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앞바다에는 해녀가 많다.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심심치 않게 테왁이 보인다. 테왁은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보관하거나 몸을 기대어 쉬는, 그물을 매달아 놓은 동그란 튜브다. 주황색 테왁이 동동 떠 있으면, 그 밑에서 해녀가 열심히 물질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물속에 잠수장비도 없이 들어가 전복이며 소라를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닷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숨에 기대어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가끔 해녀들이 작업 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머물다 가는 해녀의 모습은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 글쓴이 고희영과 그린이 에바 알머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글과 그림을 그리고, 통역사로 유명한 안현모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함께 실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제주가 고향인 지은이 고희영은 어릴 때부터 해녀들을 보며 자랐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다. 해녀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바다로 나가고 바다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은 바다가 두렵지 않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띄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북한산 둘레길 은평구간에 부활의 좋은 소식이 있다. 필자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겸 산책길로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 중에는 은평뉴타운 4단지 뒷편쪽 길이 있다. 아파트 뒷쪽으로 난 길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인데 아파트단지에서 올라가는 가까운 곳 비탈에서 얼마 전부터 엎드려 있는 석상이 하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었다. 그 전에는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길 옆 살짝 비껴난 곳이어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올 여름 비가 계속 온 다음에 노출되어, 머리가 밑으로 향해 엎어져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아침에 보니 어떤 남자 분이 삽을 들고 옆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 살다 보면 수시로 제주어가 들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면 얼핏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말들. 제주어로 빠르게 하는 대화는 흡사 외국어나 다름없다. 분명히 한국어는 맞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번 제주어에 눈을 뜨고 나면 제주어로 된 가게 이름이나 지명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제주어로 하는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좀 어렵지만, 제주어를 조금만 알아도 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 올레길 푯말을 볼 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자 현택훈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돌하르방 공장 한편에 버려져 있던 팔 하나 없는 돌하르방, 그 돌하르방을 품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누군가 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잊히기 쉬운 어떤 것, 시인은 그것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제주어도 시인에겐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제주어는 위기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 제주어를 쓸 줄 아는 몇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제주어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때는 제주어에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한 이 대답은 고금의 어록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등산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이 다 좋아하고 다 올라가고 싶은 그런 운동, 혹은 취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는다.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산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잃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세상 동떨어진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한 후에 유산기(遊山記)를 많이 남겼지만 우리의 산이 못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 없는 관계로 전문적인 등산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산을 오르는 것을 심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보고 즐긴 분들은 많다. 일찌기 청량산에 들어가 산을 유람하고 거기서 공부를 한 퇴계 이황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도 수능이 다가올 무렵이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지만, 조선에서도 과거시험은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처럼 진로가 다양하지 않던 시대, 과거시험은 벼슬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평생을 바쳐 이뤄내야만 하는 ‘인생과업’이었다. 때로는 일찍 과거에 급제, 순탄하게 벼슬길에 나아가기도 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고시낭인’ 못지않게 ‘과거폐인’도 많았고, 평생을 적성에 맞지 않는 과거시험에 매달리느라 고생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른 길을 찾고 싶어도, 양반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을 삼킨 채 936년간 치러졌던 과거시험. 이 책 《과거제도 조선을 들썩이다》는 그런 과거시험의 모든 것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풀어낸 책이다. 책에서 풀어내는 과거시험의 이모저모를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1.한양에 사는 것이 과거 급제에 유리했다? 그렇다. 과거시험은 확실히 한양, 그중에서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과거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벌써 2년도 더 지난 2019년 7월에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으로서 한국의 서원들은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른다는 유교국가 조선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사성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지만, 학문 연구와 교육기관으로서의 서원이 독자성을 가지고 정착, 보급된 것은 퇴계 이황(李滉)에 의해서이다. 풍기군수를 맡고 있던 퇴계는 1549년에 백운동서원에 대해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받아냄으로서 서원이 나라에 의해 공인화되었고 그 뒤를 이어 서원들이 각지에서 건립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의 서원문화를 일으킨 퇴계 이황(李滉, 1501 ~ 1570)의 학덕을 기리는 도산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그런데 이 서원은 퇴계가 별세한 지 4년 후인 선조 7년에 그의 문인과 유림이 세운 것이고, 원래는 퇴계가 작은 집을 지어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던 도산서당이란 건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여기에 서원으로서의
[우리문화신문= 우지원 기자] ‘말 키우는 오랑캐’, 목호(牧胡)! 목호는 고려 말, 제주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몽골인이다. 그들은 몽골이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직속령으로 편입한 이래 제주에서 말을 비롯한 각종 가축을 키우며 100여 년 동안 살아가고 있었다.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든 몽골은 제주가 필요했다.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말의 산지로서 제주의 가치는 상당했다. 몽골은 제주를 원이 경영하는 14개 목장 중 하나로 삼고, 약 1,500명의 군사를 주둔시키며 말을 길러냈다. ‘목호’라 불리는 이 군사들은 처음에는 낯선 존재였지만, 점차 제주 토착민과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깊숙이 섞여들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100여 년간 살을 맞대고 살며 이들은 더는 오랑캐가 아닌, 이웃집 아들이자, 남편이자, 가장인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1374년, 최영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깡그리 몰살당한다. 도대체 그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지 ‘제주의 목호가 일으킨 반란을 최영 장군이 진압한 사건’으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응어리진 그해 여름의 역사를, 작가 정용연이 《목호의 난, 1374 제주》이란 한 권의 만화로 숨가쁘게 풀어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교수가 이번에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책을 냈습니다. 그동안 이 교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남성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고, 10년 이상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밝혀내는데 온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리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제목으로 한 권에 20명씩 총 10권으로 2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지요. 그리고 2018년에는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선정한 여성독립운동가 298명에다가 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하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도 냈습니다. 이 책을 낼 때만 하더라도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여성 독립운동가가 298명에 불과하였군요. 그런데 2021. 3. 31. 현재에는 도합 52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광복 후 2018년까지 298명에 불과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그 후 3년 만에 526명으로 늘었다면 상당히 늘어난 것이겠네요. 그렇지만 이 교수는 이 숫자도 얼마 안 된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서훈이 늘어나게 된 데에는 이 교수의 공도 적지 않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 운동은 주로 개인의 소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각성’한 개인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를 알아보고 방문하여 물건을 사는 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소비행동은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으로 공정무역 운동의 질적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은 2000년 영국의 작은 마을 가스탱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이웃나라들로 퍼져 지금은 세계 35개 나라에 2,030개의 공정무역 마을이 있는데, 유럽에 95% 이상이 몰려 있다. 독일이 687개로 가장 많고, 영국(425개), 오스트리아(207개) 등이 뒤를 잇는다.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달성하면 심사를 거쳐 공정무역 마을로 오른다. 심사의 기준이 되는 다섯 가지 기준은 1) 지방정부 및 의회의 지지 2) 지역 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 확보 3) 공동체에서 공정무역 제품 사용 4)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대중의 지지 5) 공정무역위원회 구성 등이다. 지방정부의 지지와 지역 내 주민들의 참여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