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추사 김정희를 5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추사체 글씨와 그림을 배웠던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중인 출신의 화원이었습니다. 빼어난 그림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로 알려진 화원 조희룡은 벼루를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서재 이름도 ‘백 두 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란 뜻으로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벼루를 좋아했던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지는 염량세태(炎凉世態) 속에서 벼루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벼루는 군자를 가깝게 하지만 소인을 멀리한다고 생각한 까닭이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끼던 벼루도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홍매도(紅梅圖)
하지만 그의 눈앞에 벼루가 남아 있지 않았어도 매화를 잘 그렸던 그는 매화가 활짝 필 때면 그토록 아끼던 벼루를 꺼내 여전히 먹을 갈았지요. 평생 가슴속에 담아둔 벼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눈엔 보이지 않지만 가슴속엔 늘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묵묵히 말해주고 있지요. 시ㆍ서ㆍ화 삼절(三絶)의 예인 조희룡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 담아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