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매주 수요일 야간개장 시간(18:00~21:00)에 ‘전시기획자(큐레이터)와의 대화’를 운영한다. 9월에는 특별전시실과 상설전시관에서 모두 20개의 해설이 진행될 예정이다. 먼저 국내 처음 태국 문화와 미술을 소개하는 특별전인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미술명품전》의 마지막 전시 설명이 예정되어 있다. 더불어 우리의 삶과 자연이 담긴 밥상의 의미와 값어치를 조명하는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의 전시 해설이 네 차례 준비되어 있다. 특별전 기획자의 전시 기획 의도와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상설전시관에서도 다양한 해설이 이어진다. 전시관 1층 선사고대관 구석기실의 <주먹도끼 vs 슴베찌르개>에서는 인류가 처음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시절, 도구별 용도와 기능의 차이를 설명한다. 청동기실의<돌로 만든 권력의 상징>에서는 복합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권력의 상징이었던 간돌검의 의미와 기능을 살펴본다. 백제실의 <백제의 건축 장식>에서는 치미, 기와, 벽돌 등 건축 장식에 담긴 백제인의 정제된 미감을 소개한다. 신라실의 &l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조선 19세기를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예술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주제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를 연다. 이번 전시는 김정희가 조선과 중국 문인, 후학들과 맺은 교유를 중심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살펴보며,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보물) 등 편지와 서예, 그림, 탑본 등 31건 38점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2026년 서화실 재개관을 기념해 기획한 한국의 대표 서화가 주제전시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에 이어 세 번째로 추사 김정희를 다룬다. 전시는 김정희의 삶과 금석학, 문예, 불교 분야에서 동반자와의 교유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했다. 추사 김정희의 시대 18세기, 조선왕조 영ㆍ정조 시대 미술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선식의 사실주의 화풍이 지배했다. 그러나 18세기 초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타성에 빠져서 들어갔을 때 추사 김정희가 등장하여 문자향(文子香)ㆍ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본격적인 문인화풍 바람을 일으켜 앞 시기와는 전혀 다른 서화세계를 펼치게 되었다. 이 변화는 서예의 새로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오는 8월 13일(목) 낮 2시 박물관 대강당에서 특별강연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연다. 이번 강연은 상설전시관 서화실에서 열릴 주제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8.11~11.22.)와 연계하여 마련된 자리로 추사 김정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유홍준 관장이 직접 그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19세기 으뜸 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는 제주와 북청에서 10여 년의 긴 유배 생활을 겪었지만, 평생 학문과 예술을 향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 강연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던 그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더욱 깊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연 신청은 7월 30일(목) 낮 2시부터 온라인 선착순 접수로 진행되며, 1인 1매까지 예약할 수 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박물관 누리집과 강연 운영사무국(02-745-3880)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에 관심 있는 많은 분의 참여를 기대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흥사(大興寺)가는 길 반세기 전 비바람 속 갔던 길 (돌) 일지암 바라며 옛 생각하네 (달) 차 한잔 속 담겨있던 깨달음 (초) 선차보다 초의 차맥 이었네 (심) ... 24.12.31.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는 불한시사 시벗 다섯 사람이 남도 여행 중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는 숲길 한 주막에서 점심을 하며 함께 읊은 합작시이다. 오래전 비바람 속에 이 길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걷는 길 위에서 발구하고 각자가 한 구절씩 보탰다. 남도의 산길과 세월의 기억, 그리고 차향(茶香)이 겹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즉흥의 시편이다. 승구(둘째 줄)의 '일지암(一枝庵)'은 조선 후기의 선승이자 차인인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물며 차를 달이고 사유를 펼치던 암자다. 대흥사 뒤편 산자락의 작은 암자지만 조선 차문화가 다시 살아난 중요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는 이곳에서 차의 이치를 정리한 글을 남기고,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물론 당대 한양의 여러 문인과 교유하며 차의 정신을 널리 전하였다. 특히 남도 차문화의 흐름을 말할 때 다산 정약용과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강진 유배 시절의 다산은 인근 절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조선 후기 차문화 부흥을 이끈 인물로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를 빼놓을 수 없다. 초의의 본명은 의순(意恂)으로,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이후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에 머물며 선 수행과 함께 차를 통해 마음을 닦는 삶을 평생 실천하였다. 그는 《동다송(東茶頌)》을 남겨 차의 제다법과 정신을 정리하였고, 차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수행의 길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초의선사의 삶에 깊이 새겨진 또 하나의 이름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다. 조선 후기 최고의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추사는 제주 유배 시절 극심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지냈다. 그에게 초의가 보내준 차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세상과 이어지는 숨줄과도 같았다. 