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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젖어멈(유모)”의 젖은 의료기구의 하나이자 의약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20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는 유모 곧 “젖어멈”이 아이를 키우는 게 하나의 풍습이고 문화였습니다. 아이는 “젖어멈”을 친어머니처럼 여기며, 젖어멈의 품성을 그대로 닮는다는 게 옛날 사람들의 믿음이었지요. 그 때문에 유모를 고르는 것은 왕실이나 가문을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특히 왕세자의 “젖어멈”은 왕세자의 첫 스승을 뽑는 의미였기에 유모나 보모로 부르지 않고, “자사(子師)”라 부르고, 임금의 “젖어멈”은 “봉보부인(奉保夫人)”이라는 종1품 벼슬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젖어멈”의 역할은 첫 스승과 함께 병이 걸리면 병을 치료하는 몫까지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젖어멈”을 고를 때는 “젖어멈”의 잔병이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건강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아이가 병에 걸리면 아이에게 약을 직접 먹일 수 없기 때문에 “젖어멈”이 아이에게 먹일 약을 대신 먹었지요. 그러면 아이는 유모의 젖을 통해 치료약을 간접적으로 먹게 됩니다. 따라서 “젖어멈”의 젖은 의료기구의 하나이자 의약품인 셈이었습니다.

 

   
▲ 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는 아이가 아프면 아이 대신 젖어멈(유모)이 약을 먹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때문에 “젖어멈”은 왕실과 양반가를 지탱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직업이었지요. 이에 왕실의 “젖어멈”은 그의 자식이나 남편에 대해서 속전(贖錢, 죄를 면하고자 바치는 돈)을 면제하고 면천(免賤,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되게 하는 것) 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양반가에서는 신부의 예단 품목에 유모의 예단도 들어있었지요. 조선 중기 인조 때 문신이자 당대의 이름난 학자였던 택당 이식(李植)이 남긴 유훈 가운데는 “젖어멈의 무덤에 한해 두 번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모는 왕가나 사대부가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자 특별대우를 받았던 직업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