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넷째 춘분(春分)입니다. 이날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어서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집니다. 춘분 즈음엔 논밭에 뿌릴 씨앗을 골라 씨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에서는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하지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은 이 음력 2월을 이르는 것으로, 바로 춘분을 앞뒤 때를 가리킵니다.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한해 내내 배가 고프다.’ 하였습니다. 춘분은 겨우내 밥을 두 끼만 먹던 것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지금이야 대부분 사람은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고작이었지요. 그 흔적으로 “점심(點心)”이란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간단한 다과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 하지만, 왕실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은 왕실문화도감 《무구(武具)》를 펴냈습니다. ‘무구’는 유물의 다양한 그림과 시각자료를 함께 수록한 책으로 ’군사‘를 주제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펴내는 사전식 도감입니다. 그동안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 문화에 대해 일반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축적을 위해 《조선왕실 복식(2012)》, 《궁중악무(2014)》, 《국가제례(2016)》, 《의장(2018)》을 펴냈으며, 이번에 5번째로 《무구》를 펴낸 것입니다. 이 책에는 먼저 ’궁시(弓矢)‘ 곧 각궁, 예궁, 죽궁 등의 활과 화살을 수록하였습니다. 이어서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여 철환이나 화살을 발사하는 무기인 화포와 비격진천뢰, 조총, 그리고 서양식 청동제 화포인 불랑기 등까지 함께 수록하였지요. 또 조선 시대 군복에 차던 칼인 환도(環刀), 운도, 언월도부터 사인검(四寅劍,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등 인(寅) 자가 네 번 겹쳐지는 시간에 맞추어 쇳물을 부어 만든 보검)과 같이 상징적인 칼까지 정리하였습니다. 그밖에 기창, 용도창, 마상창 등 창은 물론 긴 몽둥이에 짧은 몽둥이를 고리로 연결한 타격 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 제102호 ‘충주 정토사터 홍법국사탑 (弘法國師塔)’이 있습니다. 고려 목종 때의 스님 홍법국사의 탑으로, 고려 현종 8년(1017)에 세웠습니다. 또 이 탑은 충청북도 충주시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을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겼습니다.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활약하였던 유명한 스님으로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선(禪)을 유행시켰으며,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를 거쳐 목종 때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지요. 기단(基壇)은 네모난 바닥돌을 깐 뒤에 8각의 아래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높직한 괴임을 두어 가운데 받침돌을 올린 뒤 다시 윗 받침돌을 얹어 놓은 모습입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용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고, 윗 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탑에서 가장 큰 특징은 탑신(塔身)의 몸돌로,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지요. 몸돌에는 공을 가로ㆍ세로로 묶은 듯한 십(十)자형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무늬를 두어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붕돌은 별다른 장식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찌 분칠한 것을 참 자색이라 할 수 있으랴. 옛사람의 시에, ‘분ㆍ연지로 낯빛을 더럽힐까 봐 화장을 지우고서 임금을 뵈네’라고 하였으니, 앞으로는 간택 때에 분칠하지 말게 하여 그 참과 거짓을 가리라." 이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연산 11년(1505년) 1월 11치 기록입니다. 이는 단순히 분 화장만 금한 것이 아니라 참 얼굴을 알기 위하여 쓰지 못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는 자연히 연지화장도 포함된 것이지요. 이는 고종 3년(1866년)에 행해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에서도 보이는데, 초간택 시에 참여하는 처자들이 궁에 들어올 때는 분만 바르고 성적(成赤)은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성적은 이마를 4각이 되도록 족집게로 솜털을 뽑고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는 색채화장을 뜻하지요. 그런데 여기 이마를 4각이 되도록 족집게로 솜털을 뽑는 것을 ‘진수아미(螓首蛾眉)’ 미용법이라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등록문화재 제486호 <운낭자상>의 얼굴화장은 진수아미(螓首蛾眉) 미용법을 따랐습니다. 이 화장법은 고대 여인들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한 미용법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 중기의 화원 김명국(金明國)의 〈달마도〉가 있습니다. ‘달마도’란 중국에서 6세기 무렵 활동한 선종의 초대 조사 달마대사를 그린 선종화입니다. 달마대사는 인도 남쪽 지방 출신답게 눈이 움푹 들어가고 코가 갈고리처럼 생겼으며, 눈썹은 매우 짙고 수염도 수북하게 많습니다. 귀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다는 특징도 있는데 무엇을 꿰뚫어 보려는 듯 커다란 눈으로 매섭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김명국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김명국을 꼭 다시 보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는 일본에서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선종이 널리 퍼져 있어서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가 일본에 갔을 때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그림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명국은 이 달마도를 얼마나 빨리 그렸는지 붓질을 몇 번 했는지 그림에서 세어 볼 수 있을 정도지요. 