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 이창배 선생은 1921년 여섯 살이 되어 한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마침 집 옆에 교회가 있어서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의 영향으로 노래를 잘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경서도 소리와 만나게 된 계기는 일본인 선생들이 일본음악을 가르치고 일본 노래를 부르라는 지시에 그것이 싫어서 조선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하지요. 어린 벽파야말로 애국자 중에서도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은 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퉁소의 명인으로 알려진 고모부로부터 퉁소며 단소 등의 관악기를 배웠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서도의 명창들이 간혹 관산융마와 같은 시창을 부를 때면 선생이 단소로 반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선생이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8세 무렵, 한양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체신국의 전기과 측량기사가 된 이후라고 생각됩니다. 이 무렵 동네 공청에는 왕십리패나 뚝섬패의 선소리 명창들이 드나들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원범산에게 경서도 잡가를 배웠으며 학강 최경식에게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학강의 <조
2012년, 6월 14(목요일) 오전 10부터 성동구 왕십리에 있는 소월 아트홀(성동문화원)에서는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을 조명해 보는 학술모임과 기념공연이 한국전통음악학회 주최로 개최된다. 이 대회에서 발표될 필자의 기조강연 내용을 몇 회로 나누어서 매주 얼레빗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좌장으로부터 소개받은 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입니다. 이 행사를 주최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또한 보람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 국가를 경영하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전통음악은 소수의 특수 계층이 그 명맥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전직 국회의원 한 분과 00감독원장, 기업체 회장을 지낸 분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거 서 교수가 쓴 책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 있잖아,” 하니까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 “추임새요? 무슨 새의 이름입니까?” 하고 되물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경기민요의 대명사 이은주 명창의 제자인 노경미 씨가 경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12좌창 전곡을 음반에 담아냈다. 좌창(坐唱)이란 글자 그대로 앉아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이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의 입창(立唱)과 구별 짓기 위한 이름이다. 입창을 순 우리말로 선소리라 부르는 것은 한자의 입(立)이 설 “입”이어서 같은 의미이지만, 좌창을 달리 잡가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여튼 좌창이나 입창, 이들은 줄곧 잡가라는 이름으로 전해 온 노래들로 상류 지식인 사회에서 즐겨 부르던 정가(正歌)의 대칭개념인 것이다. 좌창 중에서 12곡으로 선정하고 있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1) 유산가(遊山歌) 2) 적벽가(赤壁歌) 3) 제비가(燕子歌) 4) 소춘향가(小春香歌) 5) 선유가(船遊歌) 6) 집장가(執杖歌) 7) 형장가(刑杖歌) 8) 평양가(平壤歌) 9) 십장가十杖歌 10) 출인가(出引歌) 11) 방물가(房物歌) 12) 달거리(月令歌) 일반적으로 앉아서 부르는 연창형태는 적극적인 표현을 절제하는 노래들이다. 가곡이 그렇고 가사와 시조가 그렇다. 그래서 대부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지난 5월 26일(토)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풍습과 전통을 이어가고자 당산제 큰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여성 소리꾼 전옥희를 초청하여 배뱅이굿 한마당을 펼쳐 큰 관심이 쏠렸다. 이러한 전통의식이나 놀이야말로 지역민들을 화합시켜 명랑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적인 정신이요, 원동력임을 생각할 때,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 나가는 기본 질서라는 논리가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작게는 배뱅이굿을 통하여 함께 울고 웃는 재미있는 공연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웃이 하나가 되고, 그래서 지역민들의 화합과 나눔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더욱 컸다. 전옥희 한국 사람으로 배뱅이굿 한 가락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매우 유명한 서도의 창극조 소리이다.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
시조창은 자연 그대로의 모양새를 나타내는 격조 있는 전통성악이다. 이러한 시조창이 시류에 밀려 점점 퇴색해 가고 있는 현실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던 차에 경기도 파주에서 5월 26일, “전국시조경창대회”가 열릴 예정이라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조창의 부흥과 보급이라는 시대적 열망 속에 새로운 명창을 찾는, 그러면서도 시조인들의 결속과 화합을 다지는 파주의 이번 대회는 조옥란 명창이 다섯 번째로 주도하게 된 행사이다. 처음과는 달리 점차 지역민들의 관심 속에 지역의 특색사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여서 앞으로의 진행이 희망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시조시는 향가나 민요 등과 공존하며 성장하다가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크게 발전한 분야이다. 이처럼 시조가 발전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시조시의 형식이 간결 소박하다는 형태상의 특성이 당시의 유학자, 지식인, 선비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조시는 조선전기만 해도 ‘대엽조’라는 시형에 얹혀져 불렸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가곡을 잉태시켜준 만대엽, 중대엽, 삭
