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검참판(檢參判) 안경(安璟)의 아들 안관후(安寬厚)·안인후(安仁厚)·안중후(安重厚)·안근후(安謹厚)·안돈후(安敦厚) 다섯 아들이 과거에 올랐으니, 청컨대 예(例)에 의하여 어미에게 쌀을 내려 주고, 아비에게 치제(致祭, 나라에서 대신이나 나라를 위하여 죽은 사람에게 제문-祭文과 제물-祭物을 갖추어 지내주는 제사)하소서.'라고 예조(禮曹)에서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위는 《세조실록》 6년(1460) 윤11월 29일(신미)의 기록입니다. 아들 다섯을 두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복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 하는 일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지요. 조선시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다섯 아들이 과거에 오르면 부모에게 해마다 쌀을 내리고, 돌아가신 부모는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하고 치제한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입니다.
▲ “오자등과(五子登科)”가 새겨진 수저집(국립민속박물관-왼쪽), "오자장원(五子壯元)"이 새겨진 실패(서울역사박물관)
이렇게 다섯 아들이 과거에 오르는 “오자등과(五子登科)”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큰 복 가운데 하나였지요. 따라서 “오자등과(五子登科)”라고 새긴 공예품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오자등과(五子登科)” 글씨가 새겨진 별전(別錢, 장식과 상징적인 의미로 만든 화폐)도 있었지요. 이런 공예품을 갖는다는 것은 꼭 다섯 아들이 과거에 오른다보다는 많은 자식을 두고 그 자식들이 과거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