김명국은 그림처럼 성격도 매우 호탕하고 거침이 없었으며,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호를 취옹(酔翁)이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 자락에는 운주사(雲住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은 도선(道詵)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1481년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씩 있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런데 운주사에서 가장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수많은 석불과 석탑 가운데 누워있는 부처님 모습 곧 ‘와불(臥佛)’입니다. 이 와불은 길이 12m, 너비 10m의 크기로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누운 부처님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친견할 수 있습니다. 대관절 이 부처님은 왜 이렇게 누워만 계실까요?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늘나라의 석공들을 동원하여 하룻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만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천불천탑을 만드는 도중 국사를 모시던 동자승 하나가 밤새도록 노스님을 모시다가 쉬고 싶은 생각에 그만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날이 샌 것처럼 했다고 합니다. 이때 모든 불상과 탑이 완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와불의 완성만을 남겨 놓았는데 그만 닭 우는소리에 하늘나라 석공들이 일을 멈추고 모두 하늘로 가버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겨울내내 목이 말랐던 꽃들에게 / 시원하게 물을 주는 고마운 봄비 / 봄비가 내려준 물을 마시고 / 쑥쑥 자라는 예쁜 꽃들 / 어쩜 키가 작은 나도 / 봄비를 맞으면 / 키가 쑥쑥 자라지 않을까? / 봄비야! 나에게도 사랑의 비를 내려서 / 엄마만큼, 아빠만큼 크게 해줄래?” -홍가은/강릉 남강초교 3년- 파릇파릇한 새싹을 키우는 봄비는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가은이의 꿈도 쑥쑥 자라게 합니다. 우리 토박이말 중엔 비에 관한 예쁜 말이 참 많습니다. 봄에는 ‘가랑비’, ‘보슬비’, ‘이슬비’가 오고 요즘 같은 모종철에 맞게 내리는 ‘모종비’, 모낼 무렵 한목에 오는 ‘목비’도 있지요. 여름에 비가 내리면 일을 못 하고 잠을 잔다고 하여 ‘잠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내리는 시원한 소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 세차게 내리는 비는 ‘달구비’, ‘무더기비’(폭우, 집중호우), ‘자드락비’, ‘채찍비’, ‘날비’ ‘발비’, ‘억수’ 등도 있습니다. 또 가을에 비가 내리면 떡을 해 먹는다고 ‘떡비’가 있고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찔끔 내리는 ‘먼지잼’도 있습니다. 또한, 볕이 난 날 잠깐 뿌리는 ‘여우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부분을 따내거나 꼭지 옆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낸 다음 거기에 씨앗을 갈무리해 두는 그릇이 ‘뒤웅박’입니다. 뒤웅박은 두베, 됨박, 두벵주름박, 뒝박, 두뱅이주룸박, 두룸박 같은 말로도 부릅니다. 경북 상주지방에서는 오짓물로 구운 것을 쓰며, 박이 나지 않는 데서는 짚으로 호리병처럼 엮어서 쓰기도 하지요. 또 함경도 지방에서는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속이 빈 작대기를 꿰어 씨를 뿌릴 때 썼습니다. 뒤웅박의 모양은 보통 바가지처럼 둥글지만, 호리병처럼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박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뒤웅박은 씨앗을 갈무리하는 데만 쓰지 않고, 도시락처럼 쓰기도 하는데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밥을 담아두면 잘 쉬지 않습니다. 그 밖에 달걀 따위도 넣어두며, 가을에 메뚜기를 잡아 담는 통으로도 썼습니다. 흔히 처마 밑이나 보꾹(지붕의 안쪽) 밑 또는 방문 밖에 매달아둡니다. 뒤웅박은 보통 씨앗 5∼10리터를 담을 수 있지요. ‘뒤웅박’이 들어간 속담을 보면 “뒤웅박 신고 얼음판에 선 것 같다”가 있는데 이는 몹시 위태로워서 불안하고 조심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또 “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위는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최순우 선생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에 나오는 글 일부입니다. 최순우 선생은 ‘배흘림기둥’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사무치는 고마움을 얘기했을까요? 한국 전통집들은 백성집으로부터 궁궐에까지 모두 나무집 곧 목조건축입니다. 목조건축의 기둥은 원통기둥, 배흘림기둥, 민흘림기둥의 3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먼저 ‘원통기둥’은 기둥머리ㆍ기둥몸ㆍ기둥뿌리의 지름이 모두 같은 기둥을 말합니다. 이게 보통 집의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와는 달리 ‘민흘림기둥’은 기둥머리 지름이 기둥뿌리 지름보다 작게 마름질(옷감이나 재목 등을 치수에 맞추어 마르는 일) 한 기둥인데 구조적이기보다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하지요. 해인사 응진전(應眞殿),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수원 화성의 장안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배흘림기둥’도 있습니다.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중간 곧 기둥몸이 굵고 위(기둥머리)ㆍ아래(기둥뿌리)로 가면서 점차 가늘게 되어가는 모양의 기둥입니다. 배흘림기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주종 1,250돌을 맞아 지난 2월 8일(월)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활용한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 “성덕대왕신종 소리체험관”을 일반 공개했습니다.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르는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지요. 이 종은 맨 처음 봉덕사에 걸려있었지만, 영묘사로 옮겼다가 1915년엔 박물관으로 옮겼는데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함에 따라 이 종도 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으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의 양식이 풍요롭고 화려할뿐더러 종은 장중하면서도 맑은소리와 유난히 길고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어 듣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이 있지요. 독일 고고학자 켄멜은 이 종을 일컬어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으뜸 종”이라고 평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 1년 동안 준비 작업을 거쳐 신라미술관에 새롭게 문을 열게 된 “성덕대왕신종 소리체험관”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성덕대왕신종의 진정한 울림을 찾아 떠나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