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0 (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4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사고사 가운데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9위인데 2013년에 견줘 조금 줄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나 기차, 그리고 비행기가 없었던 조선시대에 교통사고는 배가 가라앉아 죽은 것 말고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조선시대 사고사는 뜻밖에 벼락으로 죽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벼락”으로 검색하면 무려 1,239건이 나오는데 거의가 “아무 데서 아무개가 벼락을 맞았다.”입니다. 재미난 것은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년) 10월 4일 기록으로 전라도 영광 사람 김원기의 아내가 벼락에 기절하였다가 깨어났는데 말뚝에 벼락칼이 박힌 것을 보고 이를 임금께 바쳤다는 내용입니다. 또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년) 3월 13일에는 “삼각산의 소나무와 산기슭에 벼락이 치니, 해괴제(解怪祭, 나라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지내던 제사)를 행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로는 벼락도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어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세종임금은 벼락에 사면령까지 내리지요. 《세종실록》 세종 26년 7월 11일 기록에는 "내가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려 하나 덕이 부족하고 정치에 잘못이 있어서 백성들의 원망은 일어나고 가뭄이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하늘이 또 경계함을 보이어 영생전에 천둥 벼락을 치니, 내가 매우 두렵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마땅히 하늘의 꾸짖음에 답하여야 할 것이므로, 오는 7월 12일 먼동 틀 무렵부터 그 이전에 지은 죄로서 중대한 죄를 범한 자를 빼고는, 다 용서하여 죄를 면제한다."라고 나옵니다. 세종임금은 벼락에도 스스로를 꾸짖을 줄 아는 으뜸 성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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