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강제성이 있는 곧 타율기능을 가진 “법(法)”이 없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겠지요. 하지만 본인이 아무리 착해도 다른 착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법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란 건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일반인은 다가서지 쉽지 않지요. 그래서 현대사회에선 변호사가 일반인을 대신해서 법에 관한 업무를 맡아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어땠을까요? 조선시대엔 법 정보가 모두 한자로만 되어있기에 양반들을 빼고는 다른 사람이 대신 법 관련 일을 해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일을 했던 사람들을 “외지부(外知部)”라고 불렀습니다. 외지부는 고려시대 노비 장부과 소송을 담당한 관청 “도관지부(都官知部)”에서 유래했지요.
▲ 김윤보(1865~1938)의 형정도첩(刑政圖帖) 일부, 백성들이 관에 소장을 내는 모습이 그려있다.(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정식 관원이었던 도관지부와 달리 외지부는 관원이 아니면서도 소송인에게 대가를 받고 소장을 대신 작성해주거나 법률 자문을 통해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품삯을 받고 대리소송을 하기도 했고, 사람을 부추겨 소송을 일으키거나, 법률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옳고 그름을 뒤바꾸어 송사를 어지럽히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임금이 내리는 문서까지 위조하여 사회적 비난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성종 때인 1478년 외지부의 활동은 전면적으로 금지었고, 들킬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모두 변방으로 쫓겨나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지요. 하지만, 외지부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대리소송은 없어졌지만 전해지는 “소지(所志, 관에 올리는 소장)를 보면 문서 양식에 맞추어 유려한 한문 문장을 구사해 일반 백성이 스스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이 간혹 있어서 외지부가 조선후기까지 여전히 숨어서 은밀하게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