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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65살의 나이로 서울역 폭탄 의거를 주도한 강우규 의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37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만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는 1920년 11월 강우규 의사가 사형을 앞두고 대한의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강우규 의사는 65살의 나이인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역(서울역)에 도착한 사이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져 3ㆍ1만세 운동의 열기를 되살렸지만 이 일로 끝내 순국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강 의사는 1885년 함경남도 홍원(덕천) 출신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강탈당하자 식구들을 이끌고 북간도로 건너가, 한인촌을 건설하고 학교를 세우는 등 민족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뒤 3ㆍ1만세 운동 직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그때 신임 총독이 부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러시아로부터 영국제 폭탄을 구입하여, 1919년 6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 8월 4일 서울에 도착했지요.

그리고 9월 2일을 거사 날로 잡은 강 의사는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서 허리춤에 차고, 사이토 총독을 환영 나온 군중 틈에 섞여 있다가 사이토가 역에서 나와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폭탄을 던져 거사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 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의 길을 걷게 되는데 강 의사는 순국 직전 “단두대 위에도 봄바람은 있는데 (斷頭臺上 猶在春風),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 (有身無國 豈無感想)”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97년 전 65살의 나이로 구국의 최일선에 섰던 강우규 의사의 의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