추사는 차를 기다리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이렇게 적었다. “차 시절이 아직 이른 건가요? 아니면 이미 차를 따고 있는 건가요. 몹시 기다리고 있소. '일로향실(一爐香室)' 편액은 적절한 인편을 찾아 보내도록 하겠소.” 대흥사에 남아 있는 이 글씨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차문화의 정신적 상징처럼 회자된다. 이 편지 속 문장에는 차를 향한 갈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남도 여행 3일째, 진도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5시 반 무렵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한반도 최서남단의 가장 전망 좋은 곳 세방낙조(細方落照)’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 집을 떠날 때부터 일부러 숙소를 세방낙조 쪽으로 정했건만 삼별초의 항쟁터인 진도 용장성(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을 둘러보고 출발할 무렵부터 하늘에 비구름이 잔뜩 끼어 틀렸구나 싶었는데 역시 노을 감상은 허사였다. 실망감에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하릴없이 지도를 펴고 이튿날 갈 곳을 물색하다 눈에 띈 곳이 ‘소전미술관’이었다. 소전(素荃)이라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일본인에게서 되찾아온 손재형(孫在馨, 1903~1981) 선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던가? 선생이 진도 출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진도에 소전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찾아갈 소전미술관의 정보를 얻고자 노트북을 켜고 ‘소전미술관’을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소전미술관 자체 누리집이 없어 진도군청(https://www.jindo.go.kr) 누리집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반갑게 소전미술관이 나온다. 그러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전부로 소전미술관이 언제 개관을 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 한 - 이재금 소한 대한 지나면 입춘 오지 보리 뿌리 눈 비비는 봄이 오지 소한 추위 서슬 푸르게 매워야지 암, 그래야 오는 봄 우렁차지 어디 아픔 없이 한세상 열리겠는가? (아래 줄임)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름과 달리 ‘大寒’보다는 오히려 ‘소한’이 더 춥다고들 말하는데 그러면 한해 가운데 소한 무렵이 가장 추운 때인지도 모른다. 이때 눈이 쌓인 들판은 세상이 모두 죽은 듯 보인다. 세상에 생명체란 생명체는 모두 죽은듯하다. 그런데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세기의 대표작 <세한도>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했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따스함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세한도>는 추사가 184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제주도에서 5년째 유배 생활을 하던 무렵 청나라에서 귀한 책을 사다주는 등 유배된 스승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뒷바라지한 제자 이상적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서 그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동파와 추사 해남섬 동파 적거지 있다면(돌) 제주섬 추사 유배지 있으니(달) 위리안치 속 깊어가는 시심(초) 예부터 적소 시서화 빛났네(심) ...... 24.12.21.불한시사합작시 설명 / 해남도에 소동파 세 번째 적거지가 있다면 제주도에는 추사 적거지가 있다.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시(詩)ㆍ서(書)ㆍ화(畵) 삼절에 임금 총애를 받았던 관리 출신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동파와 추사는 유배지(流配地)서 인생과 예술을 완성시킨 점도 독특하다.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청(鞫廳, 조선 때, 역적 등의 중죄인을 신문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했던 관아)에서 가두어둔 죄인 김정희(金正喜)를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도록 하라.“ 《헌종실록》 7권, 헌종 6년(1840년) 9월 4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로써 조선 후기 선비이자 금석학자, 문인화가, 서예가로 그 이름을 중국에까지 알렸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를 가게 됩니다. 여기서 ‘위리안치(圍籬安置)’란 죄인이 귀양살이하던 곳에서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합니다. 그는 탐관오리를 탄핵하다가, 임금과 신하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사유로 임금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능지처참 된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무려 9년 동안 유배되었습니다. 그 뒤 1851년(철종 2년)에 풀려났다가 다시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어 모두 12년을 유배되어 살았습니다. 14.7m에 이르는 대작 국보 <세한도(歲寒圖)>를 그린 서예가며 대학자인 추사는 제주도 유배 때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조차 없이 좁은 것은 물론 거미와 지네가 기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욕심을 버리지 않는 것을 노욕(老慾)이라고 합니다. 그건 노추(老醜, 늙어서 추하게 됨)가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물론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요. 그런데 분수에 넘치고 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노욕이 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청년보다 노년이 죽음에 더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그러면 욕심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많은 부분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데 인생을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요. 우린 물러날 줄 모르고 내려놓을 줄 모르고 움켜쥐려고만 하는 노욕이 심한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양심도 없는 자나 제 욕심만 가득 차고 관용도 없는 그런 존재로 보일 뿐이지요. 인생은 삶의 종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생이 끝나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잘못을 단죄하지 못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