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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100여 년 전 인기 절정의 산타령, 무대에서 뽐내다

선소리산타령보존회, 소월아트홀에서 제23회 발표회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100여 년 전만 해도 장고를 잡은 모갑이의 지휘에 따라 산타령패들이 소고를 치면서 대형을 만들어 나가고 목청을 드높이기 시작하면 소리판은 후끈 달아올라 주위의 구경꾼들이 구름 같이 모여들었다는 것이 산타령이다. 그 산타령의 맥을 이어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경기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이 어제 529일 늦은 3시에 서울 성동구 소웥아트홀에서 선소리산타령보존회 주최로 열렸다. 

 

   
 

 

   

▲ 제자들과 산타령을 하는 황용주 명인


   

▲ 해설하는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왼쪽), 맛깔스러운 사회를 보는 방영기 전수교육조교


공연에 앞서 단국대 서한범 명예교수는 무엇보다도 산타령은 다리밟기(답교) 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다. 구한말까지도 서울의 왕십리와 뚝섬을 잇는 <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밟기 놀이가 행해졌는데, 이날 밤에는 서울, 경기 일원의 산타령패()들이 전부 모여 <산타령>을 부르며 밤 새워 놀았다고 한다. 각 지역의 선소리패들이 각각의 특징을 살린 복색과 율동을 곁들이고, 저마다의 기량을 들어내면서 그곳에 참가한 시민들과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부르던 모습은 그 상상만으로도 신바람이 나는 듯하다.” 산타령에 대해 설명한다 


선소리산타령 방영기 전수교육조교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공연은 먼저 황용주 최창남 명인과 13명의 제자들이 부르는 경기선소리산타령 놀량"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도화타령으로, “ 개구리타령으로 숨차게 넘어간다. 마치 살곶이다리에서 산타령패들이 밤새워 흥겹게 노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어서 방영기 외 8명이 민요 방아타령, 사설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을 흥겹게 부른다. 또 조효녀 외 12명이 불가 회심곡을 부르고, 최주경 외 8명이 민요 한강수타령, 흥타령, 개성난봉가가 이어진다. 한눈 팔 사이 없이 1부가 그렇게 지나갔다 


훈련원(訓練院) 노던 맹꽁이가 첫 남편(男便)을 이별(離別)하고
둘째 남편을 얻었더니 손톱이 길어 포청(捕廳)에 가고
셋째 남편을 얻었더니 육칠월(六七月) 장마통에 배추잎에 싸여
밝혀 죽었기로 백지(白紙) 한 장 손에 들고 경무청(警務廳)으로
재돈(齋錢) 타러가는 맹꽁이 다섯.“ 


2부의 시작으로 황용주 명인이 휘몰이 맹꽁이타령을 멋들어지게 부른다. 첫 남편을 이별하고, 둘째남편은 손톱이 길다고 포청에 잡혀가고, 셋째남편을 배춧잎에 싸여 밟혀죽었다고 경무청으로 제사지낼 돈을 타러간다는 다섯 맹꽁이 얘기가 매우 흥겹다. 

 

   

▲ 맹꽁이타령을 부르는 황용주 명인


   

▲ 최창남 명인


이어서 이건자 외 15명이 나와 장기타령을 부른다. 어른들이 장기타령을 부르는 사이 아이들은 모형장기로 흥이 나서 장기를 둔다. 계속해서 임하영 외 8명의 민요 청춘가, 사발가, 양산도, 밀양아리랑, 김옥연 외 14명의 경기좌창 풍등가”, 정점순 외 5명의 민요 한강수타령, 늴리리야, 태평가, 유금선 외 4명의 문경세재아리랑이 이어진다 


이제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황용주 명인이 나와 정선아리랑과 이별가를 부른다. 그리고 전수교육조교 방영기와 함께 한오백년을 부르면서 한오백년 산타령을 함께 부르자고 다짐한다. 이어서 김옥련 외 2명의 강원도 아리랑, 조효녀 외 2명의 노랫가락, 조효녀 외 5명의 창부타령, 이건자 외 전 출연진이 나와 경복궁 타령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방영기와 전 출연진의 아리랑으로 공연을 끝맺는다 

 

   

▲ 스승 황용주 명인(왼쪽)과 제자 방영기 전수교육조교가 다정스레 산타령을 한오백년 부르자고 다짐한다.


   
 

1921년도, 일본인 다나베가 한국으로 음악기행을 왔었을 때의 기행문을 보면 종로 3가 단성사(당시에는 활동소옥) 앞에는 선소리패들이 부르는 산타령 소리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구름같은 사람들 때문에 놀랐다고 할 정도이다. 단성사 뿐 아니라 서울의 모든 영화관에서는 선소리패를 초청해 소리판을 벌리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이 산타령을 얼마나 좋아했는가 가히 짐작이 된다 


이제 이 산타령을 흔히 볼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황용주, 최창남 명인과 그 제자들이 고군분투하며 맥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크게 손뼉 쳐 마지않을 수 없다 


도봉동에서 왔다는 서명자(54, 주부) 씨는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무대가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소리꾼들이 나와 산타령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흥겨워졌다. 예전에 그렇게 인기 있었다는 산타령이 지금은 이분들에 의해 어렵게 맥이 이어나가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주위 사람들에게 산타령의 매력을 적극 알려야 하겠다.”고 말했다. 


약간 지루한 부분도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아 좀 더 변화를 주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지만, 선소리 산타령이야말로 우리 겨레가 길이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무형문화재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 전출연자가 나와 청중과 아리랑으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