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월의 논엔 물이 가득합니다. 막 심긴 모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싱그러움을 자아냅니다. 논엔 벼가 있어야 멋스러운 듯합니다. 물이 들어온 논은 개구리 세상입니다. 개구리 합창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면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어 좋습니다. 개구리 올챙이가 논을 가득 채우지만, 개구리밥 풀 또한 논의 귀퉁이에 푸르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구리밥 풀을 평초(萍草)라고 합니다. 평자가 개구리밥 평자거든요. 그런데 개구리밥 풀은 뿌리가 물 위에 떠다닙니다. 그래서 앞에 뜰 부(浮)를 덧붙이지요. 곧 부평초(浮萍草)가 개구리밥 풀의 한자식 이름입니다. 부평초는 몇 가닥 실뿌리가 있기는 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리며 연약한 목숨을 이어갑니다. 사람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을 부평초 같은 삶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지요.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무려 15번의 이사를 경험했으니 이리저리 떠도는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평초는 한 군데 정착은 못 할지라도 절대로 그 삶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부평초 같은 상황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가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재학생들이 준비한 <2024 MOVEMENT EWHA>가 지난 2024년 5월 29일 저녁 늦은 저녁 8시에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는 올해 61돌을 맞이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갖은 국내 대표 무용과다. 졸업생들은 예술분야의 주요 요직에 진출하였고 현재까지도 무용 예술계와 교육계에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학부생 작품 9편, 대학원생 작품 2편으로 자신들만의 심오한 예술철학을 펼친 <2024 MOVEMENT EWHA>의 도전과 열정은 아름답고 강했고, 거침없이 자유로웠다. 작품들의 특징은 학생들의 전공인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초월해서 컨템포러리 하다는 것이다. 즉 서양의 춤이나 과거의 것을 추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무용을 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 대학무용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의 안무 작품 수준은 과히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한국인 발레리나는 몇 명 배출했지만 정작 세계적인 안무자는 배출했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앞으로 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진회보다 더한 간신’, ‘강상윤리를 내팽개친 원흉’ - 조선시대 이런 악평을 들어야 했던 인물이 누구일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최명길 선생입니다. 최명길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을 때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화를 끌어내어 조선의 사직을 지킨 인물입니다. 당시 조선의 형편으로서는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 말고는 도대체 해답이 없음에도, 척화파 대부분은 강화니, 항복이니 말만 꺼내도 마구 공격하였지요. 만약 척화파의 주장대로 끝까지 항전했다면 청군은 하삼도까지 내려가 조선의 전 국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백성을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척화파에게 대다수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권리가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조선의 땅과 백성을 그 정도의 질곡에서 멈추게 하고 벗어날 수 있게 큰 역할을 한 최명길의 업적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조선에서 최명길은 저런 오명을 벗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그런 오명은 어느 정도 벗겨졌다고 하더라도, 최명길은 척화파를 훨씬 능가하는 평가를 받아야 함에도 여전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 땅에 가져 온 6.25 남북 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이 되었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 상태에서 남북의 허리가 잘려 서로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지도 70년이 넘었다. 6.25 전쟁의 총성과 포화가 멈춘 지 12년이 된 1965년 가을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초급 육군장교가 된 청년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휴전선 GP에서 근무하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 밑의 골짜기와 저 앞 산등성이는 전쟁 막바지에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곳. 서로가 고지를 뺏느라 남북 양측의 청년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속을 뚫고 산비탈을 기어오르던 곳이 아닌가? 여기저기 터지는 포탄에 바위가 깨져 흙이 되고 그 흙 속에 젊은이들의 피가 흐르고 배어들었던 곳이었는데 밤이 되니 교교한 달빛 속에 저 아래 흐르는 냇물 옆에 작은 노루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나왔구나. 노루는 여전히 남북의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도 여기서 죽어간 그 많은 영령의 비명과 눈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물만 마시고 있구나.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무심히 피어있고 벌나비눈 그 꽃동산에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청백리(淸白吏)! ‘청백’은 ‘청렴결백’을 줄인 말로,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 맑고(淸), 깨끗한(白) 그 이름처럼 청백하게 살다 간 이들이 있다. 조선시대 수많은 이들이 벼슬을 거쳐 갔지만, 그 가운데 청백리로 뽑힌 인물은 200명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청백리가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예요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예로부터 공직자의 으뜸 덕목은 청렴이었다. 지금이야 공직자도 재테크를 잘해야 기를 편다고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공직자가 가난한 것을 오히려 멋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공직자가 지나치게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백성의 고혈이 녹아있다 보았던 까닭이다. 임영진이 쓴 책, 《어린이를 위한 청백리 이야기》는 비교적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는 조선 시대 청백리들을 중심으로, 고려와 신라 때 청렴했던 관리들의 미담까지 모두 34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청백리의 미담을 읽다 보면 진정 어려운 길을 걸은 이들의 기백에 새삼 머리가 숙어진다. 자신이 조금만 손을 뻗으면, 조금만 눈을 감으면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그런 유혹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 봄이 너무 빠르게 가고 있다는 한탄을 하며 감성에 빠지다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문득 한 해의 시곗바늘이 5월을 지나 내일모레 6월을 가리키려 하고 있다. 