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11월 4일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러시아 타타르스탄 국립전통오케스트라 초청공연을 보았습니다. 타타르스탄은 러시아 내 타타르스탄공화국을 말합니다. ‘타타르스탄 공화국’이라면 러시아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니라면 대부분 생소할 것입니다. 타타르스탄 공화국은 몽고족의 후예인 타타르인들의 공화국입니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였을 때 러시아 지역에는 킵차크한국이 자리 잡지 않았습니까? 15세기에 그 킵차크한국이 쇠퇴하면서 몽고족의 한 일파가 카잔 일대에 카잔한국을 세웠는데, 이 카잔한국도 1557년 모스크바공국의 이반 4세에게 점령당하여 멸망하지요. 그러던 것이 1920년 카잔을 수도로 하는 타타르스탄 공화국이 생겨 과거 타타르인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카잔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710여km 떨어진 곳으로, 2018년 월드컵이 카잔에서 열립니다.
▲ 타타르스탄 국립전통오케스트라 연주 모습
▲ 콘트라베이스 역할을 하도록 크게 만든 악기, 바스 발랄라이카(Bas Balalaika)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는 이번에 타타르스탄공화국의 루스탐 민니하노프(Rustam Minnikhanov) 대통령의 방한에 맞추어, 한러 수교 25주년 기념 음악회로 우리나라를 찾은 것입니다. 전통오케스트라이니까 일반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자리는 러시아 전통 현악기인 돔라(Domra), 발랄라이카(Balalaika), 바스 발랄라이카(Bas Balalaika)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돔라와 발랄라이카는 전에 본 적이 있는데, 발랄라이카를 크게 확대한 것 같은 바스 발랄라이카는 처음 봅니다. 콘트라베이스 역할을 하도록 크게 만든 악기입니다. 이밖에도 아코디언 비슷한 바얀(Bayan), 하프 비슷한 치터(Zither)가 등장합니다.
팸플릿에는 ‘가슴을 울리는 러시아의 깊은 선율’이라고 쓰여 있는데,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더군요.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주제가 연주되고, 제가 대학교 때 즐겨 부르던 스텐카라친이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현을 타고 흘러나오는데, 아! 정말 제 가슴을 울립니다. 보통 바이올린으로 많이 듣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24번(Caprice No. 24)도 러시아 전통 현악기로 들으니 색달랐습니다. 저는 연주회 때 웬만하면 일어나서 박수치지 않는데, 이 날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는 저를 일으켜 세우는군요.
참! 제가 어떻게 하여 이 연주회를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을 안 드렸군요. 원래 이 날 저는 일주일 뒤에 캐나다로 돌아가는 제 중학 동창을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은혜 명창이 얼레빗 카톡방에 이 날 공연 표가 있다고 관심 있는 분은 신청하라고 올리셨더군요. 그래서 동창에게 이 얘기를 하니,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이 친구는 두말 않고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합니다.
▲ 본 공연 전에 무대에 나와 여러 버전의 아리랑을 열창하는 남은혜 명창
남은혜 명창은 타타르스탄 본 공연 전에 혼자 무대에 나와 여러 버전의 아리랑을 열창합니다. 남명창 자신이 공주아리랑 보존회 회장이기도 하고, 여러 장의 아리랑 음반을 내셨으며 아리랑으로 해외 공연도 많이 가셨으니, 이 날도 청중들에게 아리랑을 선사하시는군요. 이 날 남 명창을 통해 북간도 아리랑도 처음 들어봅니다. 우리 민족을 아리랑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북간도로 이주한 우리 민족이 거기에 맞게 아리랑을 변용한 모양입니다.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에서도 악기 연주만 하지는 않습니다. 소프라노 갈리모바 레제다(Galimova Rezeda)와 바리톤 세르게이 로마노프(Sergei Romanov)가 나와 홀로 또는 듀엣으로 오페라 아리아와 타타르 민속 노래를 부릅니다.
▲ 바리톤 세르게이 로마노프(Sergei Romanov)의 열창 모습
저는 예전에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창 유행할 때에 러시아 바리톤이 부르는 백학을 듣고, 러시아 바리톤에 매료되었는데, 이번에도 로마노프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깊은 목소리가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또한 갈리모바가 오페라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 중 ‘엘레나의 볼레로’를 부를 때에는 ‘아! 옥쟁반에 구슬이 굴러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휘자 아나톨리 슈티코프(Anatoli Shutikov)도 매력이 있습니다. 지휘가 힘차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슈티코프의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처럼 부드럽게 단원들의 음악을 이끌어내고 조화를 이루어 냅니다. 그래서인지 2006년에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공훈 예술가의 직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보통 오케스트라 연주할 때 보면 지휘자가 밟고 올라가 지휘하는 지휘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날 연주에는 그런 지휘자석이 안 보인다 했더니, 슈티코프는 한 자리에서 가만히 지휘하는 것이 아니고 왔다 갔다 하며 지휘하더군요. 연주 도중 어느 파트의 연주 부분이 나올 때에는 그 앞에 가서 연주자들과 눈을 맞추며 지휘하기도 합니다. 지휘자가 바로 앞에 오면 긴장될 수도 있을 텐데,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런 것에 익숙한지, 그러면 슬쩍 미소를 띠며 더 신이 나서 연주를 합니다.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는 청중들과의 교감에도 적극적이더군요. 연주 도중 몸을 이리 저리 흔들며 연주하기도 하고, 독주 부분에서는 독주 연주자가 일어나서 흥겹게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춤곡을 연주할 때는 앞줄에 앉은 발랄라이카 연주자 한 분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여성 청중 한분을 일으켜 세우더니 같이 춤을 추기도 하네요.
1부 마지막 곡으로 쇼스타코비치의 ‘The Second Waltz'를 연주할 때 지휘자 아나톨리는 우리로 하여금 동참의 손짓을 합니다.
▲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 바얀(Bayan) 연주 모습
이 곡은 앙드레 류(Andre Rieu) 오케스트라의 단골 메뉴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앙드레 류도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청중들의 동참을 유도하더군요.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의 연주 실황을 볼 때에, 이 곡이 나오면서 많은 청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고, 심지어는 통로로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참 흥겨웠는데, 이 날 저도 그 흥겨운 순간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중간 휴식 시간에 홀로 나오니 러시아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기네 조국의 오케스트라가 왔다고 하니까 보러 왔겠군요. 모처럼 동포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반갑겠지요. 서로 활짝 웃음으로 악수하고 기념사진 찍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저는 친구와 차 한 잔 하면서 얘기하다가 들어가는데, 이런! 벌써 2부가 시작되었네요. 보통 음악회 가면 시작 전에 종을 쳐서 알려주던데 여기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그 바람에 저희는 괜히 머쓱하여서 죄진 듯이 총총걸음으로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고 했던가요?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와 같이 한 꿈결 같았던 시간도 너무 짧게 끝나네요. 끝나고 남 명창을 모시고 공연 뒤풀이도 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남 명창은 지방 공연 일정 때문에 바삐 내려가야 했습니다.
공연장을 나와 건국대 일감호 호수를 따라 걷습니다. 일감호에 비치는 밤경치가 공연의 흥취를 더욱 촉촉하게 제 몸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 명창 덕분에 오늘 좋은 공연 보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