지난주까지 율자보와 공척보,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육보,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합자보, 세조시대에 창안한 기보방법으로 5음으로 줄여 쓴다는 의미의 약보, 성악곡의 가락이나 창법을 잊지 않으려고 기호를 써 온 연음표의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보법들은 부호 자체가 음높이를 지니고 있지 않고 박자의 표시가 없어서 악곡의 빠르고 느린 박자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기보방법이 바로 정간보(井間譜))보라는 것이다. 정간보는 조선조 세종임금 때 창안된 기보방법이다. 정간보의 정(井)은 우물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마치 원고지처럼 상하좌우의 네모 간을 만들고 그 안에 12율명의 첫 글자만을 적어 넣는다. 이 악보는 무엇보다도 음의 길이, 즉 음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조선조 세종시대의 음악이 지금까지 전해올 수 있었던 배경도 정간보 덕분이고 궁중음악 대부분이 정간보로 기록되어 온 점이나, 정리 채보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음악기관이나 연주 및 연구단체, 국악전공의 중, 고등학
지난주 속풀이 55에서는 우리음악을 기록해 온 방법으로 율자보를 소개하였다. 대개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거나 또는 빠르기가 일정한 음악에 쓰이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성균관 안에 있는 공자의 사당, 문묘에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율자보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또한, 율명을 쓰고 읽는 것이 어려워 10개의 아주 쉽고 간단한 글자로 줄여 써 왔던 기보방법도 있고,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 적어 놓은 구음(口音)의 육보도 소개하였다. 덩, 둥, 당으로 표현되는 현악기 육보가 있고 나, 리, 로 등의 관악기 육보가 오래전부터 쓰여 왔다. 이러한 육보에는 한글로 된 것과 한자로 된 것이 있으며 현재까지 많은 거문고의 악보가 육보로 전해온다는 점, 우리음악의 역사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 육보의 해독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에는 합자보를 소개한다. 합자보란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기보법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음 이름은 표시하지 않고 줄을 어느 손가락으로 집는가 하는 표시와 줄의 이름, 탄법(彈法, 타는 법) 등을 약자로 만들어 이들을 합해 놓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문고라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국악 합주곡으로 유명한 영산회상, 또는 수제천과 같은 기악 합주곡을 감상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 감상자는 그 곡의 처음이나 끝이 모두 같은 가락처럼 들려서 시작부분과 끝 부분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실토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런데 만일 악보를 읽을 줄 아는 감상자가 악보를 통해 선율의 흐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곡을 감상한다면 재미있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율의 진행을 악보로 확인할 수 있기에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에 어떻게 변하며 또한 끝나는 선율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점을 악보 상에서 확인하며 음악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보를 읽어 나가는 능력, 즉 독보능력은 국악과 친숙해지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민속음악은 악보 없이 구전심수의 방법으로 전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또한 재미있기 때문에 특별히 악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악계열의 음악들은 악보로 전해져 오는 것들이 많은 편이어서 악보에 의존도가 높다 하겠다.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악보의 기보방법은 여러 형태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자료들은 음악학 연구를 위해서나 또는 시대에 따른 음악의
지난주 속풀이 53에서는 국악과 서양음악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와 서로 다른 점들이 곧 서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고, 그 특징들이 바로 독특한 미적(美的) 가치를 느끼게 하는 개성이어서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국악이란 용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악이란 말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한국의 음악이란 포괄적인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인 이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약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들어온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고 음계나 리듬, 하모니 등 서양음악어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들을 음악이란 이름의 자리에 앉히는 반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음악은 국악, 혹은 전통음악으로 별도 취급해 왔기 때문에 국악이란 용어가 글자의 뜻인 대한민국의 음악이라는 의미와는 달리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나 중등학교의 음악교과목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학교에서의 음악수업을 떠올려보면 재미(?)있는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전통문화를 지니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건강한 한국인의 육성’, ‘음악을 통한 한국인의 심성’을
53. 국악과 서양음악, 서로 다른 것이 각자의 특징이다 국악이란 용어를 글자의 뜻 그대로 새기면 “대한민국 음악”이다. 이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 곧 “한국음악”이다. 우리말을 국어, 또는 한국사라고 부르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국사, 또는 한국사로 부르는 것처럼 국악이란 용어나 한국음악이란 말은 우리나라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악이란 용어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한국의 음악이란 포괄적인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음악 속에는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유입된 서양 음악의 영향을 받고 서양음악의 음계나 리듬, 하모니 등 서양어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들이 음악이란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악이란 용어는 한국 음악 가운데서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래해 오고 있는 전통적인 음악, 또는 이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 창작된 음악 등을 지칭하는 일부 제한된 의미가 진한 것이다. 음악계의 최대행사로 알려진 대한민국음악제가 있고 대한민국국악제가 별도로 열리고 있는 점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오는 음악이나 이를 바탕으로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