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69년 울산광역시 신정동 학성이씨(鶴城李氏) 일가 무덤에서 1969년 출토된 중요민속문화재 제37호 유물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조선시대 한 문중의 남녀 일상옷입니다. 이 유물은 이천기(李天機: 1610∼1666) 무덤, 그의 부인 흥려박씨(興麗朴氏)의 무덤, 그리고 이천기의 셋째 아들 이지영(李之英)과 그의 부인 평해황씨(平海黃氏) 부부 합장묘에서 출토된 10점의 유물들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유물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광다회대(廣多繪帶)”와 “솜소모자(小帽子)”지요. “광다회대(廣多繪帶)”는
‘광다회(廣多繪)’라고도 불렸던 조선시대 남자들의 실띠[絲帶]로 관복(官服)이나 사복(私服)에 쓴 넙적한 형태의 띠입니다. 이천기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출토 당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으나 1997년 보수한 뒤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띠의 너비는 3㎝이며 본래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보수 뒤 양 끝에 달린 10㎝ 길이의 술을 포함하여 221㎝가 되었지요.
솜소모자(小帽子)는 이천기의 무덤서 2점이
출토되었습니다. 검은 파랑빛 고운 면포와 명주로 만들어진 것인데 머리 부분에는 세모꼴 6조각을 이어서 만들고 그 아래에 직사각형 두 조각을 이은
넓은 띠 조각을 둘렀습니다. 소모자 유물 2점의 크기는 같은데 머리 둘레가 68㎝이고 높이는 25㎝입니다. 그리고 면포 소모자에는 모자의 하단
테 부분에만 솜이 확인되고 모자 윗부분은 겉감만 남은 상태이며 명주 소모자는 전체적으로 솜이 두텁게 들어있으나 안감은 없는 상태이지요. 이
유물로 우리는 17세기 이후의 의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