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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87. 서원숙의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재현(再現) (2)

   

 

 

지난주에는 심상건류의 가야금 산조와 관련하여 산조(散調)는 1890년경 판소리의 음악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 형식의 음악이란 점, 산조의 형식은 만(慢)-중(中)-삭(數)의 세틀형식과 맥을 같이 하는 형식이어서 시대성을 지닌 양식이란 점, 산조는 연주자의 기법이나 표출력이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하는 예술음악이란 점, 종래의 <헛튼가락>이라고 했던 의미는 이제 널리 <확산되어 나가는 가락>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산조음악의 생명은‘자유분방함’이나‘즉흥성’인데, 지금은 고정된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자주 대하고 있는 가야금산조는 전라도제나 충청도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했다는 김창조(1856-1919)계열, 가령 김창조에서 한성기를 통해 김죽파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창조-최옥삼-함동정월로 이어지는 산조, 또는 김창조-강태홍-김춘지-구연우로 이어지는 산조, 그리고 김창조에서 시작된 가락이 안기옥-정남희-김윤덕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병호를 통해서 내려오는 산조 등 대부분이 전라도제 산조인 것이다.

반면에 충청제 산조의 1세대에는 박팔괘와 심정순(1873~1937)이 대표적이다. 박팔괘 산조는 박상근-성금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반면에 심정순의 산조는 전승이 단절되었다.
심정순의 산조는 그의 조카인 심상건과 심정순의 아들인 심재덕이 이어 받았으나,유감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제자를 키우지 못하고 타계해서 맥이 끊긴 것이다.

심상건은 어떤 인물인가? 심재덕은 또한 누구인가?
심정순의 가야금 산조를 이어받은 두 사람은 4촌 형제지간이다. 심상건은 1889(고종 26년)년에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여 1965년, 76세를 일기로 작고한 가야금의 대가로 충청제 산조의 정통을 이어받았다.

심재덕(1899~1967) 또한, 심정순의 장남으로 심상건의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어깨 너머로 익혔다고 전해지는 산조의 명인이었다. 심상건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7살 때 부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작은 아버지인 심정순의 집에서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심정순으로부터 충청제 산조를 비롯하여 가야금풍류, 가야금병창, 단가, 판소리, 시나위, 민요, 기악합주, 무용반주 등을 열심히 익혔다.

작은 아버지의 아들딸들, 즉 심상건의 4촌 동생들이 심재덕, 심매향, 심재민, 심화영 등인데, 모두 예능에 뛰어난 집안으로 유명하다. 특히 막내동생 심화영(1913~2009)은 최근 몇 년 전까지 충남 서산에서 판소리와 춤 등을 전수하다가 타계했는데, 그가 남긴 승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도 전수중에 있다. 참고로 심정순의 큰 아들 심재덕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 막내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중가수 심수봉이다.

이날 서원숙 교수는 심상건류 산조를 재현하기 전에 먼저 심상건의 줄풍류로 염불도드리와 타령을 대금(이건석 연주), 장고(김웅식 연주)와 함께 연주하였고, 뒤이어 그의 제자들의 연주로 죽파 뒷풍류인 계면가락도드리(줄여서 계면), 양청도드리(양청), 우조가락도드리(우조), 굿거리 등을 연주하였다.

줄풍류, 대풍류란 명칭에서 그 의미는 길게 설명치 않더라도 풍류가 음악을 지칭하는 명칭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줄풍류란 거문고, 가야금, 양금과 같은 줄악기들과 일부 관악기들이 실내에서 합주하는 형태의 음악이다. 참고로 대풍류란 형태도 있다. 대나무 악기들이 중심을 이루고 합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와 같이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을 일러 풍류객이라고 불렀다. 전통사회에서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까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합주하는 등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은 000네 집 풍류방에 모여서 시를 짓고, 노래와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서울에는 이름난 율객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던 그룹이 여러 곳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주나 대구, 대전을 비롯하여 이름난 전통의 고도에는 선비층이나 음악인들이 모여 풍류모임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도 그 전통을 잇고 있는 전라도의 이리지방이나 구례지방의 풍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산조의 이름난 연주자들은 물론, 음악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애호가들도 풍류음악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차츰 더 어렵고 까다로운 산조음악으로 영역을 넓혀 나간다.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줄풍류는 느린 ‘본영산’으로 시작해서 빠른 ‘군악’까지 이어가고 그 뒤로 뒷풍류라 해서 빠르게 연주되는 곡들이 있어서 도합 12곡~15곡으로 구성된다. "국립국악원"에서도 줄풍류를 연주한다. 그 모음곡을 ‘영산회상’또는 ‘별곡’이라 부르는데, 음악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악곡들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