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의 학위 논문에 관한 이야기와 2006년, 전주대사습대회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연구원을 개설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크고 작은 무대에 초대되어 판소리 공연을 해 왔다는 이야기, 2009년도에 동초제 춘향가 완창 공연을 열면서 그 기념행사로 <동초제 춘향가의 전승과 미학>이란 학술세미나를 열었다는 이야기, 현재 대전에서 일인다역으로 문화와 예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2006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에 오른 이후에도, 그녀는 수차에 걸친 판소리 완창 발표를 통해서 객관적인 소리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고향임은 2013년, 대전시로부터 무형문화재 판소리 종목의 예능 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지자체 실시 후, 각 광역시나 도(道) 단위에서는 자체적으로 전통음악이나 춤, 놀이나 의식 분야, 곧 무형(無形)문화재 종목을 지정하고 그 종목의 전승을 위해 예능보유자를 인정해 오고 있는 제도가 있다. 마침 대전시의 경우, 판소리 종목은 미지정된 상황이어서 그녀에게 적절한 기회가 된 것이리라. 어렵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이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오정숙 명창의 영향으로 소리꾼의 길을 결심한 뒤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소리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였고, 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履修者)가 되었으나 실기와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서 「놀부 제비노정기 비교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녀의 학위 논문, 「놀부 제비노정기 비교연구」는 박녹주-박송이로 이어지는 소리제와 김연수-오정숙의 소리제를 악보화 하여, 장단별, 단락별 구성음과, 종지음, 꺽는 음 등을 살펴서 선법(旋法)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장단 형태도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리듬형의 종류나 횟수 조사에 머물지 않고, 대마디 대장단 이라든가, 잉어걸이, 당겨 붙임, 완자걸이나 교대죽 등의 전통적 판소리 리듬꼴을 분석하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객관적이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판소리 <흥보가>는 가난하고 착한 동생, 흥보가 날기 공부하다가 떨어진 제비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그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가운데 강남에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高香任) 여류명창이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8시간 30분 동안,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때로는 슬픈 소리로, 때로는 재미있는 아니리와 발림으로 청중을 쥐락펴락했다는 이야기, 판소리 공연의 일반적 형태는 어느 한 대목을 토막소리로 부르는 것이었으나, 1968년도에 고 박동진 명창이 처음 완창을 시도한 이래, 이러한 형태가 정착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지난해 12월, 대전시 예능보유자 고향임 명창은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하여 객석을 메운 청중들로부터 열띤 환호를 받았다. 고 명창은 소리꾼이 되는 과정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녀의 말이다. “저는 1957년(64살) 군산에서 태어났어요. 군산은 최난수 명창이나, 김수연 명창 등 국내 최정상급 판소리 명창을 배출해 낸 고장이지요. 또한, 내일의 명창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적지 않은 전통 예술의 고장입니다. 저는 여고시절, 시(詩)를 좋아했고, 또한 누구 못지않게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 지망의 학생이었지요. 여고를 졸업한 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 연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배우의 꿈을 키우다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판소리 중고제(中古制)와 이를 지켜 온 심정순(沈正淳)가문의 이야기를 하였다. 심정순은 1873년, 충남 서산에서 심팔록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악인(樂人)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이해조의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등이 그의 구술로 신문에 연재되면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는 서울 구파극의 중심이었던 서울 장안사 극장에서 활동했으며, 이 무렵 예단(藝壇) 일백인(一百人) 편에는 심정순에 관하여“그는 여러 광대 중에도 가장 품행이 단정하고 순실해서 집안이나 밖에서 열심 근면하고, 한 개의 흠절을 잡을 곳이 없다.”라는 내용이 실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대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동초제 춘향가의 예능보유자, 고향임(高香任) 여류명창이 장장 8시간 30분 동안,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하면서 청중을 울리고 웃긴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해 12월, 10일이었다. 국악의 중심,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서는 고향임 명창의 완창 소리판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개구리가 칩거 생활에서 풀려나며 파안대소하네 반기룡 시인의 “경칩”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이지요. 원래 이름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 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했었는데 뒤에 한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 BC 157~141)의 휘(諱, 곧 이름)에 '啓'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 이것을 피하려고 비슷한 뜻의 '驚(경)'으로 바꾸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겨울잠 자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지요.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때임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 수정같이 맑은 우물 펑펑 뚫으세 / 조상대대 자자손손 먹고살고 먹고살고 /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이 노래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우물치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전 사람들의 식수원은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마운 우물에서 물이 잘 나오도록 하고, 물이 맑아서 마을 사람들이 배탈 나지 않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빌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물치기”입니다. 