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스님은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이 마비되었지만 외팔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여음적”을 손수 만들고, 연주법을 개발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님은 정악대금으로는 참으로 드물게 14번째라는 독주회를 연다.
무대가 열리자 먼저 이삼스님은 영산회상 중 세 번째 “세령산”을 독주한다. 스님은 이 곡을 “연인이 헤어질 때 가다가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고 하는 느낌이다.”라고 했다는데 눈을 감고 들어보니 정말 스님의 설명은 기가 막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정악에 이렇게 속세의 얘기가 끼어도 될까?
이날 공연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대금과 범패의 병주였다. 스님의 “영산회상” 대금 연주와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가 종성스님의 소리로 울린 것이다. 쉽게 들을 수 없는 ”범패“, 게다가 대금과의 병주는 내게 신비롭게 다가왔고, 둘의 소리가 이렇게 기막히게도 어울릴 수가 있었다.
역시나 가을에 잘 어울린다고 하는 대금독주 청성곡(淸聲曲)도 빠질 수 없다. 맑고 청청한 소리를 길게 뽑아낸다고 청성곡(淸聲曲)이며, ‘청성자진한잎’이라고도 부르는 이 곡은 듣는 이의 마음을 가을하늘처럼 청정하게 해준다. 고인이 된 녹성 김성진 명인의 탁월한 연주가 오늘 이삼스님을 통해 다시 환생된다.
또 “여민락 초장”과 “평롱”은 스님의 대금과 윤문숙 국립국악원 정악단 지도단원의 해금 그리고 조유희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의 양금 합주로 연주된다. 흔히 볼 수 없는, 우리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재료가 아닌 금속줄을 쓴 양금의 영롱한 음색으로 운치를 더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대금 독주곡으로 인기가 있는 평조회상 중 “상영산”이다. 장엄한 가운데 그윽하고 미려하다는 “상영산”, 스님의 진가가 드러나는 연주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신라 때 만들어진 신비한 피리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데 낮이면 갈라져서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 되는 신비한 대나무로 만들었단다. 이 만파식적을 불면 가뭄에는 비가 오고, 홍수에는 비가 그치며, 백성의 만병이 낫고, 높이 치는 파도가 가라앉으며, 신라를 향해 왔던 적병이 물러갔다고 한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이때 이삼스님은 공연에서 세상의 평화를 안겨준다. 스님의 대금은 이 시대의 만파식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