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踏破千山與滿山 : 천산과 만산을 돌아다니고
洞門牢鎖白雲關 :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
萬松嶺上間屋 : 많은 소나무로 고개 위에 한 칸 집 지으니
僧與白雲相對閑 : 스님과 흰 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
위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쓴 한시(漢詩) “산거집구(山居集句)” 곧 “산에 살며”의 하나입니다. 원래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새로운 시를 짓되 운자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작 이상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지요. 이 작품에는 떠돌이 삶을 산 자신의 모습과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라든가 “스님과 흰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라고 한 시구는 매월당이 뛰어난 시심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보물 제1497호 <김시습 초상>, 부여 무량사 소장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지요. 특히 그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들의 주검을 거두어 지금의 노량진에 묻은 사람이라는 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슬이 퍼런 세조의 위세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김시습이 주검 하나하나 바랑에 담아 한강 건너 노량진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배운 것을 철저히 실천에 옮기는 지식인이었으며, 그 결과 율곡 이이로부터 “백세의 스승”이라는 칭송을 들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