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땅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 뜻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지라도, 저마다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꽃은 비로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도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더없이 가깝고 정겹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책, 《그래서 이런 지명이 생겼대요》는 서울뿐만 아니라 강원ㆍ경기ㆍ충청 등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땅이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친절하고도 정겹게 풀어주는 책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지명에 얽힌 유래도 함께 소개해 다 읽을 때쯤이면 세계로 눈을 넓힐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지명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다섯 개를 뽑아보았다. #1. 장승배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경기도 화성(지금의 수원)으로 이장한 뒤, 11년 동안 12차례나 찾아갔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지금도 가깝지 않은 수원을 그 당시 가려면 꽤 먼 길을 움직여야 했다. 현륭원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커다란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여기는 민가도 없고 사람도 드물어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침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꽃을 어디서 보았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작고 아담한 암자의 뜨락이었던 것 같다. 한 겨울에 눈송이처럼 마른 벚나무 가지에 피어있던 연분홍이라기보다 흰색에 가깝던 그 연약한 꽃을 나는 어쩌다 핀 ‘겨울벚꽃’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꽃에 이름이 있었다. 후단자쿠라(不断桜)! 얼마 전, 일본의 중견 시인이 보내온 시집 제목이《不断桜, 일본 발음은 후단자쿠라, 이하 ‘不断桜’》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겨울벚꽃’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5) 씨는 윤동주의《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도쿄 콜삭사에서 펴내(2015년 7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시인이다. “후단자쿠라(不断桜)는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 벚꽃입니다. 원래 벚꽃은 봄에 피는 것이지만 후단자쿠라는 늦가을부터 봄을 맞이하기까지 피는 꽃이라 더욱 마음이 끌려서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지요. 이번에 낸 시집은 약 10년 만에 낸 책입니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이도 있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시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둔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베어진 옥수수 대궁 위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의 나른한 오수에서 길가에 마냥 흐드러지게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청순한 자태에서 한낮의 여름을 식히듯 또랑또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묻어나는 가을을 느낍니다. 해는 점점 짧아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아직 여름이고 싶은 나무의 잎새를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 여름내 숨어있던 새들도 햇살 아래로 나오는 걸 보니 가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길쭉한 꽃송이를 하얗게 이고 있던 밤나무의 모습이 어제인 듯한 데 바늘 숭숭한 송이 안엔 속살이 굵어져 가고 성급하게 다가온 추석에 열매를 물들이기에 바쁜 대추나무 보름달 아래 휘영청 한 수숫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 감의 깊이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름은 켜켜이 쌓인 소중한 추억과 함께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 빈자리에 풍요를 구가하는 계절이 성큼 와 있습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뭇잎이 지는 계절, 이별의 계절, 비워냄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내 키워냈던 열매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개구리의 합창으로 요란했던 황금 들녘도 빈 들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가을은 비워냄을 학습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덜고 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 책은 산악계 원로이신 이용대 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님이 쓰신 수필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산정한담(山頂閑談)》은 산악계 원로가 지나온 산악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래서 책 표지의 부제에는 ‘산 위에 올라 인생을 돌아본다’라고 되어 있네요. 선생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혈기 넘치던 젊은 날 나의 산은 위험한 짓거리와 마주하는 치기로 가득했다. 여러 차례의 추락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산을 향한 열정을 꺾지 못한 채 오늘도 산에 오르고 있다. (가운데 줄임) 이번 글의 내용 대부분은 산과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알피니즘의 정체성, 산악인들의 사사로운 일상과 그들의 등산 활동이 배경이며, 이전 저서에서 못다 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주변 산사람들과 부담 없이 나누는 산정한담(山頂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삶의 터전마저 산기슭으로 옮겨와 둥지를 마련한 지 40년, 아직도 강북에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산의 품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 내 고집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검계! 이름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의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검계는 도성 안팎의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든 조선 후기의 비밀 폭력조직으로, 양반 세력가의 자제들도 많이 가담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곤 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포도대장 장붕익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장붕익은 26살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조선 영조 때, 오늘날의 경찰청장 격인 포도대장으로 활약하며 검계를 일망타진했다. 그는 전조선 후기 유명한 포도대장 집안이었던 인동 장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운이 넘치고, 작은 일에 얽매이거나 남에게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장하현은 숙종 때, 장붕익은 영조 때, 손자 장지항은 영ㆍ정조 때 각각 포도대장을 지냈으니 가히 포도대장 명문가라 할 만했다. 