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86)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이불 속 눈물은 얼음장을 흐르는 물과 같아 밤낮으로 흘려도 그 누가 알아주나 - 여인의 정(閨情) - 이옥봉(李玉峰).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을 들어본 이는 많아도, 이옥봉은 퍽 낯선 이름일 것이다. 조선 천재 여류시인 이옥봉은 승지 조원의 첩실로만 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서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비운의 인물, 이옥봉. 장정희가 쓴 이 책 《옥봉》은 그녀의 신산했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소설적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섞어 쓴 작가의 필력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한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1630년(인조 8년), 사신단 일행으로 명나라를 찾은 조희일이 명나라 대신의 집에 초대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명나라 대신은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책 한 권을 꺼내온다. 바로 《옥봉 시집》이었다. 아버지 조원의 첩실이었던 그녀가 평소 시를 즐겨 쓰는 것을 모르지 않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지난 3월 3일과 28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탈원전, 반핵 운동 등 사회운동도 앞장섰으며, 대표적 친한파로서 한국에서도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던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이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들의 고뇌와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문화정보실 자료 제공-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그래미상을 수상한 아시아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첫 자서전. 2년 3개월 동안 잡지 《엔진》을 통해 발표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꼼꼼한 보완과 자료를 덧붙여 완성한 그의 첫 자서전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60여 년 전생애와 예술활동을 시대 흐름에 따라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YMO의 멤버로 한국의 팝음악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룹 해산 후 「마지막 황제」의 아카데미상 작곡상, 그래미상 수상 등으로 폭넓은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의 음악 중 'R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습니다.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경 소프라노가(계속 김은경 소프라노라고 하려니까 호칭이 길어 앞으로는 그냥 ‘은경 씨’라고만 하겠습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하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찬양대 광고 시간 때 가끔 은경 씨가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일정이 안 맞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간 것도 제가 올해 찬양대장이 되는 바람에 명색이 찬양대장인데 가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라는 의무감도 작용한 것임을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번 공연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오페라단이지만, 1991년에 창단하였으니 우리나라로서는 역사가 있는 오페라단이네요. 잘 아시다시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춘희>를 오페라로 한 것이기에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뜻의 이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방학이 되어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집에 가면 전기가 없고 호롱불을 켰다. 그 뒤 백열등이 보급되면서 시골에서 호롱불이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환한 밤으로 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에디슨이 백열등 전구를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모우먼 린지라는 사람이 1835년에 전구를 처음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 전구는 수명이 너무 짧고 열이 많이 발생하여 상품으로 개발되지는 못했다. 에디슨은 탄소 필라멘트를 사용하여 전구의 수명을 늘리고 빛을 강하게 하여 1879년에 전구의 상품화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87년에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만든 전구를 사용하여 경복궁 내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에 처음 전등불이 켜졌다. 《승정원일기》에는 에디슨을 의대손(宜代孫)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전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의 냉각수를 향원지에서 끌어다 썼는데 연못의 수온이 올라가 잉어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그러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발전기는 물고기를 쪄 죽이는 기계라 하여 ‘증어기(蒸魚器)’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전기불은 묘한 불이라는 의미의 ‘묘화(妙火)’, 괴상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0)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마루로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에서 공부하는 학자가 아니면 아무리 높은 관리라 하더라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해라.’ 조선 후기의 명군, 정조가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일하는 관원들에게 내린 지침이다. 쓱 훑어봐도 정조가 규장각 관원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창덕궁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한적한 곳에 2층 건물, 규장각을 지었다. 정조는 24년 동안 재위하면서 규장각 학자들과 151종류, 3,960권의 책을 펴냈다. 직접 펴낸 책 말고도 중국이나 외국의 희귀한 책을 구해와 보관하기도 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 규장각은 모든 종류의 책을 모아놓은 ‘조선의 보물창고’였다. 이 책, 신병주 교수가 이혜숙 작가와 함께 펴낸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는 규장각에 소장된 책들 가운데 잘 모를 법하거나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을 가려 뽑았다. 옛 규장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각종 국보와 보물, 옛 책과 문서, 지도, 정부 기록물 26만여 점 가운데 특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제 5월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입니다. 