어이쿠 벌써 6월인가? 한겨울 춥다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는데 이제 봄도 다 가고 일 년의 절반의 고비를 향해 시간이 달려가고 있음을 다시 느낀다. 이미 연한 봄기운을 벗어버리고 왕성한 젊음을 과시하려는 나무와 풀들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을 향신료처럼 맛보는 사이에 이제 6월이구나. 계속되는 고온과 때때로 알맞게 내리는 비로 우리들 대부분이 사는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의 담벼락마다는 넝쿨장미가 제 세상인 듯 폼잡고 피어있다. 그 장미들이 너무 심하게 자기자랑을 하는 것은 아닌가? 찬란한 아침이면 족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도 응어리진 채 떠난 수많은 이들에겐 짙은 녹음조차 부끄러운 나날인데 남은 자들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게다가 어찌 모두 빨간 장미만 쫓고 있는가 그래도 묵묵히 황허한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건 이름 모를 나무와 한결같은 바람인데 가슴을 저미는 것은 풀잎의 노래인데 유월에 들면 잠시라도 영혼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 임영준, <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사람 대부분은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는 원인을 내부적에서 찾습니다. 곧 내가 잘해서 일이 잘된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일이 실패했을 경우는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곧 외부적인 여건이나 운,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을 들어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잘 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지요.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면 내로남불인데 그것을 ‘자기 위주 편향’이라고 합니다. 자기 위주 편향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훌륭한 업무를 달성했는데 자기 능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유쾌한 일이 아닐뿐더러 다음에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좋은 결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작아집니다. 그러니 무의식적이라도 나의 공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깔린 것이지요. 요즘 연예인들의 그릇된 행동이 연일 방송에 오르내립니다. 대부분 사람은 스크린 속에서 연출된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함몰되어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내기도 하고 펜클럽을 결성하여 응원하기도 합니다. 그들도 하루 세 끼를 먹고 화장실도 가고 남들에게 알려지기 싫은 사생활이 있는데도 뭔가 꼬투리를 잡으면 그것이 삽시간에 인터넷에 도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외세의 침략이 전혀 없었던 나라도 세월의 힘을 견디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우리나라처럼 갖은 침입에 식민지 시절까지 겪었던 경우라면 옛 유산을 잘 보전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로 많은 유산이 무관심 속에 잃어버리고, 도둑맞고, 팔려나갔다. 이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물론 문화유산의 나라 밖 반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법한 경로로 판매된 것이라면 엄연한 소유권 이전으로 그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 값어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이 너무나 많은 유산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때로는 난폭한 방식으로 없어져 버린 것이다.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민영이 쓴 이 책,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가 잃은 문화유산을 되찾아 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그리고 멋진 용기를 발휘해 돌려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빼앗긴 입장에서야 당연히 돌려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반출 경로가 어찌 되었든 돌려주기로 하는 것은 큰 용기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에서는 한번 잃어버린 문화유산은 좀처럼 되찾기 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산벚꽃 철죽이 피고 지고, 아카시아 꽃도 피고 지고, 그다음엔 진한 향기의 찔레꽃이다. 뻐꾸기도 운다. 그 많은 꽃의 습격이 다 지나가고 연두색 봄날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사람들, 특히나 중년 이상의 남성들은 봄이 좀 가면 막걸릿잔이라도 앞에 놓고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따라 부르곤 한다. 봄이 가는 것이 괜히 서글픈 까닭에서이리라. 가수 백설희 씨가 1953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작사가가 누군지 작곡가가 누군지는 상관도 없이 그저 이미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심사(心思)를 대신하는 노래로 사람들의 심금을 파고들었다. 당시는 6ㆍ25전쟁으로 사회 전반이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이런 때에 봄날의 아련한 풍경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을 살포시 담아서 풀어주었고 그것이 계속 사람들을 통해 계속 명곡으로 사랑을 받아온 이유라고 분석하던데 그것은 옛날 이야기이고 이제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황희, 장영실, 김종서, 성삼문 … 세종시대에는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있었다. 정말 인재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인재도 많았고 업적도 많았다. 이는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잠재력이 충분한 인재들이 세종이라는 뛰어난 주군을 만나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인재 가운데서도, 이예의 이름은 퍽 낯설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도 들어본 적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예는 왜구가 잡아간 조선인 포로를 찾아오고, 43년 동안 조선이 일본에 보내는 사절단인 통신사로 파견되어 양국의 평화로운 관계유지를 위해 활약한 외교관이었다. 이런 이예의 활약을 담은 최정희의 책, 《나는 조선의 외교관이다》는 세종시대 외교를 이끌었던 그의 집념과 노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세종은 언제나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예를 각별히 아끼고 신임했고, 한평생 외교에 헌신한 공로로 원래 작은 고을의 아전이었던 그는 종2품의 높은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는 중인이 양반으로 신분을 바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던 시절, 그의 능력과 인품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보여준다. 한 해가 멀다 하고 험한 뱃길을 뚫고 일본을 드나들며 대일외교에 모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