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문화예술기획자’란 직업을 아는가? 많은 사람에겐 생소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외면하고 살지 않았다면 문화예술기획자와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기획자가 있어야만 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열 수가 있다. 거문고를 공부하고, 지금 문화예술기획자로 살아가는 이화여대 이진경 교수의 글을 통해 앞으로 공연과 문화행사를 톺아보고, 그 뒤에 서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이 교수가 어떻게 문화예술기획자가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문화예술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향후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문화예술기획'이란 작업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한다. (편집자말) 문화예술기획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예술전공으로 뭐하며 살 수 있어요?”다. 그럼 나는 내가 어떻게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가지 직업들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처음부터 문화예술기획자가 목표는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보면서 곧잘 공부하니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중학교 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농촌에 가보면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 덕분에 겨울에도 마트에 가보면 상추, 호박, 오이, 딸기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제주도의 특산물로 알고 있는 감귤을 경기도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유리온실에서는 카네이션을 재배하여 사시사철 꽃을 공급하기도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반 국민의 겨울철 식탁을 보면 조선시대 임금보다도 더 화려한 식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리나 비닐, 플라스틱으로 지은 인공 구조물에서 인위적으로 재배 환경을 조절하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 방법을 ‘시설재배’라고 한다. 시설재배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비닐하우스의 색깔이 하얀색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농촌이 작물의 색깔인 푸른색이 아니고 백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색혁명이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졌다. 사전을 찾아보면 백색혁명이란 “비닐하우스 농법의 보급으로 한겨울에도 푸른 채소를 공급할 수 있게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서도 밭농사를 지으면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하는 농가가 많이 보인다. 강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최근 우리에게 전해진 희소식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연초에 이집트와 호주에 우리가 생산하는 K-9자주포를 수출하는 계약이 성사된 데 이어 최근에는 폴란드에 K2 전차 천 대와 K-9자주포 600대의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다.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사상 처음으로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선박 건조가 세계 1위가 된 지는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이렇게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 분야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좋은 소식은 우리나라가 품질 좋은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가 철강제품의 강국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1970년대에 포항제철이 우리 기술로 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것이 발판이 되었고, 그것을 성사시킨 것은 고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의 지대한 공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이 제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전 세계 중요 선진국에 읍소를 했을 때 어느 나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오로지 이웃나라 일본이 이 기술을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건설비용도 청구권 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니…” 교산(較山) 허균(許筠, 1569~1618). 우리는 보통 그를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기억한다. 첩이 낳은 자식인 서얼의 한을 그린 홍길동전은 지금도 삼척동자가 알 만큼 유명한 고전소설이다. 홍길동을 통해 허균은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모두가 평등한 나라, 율도국을 세워서 말이다. 허균은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 뒤 조선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유일하게 복권되지 못한, 조선 중기의 문제적 인물이다. 혹자는 그가 내심은 권력을 탐했고, 음험했으며, 세상과 영합했다고 비난한다. 그도 그럴 것이 6차례 파직을 당하고 3차례 귀양을 가면서도 말년에는 권력을 잡아 득세했고, 문벌이 도도한 가문에서 적자로 태어난 전형적인 ‘금수저’였던 그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분에 얼마나 공감했겠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책 《인문주의자 허균, 개혁주의자 허균》은 항변한다. 교산 허균은 진심이었다고. 명문가의 적자로 태어난 거칠 것 없는 신분임에도 서얼 차별을 반대했고, 시대가 강요하는 사상의 획일성에 반기를 들고 부패한 정치와 제도를 개혁하려 했으며, 오로지 두려워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은 세종대왕일 것입니다. 세종대제가 아니고 세종대왕인 까닭은 중국은 황제인 데 견줘 변방 국가인 조선은 제후국이라는 관념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름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대왕(大王)에서 ‘大’ 자를 쓰는 까닭은 유독 우리나라가 큰 것을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소통령과 중통령은 없어도 나라의 수반은 대통령이고 비교적 작은 땅덩어리를 가진 우리나라 국호도 대한민국입니다. 국호에 크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영국뿐입니다. 한강 30여 개의 다리 이름엔 대부분 대자가 들어 있습니다. 성수대교 양화대교 잠실대교 행주대교 마포대교 성산대교 반포대교…. 대교가 아닌 것은 광진교 하나뿐인 것만 보아도 무언가 크게 보이고 싶은 심리에서 시작한 이름짓기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세자 기간이 짧았던 임금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자 기간이 가장 짧았던 임금은 정종으로 8일이고 세종은 두 달입니다. (세자 기간이 없었던 6명의 임금은 빼고….) 아이러니하게도 세자 기간이 가장 길었던 임금은 세종의 아들 문종입니다. 그는 무려 29년 동안의 세자생활에 고작 임금은 2년하고 승하하고 말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 런던에서 손님이 왔다. 한 사람이 아니라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 4명이 함께 왔다. 