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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93. 아래 위가 뚫려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퉁소’

 
 
  
 
 

퉁소[洞簫]’라는 말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쉽게 만나는 노래는 서도소리 초한가(楚漢歌)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八千弟子) 해산 할 제, 때는 마침 어느 때뇨.

구추삼경(九秋三更)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 밝은데,

외기러기 슬피 울어 객()의 수심(愁心)을 돋워 주고

장자방의 사향가(思鄕歌) 퉁소가락이 얼마나 애절했으면 항우(項羽)8천 군사가 일제히 전의(戰意)를 잃고 항복을 하고 말았을까? 퉁소를 퉁수, 또는 퉁애라고도 한다. 이 악기는 단소에 비해 보다 굵고 긴 세로악기여서 저음을 내고 있지만, 대금처럼 청공(淸孔)이 있어서 그 음색이 매우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함께 불기 시작하면 흥겹고 장쾌한 가락이나 리듬에 모두가 하나가 되는 힘을 지닌 악기이기도 하다

원래 소()라는 악기는 위가 열려있고 밑은 닫혀 있는 세로 부는 관악기이다. 위는 열려있고 아래는 막혀 있는데 소리가 날까? 가령 물병이나 술병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가 나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퉁소는 위와 아래가 통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퉁소가 우리음악사에 그 이름과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神文王)때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연기군 소재 비암사(碑岩寺) 석비(石碑)나 문무왕(文武王)때의 아미타불삼존 석상에 퉁소 그림이 보이는가 하면, 고려사 악지의 당악기조에는 8()의 퉁소가 소개되어 있고, 악학궤범에는 청공을 포함하여 9공의 퉁소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세종 때 악학의 취재과목에 퉁소가 들어 있었으며, 어전의 예연시에도 퉁소가 편성되었던 점은 옛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상한 점은 궁중음악에서는 퉁소의 사용처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반면, 민간음악에서는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음악이나 시나위 음악을 통하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퉁소음악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점은 다행한 일이지만, 더욱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늘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던 중 이보형 회장을 중심으로 동선본, 어용준, 이진원 등 전문 음악인들이 <퉁소연구회>를 발족시킨 것은 너무도 시의에 잘 맞는 쾌거라 아니 할 수 없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한국퉁소연구회>의 발족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이유는, 퉁소라는 악기야말로 한국인 모두의 자랑스러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퉁소 연주자가 양 손가락을 채울 수나 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 전승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는 반면,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국의 연길이나 훈춘 같은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퉁소 예술절>을 개최하면서 축제화하고 있다니 부끄럽다

친정이 잘 살아야 시집간 딸도 어깨를 펴고 사는 법인데, 반대로 친정집 보다 중국에 사는 동포사회에서 퉁소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해마다한국전통음악학회가 중국의 연변예술대학과 <학술 및 실연(實演)교류회>를 개최하고 있어서 갈 때마다 느끼게 되는 사실은 중국의 동포 사회에서는 퉁소가 매우 보편적이고도 일반화된 악기라는 사실이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아래나, 관광객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곳에는 으레 퉁소 연주자들이 모여 앉아 흥겨운 가락을 옮기고 있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그저 반갑기 그지없었다.

어느 해인가, 연주회를 끝내고 연변의 음악인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시간이었는데, 괄괄한 함경도 말투의 한 촌로가 나에게 다가와거 퉁소 부는 사람은 어찌 아이 왔습메? 퉁소소리 제일인데, 아쉽구만요. 우리 마을에서는 몽땅 퉁소를 불었단 말입네다.” 우리 동네에서는 퉁소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행했던 악기가 바로 퉁소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퉁소음악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을 몹시 못마땅하다며 질책하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이제 퉁소음악도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각별한 퉁소관련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국악지도자들이나 교육자들, 그리고 국악애호가들의 퉁소음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야 할 것이다. 퉁소의 음색이나 가락은 다른 국악기가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