이 책 《포도대장 장붕익 검계를 소탕하다》은 장붕익이 1725년~1735년 포도대장으로 있던 시절, 포도청에서 실제로 벌어졌거나 일어났을 법한 사건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장 대장의 참모 격인 김 종사관, 특별 대원인 이 포교와 팔봉, 남이, 막동이 등이 등장해 각종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흥미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문화를 접근하는 길은 폭넓고 다양하다. 좋은 접근 방법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속속들이 일본문화를 알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간접체험이다. 간접체험 가운데는 강의나 강연 또는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는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것은 독서를 통해 얻는 방법일 것이다. 일본문화를 책을 통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고전독회(이하 고전독회)에서 펴낸 책이 그것이다. 고전독회에서 펴낸 일본문화 관련 책 가운데 《의식주로 읽는 일본문화》, 《놀이로 읽는 일본문화》, 《동식물로 읽는 일본문화》 세 시리즈는 그 내용에 있어 웬만한 ‘일본문화’를 포용하고 있어 이 분야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의식주로 읽는 일본문화》를 보면, 문학작품에 나타난 복장, 옷 선물, 속대, 향기, 머리, 머리카락, 빗 등을 다루고 있다. ‘옷에 물든 여인의 매력’ 편에서는 헤이안 시대 문학작품인 《겐지 이야기》에 나타난 새해맞이 옷을 선물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옷을 선물하는 사람과 받는 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어쩐지 근엄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옛 그림’은 한동안 내가 선뜻 다가가기 힘든 대상이었다. 이런저런 그림을 자주 접하면서도, 그리고 심지어 우리나라 ‘옛 그림’을 심심찮게 보면서도, 묘하게 낯설고 어려운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막연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옛 그림’은, 이 책을 계기로 계속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진중한 느낌 때문에 다가가기가 망설여져도 막상 대화해보면 잘 통하는 친구처럼, 옛 그림에 담긴 오묘한 맛과 신묘한 뜻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는 뒷면에 있는 소개 문구 그대로, ‘다정한 입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강연집’이다. 그가 강의했던 내용이 네 장으로 정리되어 네 번의 특강을 듣는 기분이다. 지은이는 ‘이야기에 담긴 연희성은 역시 말로 해야 흥이 돋는다. 글로 단장하려 하니 제스처만 남고 교감이 날아간 느낌이다. 귀에 남을 이야기가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다.’라며 겸양을 보이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강의 덕분에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몰입할 수 있다. 책의 1장에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문화예술기획자’란 직업을 아는가? 많은 사람에겐 생소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외면하고 살지 않았다면 문화예술기획자와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기획자가 있어야만 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열 수가 있다. 거문고를 공부하고, 지금 문화예술기획자로 살아가는 이화여대 이진경 교수의 글을 통해 앞으로 공연과 문화행사를 톺아보고, 그 뒤에 서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이 교수가 어떻게 문화예술기획자가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문화예술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향후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문화예술기획'이란 작업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한다. (편집자말) 문화예술기획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예술전공으로 뭐하며 살 수 있어요?”다. 그럼 나는 내가 어떻게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가지 직업들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처음부터 문화예술기획자가 목표는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보면서 곧잘 공부하니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중학교 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농촌에 가보면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 덕분에 겨울에도 마트에 가보면 상추, 호박, 오이, 딸기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제주도의 특산물로 알고 있는 감귤을 경기도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유리온실에서는 카네이션을 재배하여 사시사철 꽃을 공급하기도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반 국민의 겨울철 식탁을 보면 조선시대 임금보다도 더 화려한 식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리나 비닐, 플라스틱으로 지은 인공 구조물에서 인위적으로 재배 환경을 조절하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 방법을 ‘시설재배’라고 한다. 시설재배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비닐하우스의 색깔이 하얀색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농촌이 작물의 색깔인 푸른색이 아니고 백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색혁명이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졌다. 사전을 찾아보면 백색혁명이란 “비닐하우스 농법의 보급으로 한겨울에도 푸른 채소를 공급할 수 있게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서도 밭농사를 지으면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하는 농가가 많이 보인다. 강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니…” 교산(較山) 허균(許筠, 1569~1618). 우리는 보통 그를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기억한다. 첩이 낳은 자식인 서얼의 한을 그린 홍길동전은 지금도 삼척동자가 알 만큼 유명한 고전소설이다. 홍길동을 통해 허균은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모두가 평등한 나라, 율도국을 세워서 말이다. 허균은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 뒤 조선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유일하게 복권되지 못한, 조선 중기의 문제적 인물이다. 혹자는 그가 내심은 권력을 탐했고, 음험했으며, 세상과 영합했다고 비난한다. 그도 그럴 것이 6차례 파직을 당하고 3차례 귀양을 가면서도 말년에는 권력을 잡아 득세했고, 문벌이 도도한 가문에서 적자로 태어난 전형적인 ‘금수저’였던 그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분에 얼마나 공감했겠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책 《인문주의자 허균, 개혁주의자 허균》은 항변한다. 교산 허균은 진심이었다고. 명문가의 적자로 태어난 거칠 것 없는 신분임에도 서얼 차별을 반대했고, 시대가 강요하는 사상의 획일성에 반기를 들고 부패한 정치와 제도를 개혁하려 했으며, 오로지 두려워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