런던은 2002년 2월까지 내가 특파원으로 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운데 간간이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거기 사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였고 또 손님 가운데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젊은이도 있고 해서 그들로부터 잘 듣지 못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야 일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니 자세한 사정이나 느낀 점을 이를 정리해서 전해줄 그런 DNA가 없다고 할 것인데, 부인과 아이들은 다르지 않은가? 실제로 실생활에서 가장 많은 것을 부딪치고 느끼고 하는 쪽이니깐 그들의 증언(?)은 과연 생생하고 따끈따끈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딱 20년 세월의 차이를 말해주는 증언이다. 이들의 증언을 알기 쉽게 정리해보면 1. 한국인의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영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 대하는 태도가 친근하고, 말을 걸면 아주 반갑다는 듯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2. 아들들이 학교에 가면 영국 친구들이 가까이하고 싶어 하고 물어보고 싶어 한다. 물론 한류 아이돌 소식도 있지만 때로는 한국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한국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식민지(植民地). 우리가 수도 없이 부르고 배웠던, 우리가 불과 백여 년 전 처했던 현실인 ‘식민지’는 ‘사람을 심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땅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수많은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이 땅에 심었다. 그들은 이 땅에 집을 짓고, 사업을 하고, 혼인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오래도록 이 땅에 남았다. 그 흔적을 다룬 책 정명섭의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는 한국에 남은 일제시대 건물, 가옥, 산업시설을 ‘노인호’라는 교수와 ‘동찬’이라는 아이가 함께 답사하며 나누는 문답으로 보여준다.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재기 넘치는 대화와 풍부한 역사적 설명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한다. 그들은 일제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다닌다. 부평 삼릉마을 줄사택 유적을 걷고, 부산 기장 광산마을을 가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박노수미술관과 벽수산장도 다녀간다. 이들이 다닌 열 곳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네 곳을 정리해보았다. 1. 삼릉마을 줄사택 유적 1937년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인천 부평에 무기공장 조병창을 세웠다. 부평은 땅이 넓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윌리엄 홀덴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영화 <모정(慕情, A Many Spiendored Thing)>을 아십니까? 1955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홍콩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중국군 장교의 과부 한수인과 미국 특파원 마크 엘리엇과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텔레비전의 명화극장에서 <모정>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모정>은 작가 한수인(1916 ~ 2012)이 이안 모리슨과의 사랑을 그린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중국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수인은 벨기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민당 장교 당보황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1947년 만주전선에서 전사하자,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퀸 메어리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호주계 영국기자 이안 모리슨과 사랑에 빠지지요.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안 모리슨이 한국전쟁에 영국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파견된 지 얼마 안 되어, 1950. 8. 12. 지뢰가 터져 전사하였기 때문이지요. 한수인은 소설 끝부분에 이안 모리슨이 한국전선에서 보내온 21통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는데, 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복이 지나고 입추도 지나고 다음 주초에 말복이 지나면 무더위도 제풀에 꺾을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요즈음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장마가 간 것도 같고, 가지 않고 미련스럽게 한반도를 덮으면서 큰비를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한 여름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와중에 힘든 것은 우리들 서민이다. 서민이라고 하면, 당신이 무슨 서민이에요? 하고 필자에게 항의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틀지 못하는 가정은 다 서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요즈음 여름 나기는 옛날 임금이나 황제도 못누리는 편안함과 사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은 얼음을 마음대로 쓰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집 냉장고에 얼음을 만드는 장치가 달려 있으니 필요한 만큼 만들어 쓰면 되고 그게 아니면 마트에 가서 빙과류나 청량음료, 심지어는 주류도 얼음처럼 시원한 것을 선택해 먹거나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 어릴 때는 말이야~~” 하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화법인데, 사실 우리 어릴 땐 얼음이 그렇게 쉽게 쓰거나 먹고 마실 상황은 아니었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식주(衣食住)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세 가지다. 그 가운데 ‘옷 잘 입기’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때와 용도에 맞춰 옷을 잘 갖춰 입는 것은 그 사람의 교양을 보여주는 수단이자, 사회적 신분과 재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며,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렛대이기도 하다. 이 책, 《조선시대 옷장을 열다》는 다들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하지만 뜻밖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옷’이라는 소재를 통해 조선시대를 들여다본다. 조선시대 ‘옷’이라 하면 흔히 남자는 두루마기, 여자는 저고리에 치마를 떠올리게 되지만 조선의 옷 문화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 양녕대군의 손자 호산군도 달라고 졸랐던 ‘쓰개’부터 성종이 사치하는 풍조를 걱정해 금지한 ‘초피 저고리’, 선조가 오랑캐의 풍습이라고 생각해 금지한 ‘귀고리’까지, 옷과 보석으로 멋을 내는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조선 사람들의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눈에 띌 만한 네 가지를 추려보았다. 1. 쓰개(이엄) 쓰개(이엄)는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동물의 털과 비단, 무명 등으로 만든 방한용 모자였다. 수달이나 담비, 족제비 같은 짐승의 털가죽에 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