한 옛 숨결 고운 옛 살결(빛) 석양에 붉게 물든 저 금자탑(돌) 돌도 삭아서 무너지는 세월(달) 오늘도 우뚝 선 강건함이여!(심) ... 24.11.10. 불한시사합작시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