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새는 한가로움을 좋아하여 골짜기만 찾아드는데(鳥欲有閑尋僻谷)
해는 편벽되기를 싫어하여 중천에서 광채를 더한다.(日慊偏照到中天)“
위 시는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 8. 4∼1943. 8. 3) 선생이 17살 때 의령군아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지은
시입니다. 선생은 어린 나이에도 가장 먼저 시를 써내 군수로부터 칭찬을 받고 후한 상을 받았습니다. 이 시를 보면 이미 백산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겨레를 위한 큰 인물임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고들 말합니다.
선생은 1916년 무렵 고향의 논밭 2천 마지기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하고, 뜻 있는 이들과 함께 부산 중앙동에 포목과 건어물 따위를 파는 백산상회를 세웠습니다. 소규모였던 상회는 1918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는데 이때 중요 출자자는 선생과 함께 경주 최부자집 주손 최준 선생, 경상우도관찰사를 지낸 윤필은의 아들 윤현태 선생이었지요. 이
백산상회는 일제의 눈을 가리는 구실이었고 실제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여 중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창구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 뒤
최준 선생에게 독립운동자금 장부를 보여주며 백산상회의 역할에 큰 고마움을 표했다고 하지요.
선생은 백산상회 운영 말고도 중외일보를
발행하며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1942년 일경에게 체포되어 9달 동안 혹독한 고문과 회유를 받았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는데 1943년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출감한지 3시간 만에 만주 목단강성에서 순국했습니다. 오늘은 안희제 선생이 치열한 항일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뜬 날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백산상회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