어릴 적 시골살이할 때는 아버지가 토종벌을 기르셨습니다. 가끔 벌에 쏘여 눈과 손이 퉁퉁 붓기도 했지만 설탕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시절이었기에 벌꿀의 달콤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린 흔히 꿀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꿀벌은 여왕벌 한 마리와 일벌, 수벌 등 채집, 정찰, 전투, 건축, 육아를 담당하는 약 2만 마리 개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꿀벌 사회는 한 마리의 여왕벌이 지배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집단 지성을 활용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삼천만 년 이상 종을 유지해온 비결입니다. 이런 꿀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꿀벌의 실종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지요. 이들이 사라지는 까닭은 살충제, 도시화, 온난화, 대기오염 등이 원인으로 대부분 인간 활동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세계 식량 생산의 약 75%가 꿀벌 등의 수분 매개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사라지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먹이사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인류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있지요. 꿀벌 멸종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지난 3월 3일과 28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탈원전, 반핵 운동 등 사회운동도 앞장섰으며, 대표적 친한파로서 한국에서도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던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이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들의 고뇌와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문화정보실 자료 제공-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1.31~2023.3.3 (향년 88세)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만엔원년의 풋볼,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체인지링, 책이여 안녕 등 【작품 3】 《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중 두 번째. 《우울한 얼굴의 아이》는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쓴 《체인지링》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다. 자살한 고로의 젊은 연인 우라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내 지카시는 베를린으로 떠나고,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유지를 받아들인 소설가 고기토는 아들 아카리와 고향 시코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季冬漢江氷始壯 (계동한강빙시장) 千人萬人出江上 (천인만인출강상) 丁丁斧斤亂相斲 (정정부근란상착) 隱隱下侵馮夷國 (은은하침풍이국) 斲出層氷似雪山 (착출층빙사설산) 積陰凜凜逼人寒 (적음늠늠핍인한) 朝朝背負入凌陰 (조조배부입능음) 夜夜椎鑿集江心 (야야추착집강심) 晝短夜長夜未休 (주단야장야미휴) 勞歌相應在中洲 (노가상응재중주) 短衣至骭足無屝 (단의지한족무비) 江上嚴風欲墮指 (강상엄풍욕타지) 高堂六月盛炎蒸 (고당육월성염증) 美人素手傳淸氷 (미인소수전청빙) 鸞刀擊碎四座徧 (난도격쇄사좌편) 空裏白日流素霰 공(리백일류소산) 滿堂歡樂不知署 (만당환락불지서) 誰言鑿氷此勞苦 (수언착빙차노고) 君不見道傍暍死民 (군불견도방갈사민) 多是江中鑿氷人 (다시강중착빙인)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얼자 많고 많은 사람들 강 위로 나와서는 쩡쩡 도끼질로 얼음 찍어내는데 울리는 소리가 용궁까지 가 닿겠네 깎아낸 두꺼운 얼음은 눈 덮인 산처럼 보이는데 차갑게 쌓인 음기 사람에게 닥쳐온다. 아침마다 등에 지고 빙고로 들어가고 밤마다 망치와 끌 챙겨서 강 복판에 모인다. 낮 짧고 밤은 길건만 밤에도 쉬지 못하고 주고받는 노동요 소리만 모래톱에 울린다. 정강이가 드러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 서면에 가면 〈붓 이야기 박물관〉이 있습니다. 장인 정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박물관이지요. 붓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번 이상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칼날을 만들되 끝이 대추 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 담갔다가 꺼낸다. 종횡무진 멋대로 치고 찌르되, 세모 창처럼 굽고, 작은 칼처럼 날카로우며, 긴 칼처럼 예리하고 가지창처럼 갈라졌으며, 살처럼 곧고 활처럼 팽팽해서, 이 병장기가 한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다." 그의 유명한 소설 ‘호질’에서 붓을 형상화한 글입니다. 붓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붓의 힘은 칼보다 강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해방을 이끈 것은 북군의 총과 칼이기도 하지만 스토우 여사의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소설의 영향이 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제공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깁니다. "붓아! 너를 잘 사용하면 천지 만물의 이치와 운명도 모두 묘사할 수 있지만, 너를 잘 쓰지 못하면 충신과 간신, 흑과 백이 모두 뒤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파원군 윤평이 숙신옹주를 친히 맞아 가니, 본국에서의 친영(親迎)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7년 3월 4일 세종 17년인 1435년 3월, 윤평과 숙신옹주가 혼인을 올렸다. 이 혼인은 무척 특별했다. 조선 왕실에서 친영례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왕가의 혼인을 친영례로 치른 것이다. 친할 친(嚫), 맞을 영(迎)으로 된 말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와서 혼례를 치른 뒤 곧바로 시집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런 친영례는 명나라의 풍속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신랑이 혼례를 치른 뒤 일정 기간 처가에서 지내는 ‘처가살이’ 전통이 강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는 줄곧 조선의 혼인 풍속을 문제 삼았고, 조선 왕실에서는 성리학에 따라 생활 예법을 중국식으로 바꾸며 친영례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명나라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그러나 숙신옹주가 혼인을 올린 뒤에도 친영례는 한참 동안 일반화되지 않았다가, 무려 200년이 지난 17세기에 가서야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17세기 때까지만 해도 ‘시집간’ 여인보다는 ‘장가간’ 남성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 책, 《옹주의 결혼식》은 조선 첫 친영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