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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오늘 안중근의사 서거를 우리는 기억하는가?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연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달렸다. 열차 안 중국인들은 해바라기 씨를 씹으며 무료함을 달랬지만 조선인 피를 받은 기자는 하얼빈이라는 세 글자가 찍힌 차표를 손에 쥐고 열 두 시간 내내 가슴이 아렸다. 이 길을 안 의사님도 열차로 달렸으리란 생각에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조국이 무엇이기에,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던진단 말인가! 2년 전 기자는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끝 모를 대륙의 열차 안에서 그렇게 안 의사의 삶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 전시실

안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역사 1번 플랫폼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지금도 하얼빈 역에는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를 처단한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거사 이후 안 의사는 곧바로 체포되어 뤼순감옥으로 떠나는 11월 1일까지 하얼빈에서 11일간 머물렀다.

   
▲ 안중근의사 기념관 안쪽 유리창에서 바라다 보이는 이토히로부미 처단 현장, 열차 앞 부분 바닥에 표시가 되어 있다.

2014년 준공한 하얼빈역사에 있는 안중근기념관에는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머문 단 열하루의 일정을 벽면 가득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기념관 유리창 너머로는 이토를 처단한 그 플랫폼이 대각선으로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곳에 서서 기자는 오래도록 하얼빈역 하늘을 응시했다. 그리고 땅을 바라다보았다. 하늘과 땅만이 알고 있던 침략국의 설움을 유독 그날은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그러나 안 의사는 절망하지 않고 침략국 일제에 저항했고 행동으로 거사를 이뤘다.

   
▲ 거사 직후 일본영사관으로 옮겨져 영사관 건물 앞에서 손발이 묶인채 찍힌 안중근 의사 모습. 오른쪽은 당시 일본영사관
   
▲ 안중근 의사가 잡혀 있던 구일본영사관 자리에는 현재 화원소학교가 들어서 있다.

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
6대주(大州)의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
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
독립만세 세 번 부르니 우리조국 살았다.

이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 선생이 안중근 의사 의거에 대해 쓴 시이다.

   
▲ 내 죽으면 이곳에 뼈를 묻어달라던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에 세워진 안중근의사 글씨의 "청초당" 돌비석

안 의사는 이토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불법무도한 일을 제 마음대로 하여 동양평화를 교란한 사실 등의 15개조의 죄상을 들어 이토를 논죄한 독립운동사의 큰 별이었다. 오늘은 106주기를 맞이하는 안 의사 서거날이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처럼 소중한 추모의 마음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