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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백색혁명, 겨울에도 푸성귀를 먹을 수 있지만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7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농촌에 가보면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 덕분에 겨울에도 마트에 가보면 상추, 호박, 오이, 딸기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제주도의 특산물로 알고 있는 감귤을 경기도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유리온실에서는 카네이션을 재배하여 사시사철 꽃을 공급하기도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반 국민의 겨울철 식탁을 보면 조선시대 임금보다도 더 화려한 식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리나 비닐, 플라스틱으로 지은 인공 구조물에서 인위적으로 재배 환경을 조절하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 방법을 ‘시설재배’라고 한다. 시설재배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비닐하우스의 색깔이 하얀색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농촌이 작물의 색깔인 푸른색이 아니고 백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색혁명이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졌다.
 

 

사전을 찾아보면 백색혁명이란 “비닐하우스 농법의 보급으로 한겨울에도 푸른 채소를 공급할 수 있게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서도 밭농사를 지으면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하는 농가가 많이 보인다. 강원도는 고도가 높고 산이 많아 겨울에 기온이 낮은데도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농부에게 직접 물어보니 한겨울에 난방하는 것은 아니고 피망과 파프리카 등을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재배하는데, 품질이 좋아서 일본에 수출까지 한다고 한다.

 

1970년대 들어서 도시 근교를 중심으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가 조성되었다. 신선한 푸성귀(채소)를 겨울에도 공급하는 비닐하우스 원예 단지 규모는 1970년에 736ha에서 1980년에는 7,322ha로 10배로 확대되어 백색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비닐하우스 골조가 나무나 대나무에서 아연도금 파이프로 대체되고 비닐하우스 측면개폐기와 반자동개폐기가 보급되면서 노동력 절감과 함께 생산 규모가 확대되었다. 또한 물주기와 비료주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간이 관비재배기술’이 도입되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2021년 통계에 의하면 시설재배 총 면적은 82,810ha에 달하고 있으며 전체 논 면적 780,000ha의 10.6%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설재배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농사법이 결코 아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시설 원예 기술을 도입하였다. 일본의 시설재배 면적은 46,500ha이고 시설재배 작물은 80%가 푸성귀인데, 토마토를 가장 많이 재배한다. 일본은 지진의 나라답게 내진설계가 반영되어 저측고 온실을 개발하였는데,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다.

 

중국은 1980년부터 시설재배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시설 재배 면적이 350만ha로서 세계 가장 큰 규모다. 재배작물은 95%가 푸성귀다. 중앙 정부의 대규모 지원으로 아시아 시설원예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 중이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푸성귀를 많이 수출하는 네델란드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40%에 불과한데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2도에 불과해 시설재배에 유리한 기후 환경을 갖추고 있다. 현재 네델란드는 11,000ha의 온실에서 토마토, 파프리카, 오이, 딸기 들을 재배하여 수출하고 있다.

 

시설재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경제성에 있다. 최초 시설비는 다소 많이 들지만 일단 설치하면 병충해가 거의 없고,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다. 농업전문가에게 문의해보니 시설 재배 면적 1,000평에서 잘하면 1년에 약 1억 원의 소득을 올릴 수가 있다고 한다. 농민들로서는 논농사 대신에 시설재배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시설재배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설재배의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인데, 현재 시설재배의 난방은 모두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풋고추, 오이, 토마토, 딸기 들이 제철이 아닌 겨울에 생산되어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석유풋고추’, ‘석유딸기’라고 부른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1986년부터 면세유를 공급하고 있다. 농업 활동에서 사용하는 농기계에 소비되는 석유를 싼값(시중 가격의 약 40%)에 공급하는 정책인데, 온실에서 사용하는 난방기기도 혜택을 받는다. 면세유는 농기계보다 시설재배에 쓰이는 것이 훨씬 많다. 소비자가 겨울에도 신선한 푸성귀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부의 보조금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설재배의 두 번째 문제점은 기후변화 시대에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는 2050년 탄소제로로 가기 위해 이산화탄소(CO²) 감축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 가운데 농축산 부문은 2018년 2,470만 톤에서 2030년까지 1,830만 톤(25.4%)으로 감축해야 한다. 그 뒤 2050년까지 70%를 감축해야 한다. 석유를 사용하여 비닐하우스 난방을 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가 늘어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농업부문에서 어려운 일이다. 대안이 잘 안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설재배에 전기보일러를 쓰라고 권했지만 초기비용과 전기료의 상승으로 인해 해결이 쉽지 않다. 효율이 높은 태양열 판넬을 모든 농가주택의 지붕과 벽에 설치하여 싼값에 전기를 공급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설재배에서 석유를 계속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농촌진흥청 난지작물연구소는 아열대작물을 농가소득작목으로 추천하고 있다. 아열대 작물인 파파야, 바나나, 망고, 구아바, 오크라 등등 생소한 이름의 열대작물 재배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열대작물을 재배하려면 시설재배가 필수이며 비닐과 석유를 써야 성공할 수 있다.

 

백색혁명의 세 번째 부작용은 폐비닐 문제이다. 농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가운데서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폐비닐이다. 비닐하우스는 적어도 3년에 한번 꼴로 비닐을 바꿔야 하는데 이 폐비닐의 수거와 처리가 원활하지 않다. 게다가 시설하우스의 90%가 사용 연수 15년을 초과해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했을 때 시설재배가 과연 오래갈 수 있는 농법인지 의문이 든다. 백색혁명으로 혹한의 추운 겨울에도 소비자는 신선한 푸성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시설재배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어 1년에 1억 원 이상을 버는 부농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시설재배는 현시대의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인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농법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은 지구촌 대부분 나라들이 동의한 목표다. 올여름에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난 불볕더위와 가뭄은 지구온난화가 환경학자들의 경고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백색혁명은 의외로 수명이 짧은 혁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