마을에서는 동제(마을 공동의 제사)를 올리기 사흘 전 마을 공동우물을 찾아가 샘굿을 합니다. 물론 샘굿을 하기 직전에는 우물에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금줄을 칩니다. 그리고 우물 속에 빠져버린 끊어진 두레박이라든가 줄 따위를 말끔히 치워내고, 깨끗한 자갈을 다시 깔아 둡니다. 그런 다음 풍물패들이 우물에 다다르면 상쇠가 용왕님께 축문을 외웁니다. 축문을 외우고 난 뒤 노래를 부르고 풍물을 치며, 우물을 몇 바퀴 돕니다. 그러면 이 우물은 신성한 생명수의 원천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금줄을 거두고 누구나 우물에서 물을 퍼 갈 수 있습니다. 수돗물을 마시는 지금 이 수돗물도 믿을 수 없다며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남 서산 출신의 소리꾼 심정순(沈正淳)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심팔록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부친의 음악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는 점, 박춘재 등과 일본에서 음반 취입 후, 발매 광고가 신문에 실리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이해조의 강상연(江上蓮), 연(燕)의 각(脚), 토(兎)의 간(肝), 등이 심정순의 구술(口述)로 매일신보에 연재되면서 더욱 알려졌다는 점, 예단(藝壇) 일백인(一百人) 편에는 여러 광대 가운데도 가장 품행이 단정하고 순실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고, 1910~1920년대 그의 활동내용은 대부분이 판소리, 가야금 연주, 병창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비단 중고제 판소리뿐이 아니다. 동편제, 서편제를 막론하고 초창기를 지나 그 이후로 내려오면서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적 기교의 변화로 판소리는 세련, 정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근거는 양반층을 끌어들이면서 스스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인데, 그것은 유성기판에 담겨있는 고음반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물론 음반 자체가 여러 제약 속에서 그렇게 기획되기도 하였지만, 시골 장터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열린 공간에서 쉽게 접했던 욕설이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민속음악의 명인으로, 즉흥음악의 대가로, 명성을 날렸던 심상건과 그의 딸 심태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한 바 있고, 1965년에는 심상건이 신병치료차 미국에 갔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떴었며, 그의 묘비에는 가야금이 조각되어 있다는 이야기, 심상건의 숙부, 심정순의 소리제는 그의 막내딸 심화영에게 이어졌는데, 이 소리는 과거 서울 경기지방과 충청도 내포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제(古制)의 한 유형이며 김창룡 가문과 이동백, 심정순을 위시한 심씨 가문 등에서 이어졌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아버지 심정순으로부터 중고제 소리를 이어받은 심화영은 소리보다는 춤에 더 재능을 보여서인가, 특히 승무(僧舞)를 잘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승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이 된 바 있고, 그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에 타계하였다. 현재 이 종목은 심화영의 손녀딸 이애리가 전수조교로 활동하며 동 종목을 보존하고 있다. 심화영의 승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 주에는 중고제 판소리를 지켜 온 심정순(沈正淳)을 소개해 보도록 한다. 심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둘째 우수(雨水)입니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어서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을 맞게 된 것이지요.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슬슬 녹아 없어짐을 이르는 뜻으로 우수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도 풀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지요. "꽃샘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계절에 나누는 전래의 인사에도 "꽃샘잎샘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는 것도 있지요. 이 꽃샘추위를 한자말로는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말로 화투연(花妬姸)이라 합니다. 하지만, 우수가 되면 봄기운이 서리기 시작하는데 풀과 나무가 깨어나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이때는 논밭을 둘러보고 새해 농사 계획 세우며, 삽질 한 번, 낫질 한 번으로 몸을 풀지요. 특히 이 무렵에는 농사일 한발 앞서 장을 담가야 합니다. 장 담그는 일은 시골 살림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웃과 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야기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심상건 명인의 넷째 딸, 심태진이 현재 99살의 노인임에도 6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가야금산조와 병창, 단가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아버지의 지도방법은 1:1 개인지도로 매우 엄격하였으며 제대로 못 하면 대나무로 어깨를 맞았다는 이야기, 한성준에게 춤을 배웠다는 이야기, 아버지의 산조는 즉흥적이어서 오르지 한성준이 그 장단을 맞출 수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심상건은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민속음악, 특히 가야금산조와 병창, 기악의 명인으로 무대나 방송, 음반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러나 주권을 잃었던 불행의 시대를 보낸 국악인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변화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즉흥음악의 대가였다. 그는 산조를 탈 때마다 매번 달라서 배우는 사람들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가리켜 선생 없이 자학(自學), 자득했기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심상건은 해방 직후, 조택원 무용단의 일원으로 넷째 딸, 심태진과 함께 미국의 원정공연을 성공리에 마쳤고, 귀국해서도 그의 공연활동이나 방송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