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전수희 기자] 수원박물관은 오는 7월 26일까지 특별기획전 ‘영조어필(英祖御筆)’을 열고 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학문과 문예를 중시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1694~1776)의 글씨를 주제로 하여 영조어필 서풍의 변화와 영조의 서예관을 이해하고 어필에 담긴 뜻을 살필 수 있는 전시회다.
▲ 영조임금 어진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숙종 20)∼1776(영조 52 )는 임금 자리에 있었던 기간이 무려 52(1724∼1776)년이나 되었던 임금이었다. 성은 이씨. 이름은 금(衿), 호는 양성헌(養性軒). 숙종의 세 아들(景宗·英祖·延齡君)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이며,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金漢耉)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이다.
영조는 재위 기간 중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비정한 아버지였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세종, 정조와 함께 3대 성군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영조는 탕평정치를 표방하여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고, 검약한 삶을 통해 모든 이에게 모범을 보인 임금이다. 뿐만 아니라 시문과 서화를 좋아하여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영조는 어필로 자신은 물론 왕실을 다스리는 한편 선왕의 위업을 기리고, 신하도 인도하고 격려하며, 백성들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 영조가 7살 때 쓴 글씨 "송죽(松竹)"
▲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쓴 편지글. 1720년 5월 13일 경상도 통영 수군통제사 민한에게 보낸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수원박물관이 수집한 유물을 포함하여 다양한 영조어필을 한 자리에서 견주어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친필, 모각(模刻, 본떠 새긴 작품), 탑본(搨本) 등 여러 형태로 전하는 영조어필에 담긴 뜻을 새겨보고, 아울러 조선시대 여러 임금의 어필과 영조어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영조가 직접 쓴 탕평비 탁본과 경기도문화재자료 177호 <영조어필 벼루>가 공개되었다.
세류동에서 전시를 보러왔다는 진세영(52, 주부) 씨는 “영조임금이 성군인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글씨를 많이 쓴 줄은 몰랐다. 더구나 영조임금이 7살 때 썼다는 글씨 '송죽(松竹)'과 직접 쓴 탕평비 탁본도 보고 벼루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훌륭한 전시에 많은 사람이 와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 1742년(영조 18) 영조가 자신의 탕평택을 알리고 편당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세운 탕평비를 탁본한 것이다.
▲ <모년봉춘 심축유년(暮年逢春 深祝有年)>, 영조가 75살 되던 1770년(영조 46) 12월 19일에 곧 봄을 맞이하게 되자 자신의 장수를 자축하며 쓴 글씨. 노년의 필적임에도 필치가 당당하다.
어제(6월 5일) 들린 전시장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한산할 정도로 관람객이 적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어필들을 볼 수 있고, 영조 임금이 손수 써 세운 탕평비 탁본도 볼 수 있는 데 관람객이 적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수원박물관(031-228-4150)으로 문의하면 된다.
▲ <유제훈신 수서(諭諸勳臣 手書)>, 영조가 무신란 진압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린 유서다.
▲ 영조어필 벼루, 영조가 71살 되던 1764년(영조 40) 정월 초하루 연표가 새겨진 벼루
▲ 숙종어제어필칠언시, 인조어필오언시, 효종어필칠언시(왼쪽부터)
▲ 선조어필 석각인본, 대리석 위에 오목새김(음각)으로 새긴 것이다.
▲ 전시장 모습 1
▲ 전시장 모습2
▲ "영조어필"전 펼침막이 걸린 수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