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최석순(?~1925)1919은 만주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조직되었을 때 집서지단장(輯西支團長)으로 활동하였다. 최석순이 활동했던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되었다.
의병장들은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된 후 서간도 지역에서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역량을 기르던 중 3·1운동이 발발하자 이를 계기로 기존 단체를 통합하여 무장투쟁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대한독립단에서는 창립총회에서 창립선언문과 함께 전문 22조의 규칙을 통과시키고 다음과 같은 임원을 선정하였다.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白三圭), 자의부장(諮議部長) 박치익(朴治翼),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부참모장 박양섭(朴陽燮), 총참모 조병준(趙秉準), 참모 송상규(宋尙奎)·강규묵(康圭默)·조응걸(趙膺杰)·이정근(李廷根), 총단장 조맹선, 부단장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 총무부장 김평식(金平植), 부총무부장 강유상(康有常), 총무원 김일(金鎰)·한관모(韓寬模),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 재무 이병기(李炳基), 회계 홍주(洪疇), 사법부장 이웅해(李雄海), 교통부장 양기하(梁基瑕) 등이다.
최석순이 활동한 대한독립단은 이 시기 만주지역 대부분의 독립운동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무장투쟁을 통하여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무기 및 군수품을 구입하는 것은 절대적이었다. 이를 위해 군자금의 모집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대한독립단에서는 유하현 삼원보에 위치한 본부 및 국내, 서간도의 각 지단에 재무부를 설치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또한 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만주와 국내에서의 일본인 및 친일파 숙청 그리고 일제기관 파괴 등도 전개하는 한편 국내에 대한독립단의 지단을 조직하고자 노력하였다. 최석순은 1922년 8월에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여기에도 가담하였다.
대한통의부는 동년 8월 23일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와 그에 참여하지 못한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하여 이루어진 1920년대 전반기 남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이다. 대한통의부는 1923년 12월에 조직을 개편하여 보다 군사적인 면에 비중을 두었다.
당시 개편된 조직을 보면, 총장 김동삼, 비서과장 고활신, 민사부장 이웅해, 군사부장 이천민, 이용군 사령관 김창환(金昌煥), 부관 김창훈(金昌勳), 군수국장 맹철호(孟喆鎬), 군무국장 이종건(李鍾乾), 호위국장 문학빈(文學彬), 재무부장 오동진, 학무부장 이병기(李炳基), 법무부 검무국장 김신택(金信澤), 사법국장 현정경, 교통부 교통국장 황동호, 실업부장 변창근 등이었다. 최석순은 대한통의부에서 의용군 제2중대장으로 활발한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3년 최석순은 대한통의부를 탈퇴하여 참의부(參議府)에 참여하였다.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중대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참의부는 중앙의회를 가지고 군사와 민정을 아울러 통괄하는 단체였다. 최석순은 참의부 창설 당시 제2중대장으로,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특히 참의부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만육군(駐滿陸軍) 참의부(參議府)였다. 따라서 최석순은 임시정부를 지지하던 참의부의 참의장과 제2중대장이라는 요직을 담당함으로써 당시 민주공화제 체제와 삼권분립 체제를 지향한 진보적 성향의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석순은 1900년대 초 이래 남만주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독립전쟁론에 따라 직접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한 전형적 무장투쟁가로 고위 독립군 장령임과 동시에 특정 군주나 계급이 아닌, 일반 국민(민중)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 체제를 지향하고 실천하기 위해 구국운동에 투신한 지사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국가보훈천ㄴ 2005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자료: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