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곡이란 무엇일까? “가곡(歌曲)”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따르면 “소규모 국악 관현(管絃) 반주에 맞추어 남성과 여성들이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聲樂)”이라고 풀이한다. 가곡은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에 속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그러나 가곡을 서양가곡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이런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가곡을 실제 들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어제 10월 30일 저녁 7시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다. 여류가객 강숙현의 가곡(정가)입문 30주년을 기념하는 “풍류단 시가인과 함께하는 강숙현의 정가와 노래 <풍류, 시절을 노래하다>(제6회 강숙현 독창회)”가 그것이다.
▲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열창하는 강숙현 가객
▲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청중이 직접 버나돌리기 체험을 하게 한다.
공연 전 풍물패가 등장한다.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는다. 특히 이들은 풍물 가락에 더하여 무동놀이와 버나돌리기로 청중들의 넋을 빼놓는다. 더하여 버나돌리기는 청중 한 명을 무대에 올려 직접 돌리는 체험을 하게 해 큰 손뼉을 받았다. 청중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공연에 직접 참가하는 재미를 보게 한다.
이어서 등장한 강숙현 가객은 스스로 곡을 설명하고 노래하며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쉽게 그리고 청중의 호응을 끌어내면서 말이다. 어렵고 따분하게 느낄 수 있는 긴 호흡의 노래 가곡을 청중들에게 더욱 가깝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반주는 여류가객 강숙현과 뜻을 같이해온 국악인들로 구성된 풍류단 시가인이 함께 한다.
1부 공연은 먼저 김영랑의 현대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를 노랫말로 하여 ‘상영산’ 피리연주에 얹어 부르는 “아심유강(我心流江)”으로 시작한다. “내 마음엔 강이 흐른다”라는 뜻으로 제목을 지었다는데 가객은 청중의 마음속에 강이 흐르도록 함인가? 이어서 여창가곡 가운데 ‘장진주’의 선율을 새롭게 편곡하고 독도에 관한 역사를 노랫말로 얹어 부르는 독도가곡을 강숙현ㆍ정마리가 함께 부른다.
▲ 강숙현 가객(오른쪽)과 정마리가객이 여창가곡 가운데 ‘장진주’의 선율을 새롭게 편곡하고 독도에 관한 역사를 노랫말로 얹어 부르는 독도가곡을 부른다.
▲ 박영기의 피리 반주로 "아심유강"을 부르는 강숙현 가객
그리곤 뜻밖에도 서양노래 “Amazing grace”가 공연장을 메운다. “Amazing grace”는 조선후기에 널리 불려진 ‘가곡’과 같은 5음계의 선율이라는데 가곡의 맛이 더해진 서양노래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어서 노래선율만이 전승되고 있는 12가사 중에 ‘수양산가’의 전통 노래선율에 새롭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주음악을 얹어 부르는 “바람의 꽃”(강숙현ㆍ정마리ㆍ박주영)과 사설시조 가운데 가장 빠른 박자의 노래인 ‘편수대엽’을 전통과 현대적 반주음악을 얹어 부르는 “꽃마음”을 열창한다.
이렇게 장식한 1부는 전통가곡의 음율에 현대적인 맛을 가미한 실험적인 노래들로 구성했다. 아직 가객도 새로운 실험이고, 청중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어서 어색한 면도 잠깐잠깐 보이지만 이러한 시도는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임에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제2부의 시작엔 하얀 한복 차림의 정마리 가객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대중가요인 ‘시조’ 가운데 평시조ㆍ우조시조의 전통 노래선율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주음악을 얹어 부르는 “청풍명월”을 노래한다. 그리곤 강숙현 가객은 1부와 달리 검정빛 우아한 한복을 차려입고 지름시조의 전통 노래선율을 현대적 음율 위에 새롭게 부르는 “사설연가”를 부른다.
▲ 하얀 한복 차림의 정마리 각객이 평시조ㆍ우조시조의 전통 노래선율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주음악을 얹어 부르는 “청풍명월”을 노래한다.
▲ 풍류단 시가인의 반주로 가곡과 시조를 부르는 강숙현 가객
이어서 지금까지와 다른 국악가요풍의 노래를 시작한다. 드라마와 영화의 OST “하망연”. “나가거든”. “인연” 따위를 국악기에 접목하여 부른다. 강숙현 가객은 국악가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목 상태가 안 좋아 걱정이라고 했지만 청중들은 특히 “나 가거든”에서 열광한다.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의 노래지만 강숙현 가객의 국악가요로 만든 노래는 또 다른 깊고 숙연한 맛을 선사했다.
“나 가거든 ”을 열창하면서 강숙현 가객은 무언가 슬픔이 북받쳤는지 목이 메고 눈물을 흘렸다. 예전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며 울컥했던 나는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이 먹먹해온다. 국악공연에서 특히 가곡 공연에서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청중들이 제청을 쏟아낸 것이다. 상태가 안 좋다며 엄살을 부리던 강숙현 가객은 못이기는체 다시 한 번 “나 가거든”을 혼신을 다해 부른다.
서울 갈현동에서 가곡을 들으러 왔다는 서인영(37, 회사원) 씨는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가곡의 멋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그것도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전통가곡을 부르는 가객의 노래를 통해서 들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다. 노래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가객을 보면서 얼마나 혼신을 다해서 부르는 것인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 "바람의 꽃"을 함께 부르는 박주영(왼쪽), 강숙현(가운데), 정마리 가객
▲ 혼신을 다해 열창하는 강숙현 가객
이번 공연은 전체 구성에 옥에 티도 보인다. 뿌리 깊은 전통가곡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 또는 서양음악과의 접목이 완전한 것도 아니어서 전반적으로 흐름이 느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해설자나 가객의 설명이 지루한 면이 있었던 것은 흠으로 지적될 만 했다. 차라리 1부를 전통가곡으로 채워 전통가곡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마당으로 만들고 2부는 전통에 현대의 옷을 입히는 새로운 시도를 했더라면 훨씬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가곡에 현대적인 멋을 입혀 청중들에게 다가가려고 제대로 시도한 적이 있는가? 그것도 강숙현 가객의 말처럼 무형문화재 신분도 아닌 상태로 말이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가곡을 현대에 제대로 정착시키는데 큰 몫을 할 것이다.
가곡 부르기 30년 만에 제6회 독창회를 연다는 강숙현 가객. 그는 무형문화재도 아니고 그저 가객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30년을 올곧게 가곡과 함께 하며, 현대인에게 조선시대 선비들의 슬기롭고 아름다운 노래 가곡을 전해주기 위한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던 한바탕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