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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춘분, 초벌갈이를 엄숙하게 하고 점심 먹는 날

[한국문화재발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춘분(春分)으로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추분점(春分點)에 왔을 때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 음양이 서로 반이라 함은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세계를 함께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 현명씨에게 사한제를 지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날 조정에서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에 작은 제사로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 겨울ㆍ북방의 신)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빙고에서 얼음을 꺼내기 전 겨울의 신 현명씨에게 사한제를 지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고려사(高麗史)》 길례(吉禮) 소사(小祀) 사한조(司寒條)에 “고려 의종 때 정한 의식으로 사한단(司寒壇)에서 초겨울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에 제사한다. 신위는 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왕골로 자리를 마련하며 축문판에 ‘고려 임금이 삼가 아무 벼슬아치[某臣] 아무개[姓名]를 보내어 공경히 제사합니다.’라고 쓴다. 희생 제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쓴다.”고 기록되었다.


조선시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예고(禮考)10 사한조(司寒條)에 “사한단은 동쪽 교외 빙실 북쪽에 있는데, 제도는 영성단(靈星壇, 농사를 관장하는 별에게 제사지내는 단)과 같고 현명씨에게 제사한다. 《오례의(五禮儀)》에는 계동(음력 12월)에 얼음을 저장하고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에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형법 공식 관리급가조(官吏給暇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벼슬아치들에게 이날 하루 휴가를 주었다.


이날 날씨를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물난리나 가뭄을 점치기도 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15 증보사시찬요(增補四時纂要)에 따르면,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이날은 어두워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해가 뜰 때 정동(正東)쪽에 푸른 구름 기운이 있으면 보리에 적당하여 보리 풍년이 들고, 만약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한다.


또 이날 구름 기운을 보아, 청(靑)이면 충해(蟲害), 적(赤)이면 가뭄, 흑(黑)이면 수해, 황(黃)이면 풍년이 된다고 점친다. 또 이날 동풍이 불면 보리값이 내리고 보리 풍년이 들며,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貴)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하였다.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가 고프다

 

   

▲ 추분엔 논이나 밭을 첫 번째 가는 애벌갈이를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춘분 무렵엔 논밭에 뿌릴 씨앗을 골라 씨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에서는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한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으며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가 고프다.’ 하였다. 또 니라 농사의 시작인 논이나 밭을 첫 번째 가는 애벌갈이 곧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음력 2월 중 춘분 무렵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바람의 신 곧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하며,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춘분 앞뒤 7일 동안을 '봄의 피안' 또는 '피안(彼岸)의 시기'라 하여 극락왕생의 때로 본다.


 

춘분,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 날

 

   

▲ 김홍도 "점심"(풍속도화첩>, 보물 제527호


춘분에 특이한 것은 겨우내 두 끼만 먹던 밥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다. 지금이야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고작이었다. 그 흔적으로 “점심(點心)”이란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간단한 다과류를 말한다.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 하지만, 왕실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작이었다. 보통은 음력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2월부터 음력 8월까지는 점심까지 세끼를 먹었다. 낮 길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겨울엔 두 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세 끼를 먹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한 까닭도 있다. 하지만, 춘분이 지나면 농번기가 닥쳐오기 때문에 일꾼들의 배를 주리게 할 수 없어서 세 끼를 먹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