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설 [1850~1906] 선생은 충남 홍성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남당 한원진의 학통을 잇는 이돈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과 교리를 비롯하여 동부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그때마다 상소를 올려 정국의 문제점과 방향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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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894년 갑오변란에 사직하고 낙향한 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나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김복한과 함께 상경하여 매국적을 처단하고 일본과의 전쟁을 감행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다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석방된 이후에도 민종식과 안병찬 등에게 의병 봉기를 권하는 등 항일투쟁에 매진하였으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순국하고 말았다.
선생은 척왜론과 대일결전론을 실천에 옮긴 관료이자 현실비판적인 유학자였다. 동시에 민족적 위기에서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항일구국투쟁에 헌신한 민족운동가였다. 이에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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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설(1850. 1. 24. - 1906. 4. 29.) 선생을 2015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자료: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