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뜻으로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바람을 일으켜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깨끗하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앙을 몰고 오는 악귀나 병을 쫓는다고 믿어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도 있었지요.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1세기쯤으로 추정되는 창원 다호리 고분 유적에서 부채 자루가 출토되어 일찍부터 부채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 후백제 견훤이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왕건이 축하 선물로 공작부채(孔雀扇)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대가 어사로 금강나루 살피던 지난 가을 繡斧前秋度錦津
어쩌다 바르고 너그러운 나무꾼 만났었지 何逢樵公仁
3년의 남쪽지방의 원님으로 어진 정치 베풀고서 三年棠化南州伯
10월에 떠난 사행길에 동지사를 맡았다오 十月程上价人
북경의 숙소는 매화가지에 잔설 쌓인 밤이었건만 燕館梅梢殘雪夜
덕승문 밖은 수양버들 흩날리는 봄이로세 門楊柳澹煙春
초대받은 문객은 회고시를 적잖이 지었어도 應邀詩客多懷古
주옥같은 시 구절 참으로 몇 수나 되었을지 幾獲龍下珍
▲ 이돈상이 소장하던 "연사(燕辭)"가 적힌 부채
이는 ‘연경에서 쓴 시’라는 뜻의〈연사燕辭〉인데 조선 말기 문신이었던 이돈상(李敦相, 1815∼?)이 가지고 있던 접부채에 적힌 시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돈상은 1864년(고종 1) 과거에 장원하여 바로 대사간에 중용되었고, 한성부판윤 등을 지낸 인물로 1866년에는 영건도감 (營建都監)에서 일할 때 근정문의 상량문을 쓴 사람입니다. 부채에 적힌 시는 사신으로 북경에 간 친구가 이돈상에게 보낸 3수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처럼 부채는 더위를 이겨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나 그림을 그려 넣어 후세에 훌륭한 서예작품으로 남아 있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