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경복궁은 6년여의 공사 끝에 고종 9년(1872년) 중수되어 옛 위용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궁 경복궁은 얼마 가지 못해 일제로부터 유린당해 국권을 잃어버린 조선의 처참함을 상징하는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1915년)와 조선부업품공진회(1923년), 조선박람회(1929년) 때문이었지요.
경복궁 안에서의 ‘조선물산공진회’ 전에도 일제는 1907년 을지로 황금정 자리에 신축한 대동구락부에서 경성박람회를 열었습니다. 이 박람회는 일제가 생산한 상품을 조선에 선전하려는 것이었지요. 이것은 시작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 드디어 일제의 흉계를 펼칩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식민통치를 벌인 지 5년이 되는 해인 1915년 경복궁을 짓밟고 ‘조선물산공진회’를 연 것입니다.
![]() |
||
▲ 일제, 경복궁을 식민통치를 위한 선전장으로 썼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를 위해 일제는 르네상스 양식의 백색 전시관을 지었고 이 때문에 기존의 궁궐 건축물은 전근대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전락해버립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근정전 주의의 행각을 어구와 농기구를 전시하는 농수산 분관으로 씀으로서 조선왕조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공진회를 대표하는 제1호관을 근정전을 가로 막고 지은 것은 물론 공진회 입장권 도안 정면에 근정전 대신 제1호관을 자리 잡도록 해 경복궁의 주인이 더는 조선의 주인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박람회로 인해 조선왕조의 상징 경복궁은 대중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 |
||
▲ 경복궁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총독부박물관을 세워 조선 각지에서 강제 수집한 것들을 전시하는 이른바 물산전을 열면서 뽀얀 기생 포스터를 내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