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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94. 훈과 지는 형제의 우애를 의미하는 악기

 

 

 

 

지난주에는 퉁소에 관해 소개하였다.

 

퉁소는 아래 위가 통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 퉁소를 통소, 퉁수, 또는 퉁애라고도 부른다는 점, 단소보다 굵고 긴 악기로 청공(淸孔)이 있어 음색이 아름답다는 점, 옛 석비(石碑)나 석상에 퉁소 그림이 보인다는 점,악학궤범에도 9공의 퉁소가 소개되어 있다는 점, 그럼에도 궁중음악에서는 퉁소의 사용처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반면, 민간음악에서는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음악이나 시나위 음악을 통하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 우리보다는 중국의 조선족 동포사회에서의 퉁소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석전(釋奠), 즉 문묘(文廟)제례에 편성되는 관악기로 훈, , , 적과 같은 악기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문묘제례란 공자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그들의 학문과 정신을 받드는 의식으로 여기에는 초헌, 아헌, 종헌에 따라 음악과 춤이 따르는데, 그 음악은 고려때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으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고대의 음악을 전해 준 중국은 그 음악을 잊고 있으나 우리는 고려 때의 음악을 악보로 기록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이 음악을 듣고 배우기 위해 한 때, 국립국악원을 찾아오기도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쓰이는 관악기 중 약()이나 적()은 앞에서 소개한 퉁소와 비슷한 크기와 구조로 되어 있으며 연주법, 또한 유사하다. 그러므로 별도의 설명을 생략하고 구조가 전혀 다른 훈()과 지()라는 악기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먼저 <>이라는 악기는 흙을 구어 만든 악기이다. 백토를 빚어 속이 비도록 모형을 만들고 삼이나 모시로 겉을 입힌 다음 완전히 말려서 20시간 이상을 불에 굽고, 여러 번 옻칠을 한다. 크기는 사과나 배정도의 크기에 밑은 평평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동그랗게 빚는다 

 

색깔은 검으며 윗부분의 구멍이 취구이고 뒤에 2공 앞에 3공이 있어서 모두 5공이다. 5개의 음공으로 12음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음공을 1/2 열고 부는 연주법을 익혀야 한다. 취구로 김을 넣으면 매우 어둡고 낮은 음이 발생하는데, 악기의 구조상 빠른 가락을 연주하기는 어렵고 한 음, 한음을 길게 이어가는 방법으로 연주한다. 음이 낮고 부드럽게 때문에 문묘제악 이외에도 간혹 편성되기도 하지만, 독주용은 아니어서 그렇게 크게 활용되고 있지는 못하다.

 

다음, <> 라고 하는 악기를 살펴본다.

지의 연주형태는 가로로 부는 형태이나 소리를 내는 취구는 단소와 같이 만들어서 붙였기에 그 음색은 단소와 비슷하여 매우 맑고 아름답다. 그러니까 소금처럼 옆으로 연주하지만 발음은 단소와 같이 취구를 만들어 붙여서 소금과 단소를 합해 놓은 악기로 보면 될 것이다. 이 악기 역시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악기이다. 길이는 약 30cm, 음공은 5공이다. 5공으로 12음을 내기가 불편함으로 끝부분 안쪽을 소지(小指)로 조절하여야 한다.

 

이 악기는 앞에서 소개한 훈과 항상 함께 편성된다. 그것은 필경 지의 맑고 높은 음색과 훈의 부드럽고 낮은 음색이 멋있는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3,0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詩經)에도󰡒형은 훈을 불고, 동생은 지를 불어 떨어짐이 없던 사이, 그래도 나를 모르시면󰡓이라는 글귀가 있다. 그래서 형제간의 우애의 정은 훈지상화(壎篪相和)로 통하는 것이다.

 

19458월 조국 광복의 기쁨을 맞아 상해의 임시 정부가 환국할 무렵, 중국의 장 총통은 우리 정부의 요인들에게 환송연을 베풀면서 석별의 정으로 훈과 지를 선물하였다고 한다. 세상엔 석별의 정을 나눌만한 값비싼 물건들이 얼마든지 많겠지만 양국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자는 뜻으로 훈과 지가 선택된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수 십장의 약조문서나 값비싼 물건보다 더욱 귀중한 선물이 아닌가! 각박해진 인심 속에 형과 동생, 그리고 너와 나의 가슴을 훈훈하게 이어주는 마음의 거울, 훈과 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