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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실내악단 예랑(藝娘)의 “또 다른 시작 Ⅱ”

[국악속풀이 28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한국문화의 집에서 가졌던 <예랑>의 발표회 이야기 <또 다른 시작>이다. 예랑(藝娘)이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낭자들이란 뜻으로 2000년 전후에 고 백인영 명인이 제자들의 가야금 실력의 연마와 무대경험을 위해 만든 실내악단이라는 이야기, 그 해 창단연주회는 기존의 산조나 민요, 고전적 분위기의 창작곡에 머물지 않고, 각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레퍼토리로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갈채를 받았다는 이야기, 백인영은 제자들에게 손재주만을 전해주는 선생이 아니라, 예술가의 안목이나 다양한 음악적 경험, 무대 경험까지 생각해 주었던 훌륭한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백 명인과 가깝게 지내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EBS 라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국악프로그램을 2~3년 함께 하면서 부터였으며 당시 김청만은 장단으로, 백인영은 아쟁이나 가야금으로 노래반주를 하였는데, 출연자에 따라 순간적으로 조율하며 반주하는 모습에 감탄했다는 이야기, 그는 음악적 끼를 타고 났고 어려서부터 전속음악단체에 소속되어 음악적 경험을 쌓아 왔기에 그의 음악은 남달리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즉흥성이 강하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예랑 실내악단을 대학이나 연주회에 초청하기도 하고, 미국의 UCLA나 중국의 연변대학 등에도 동행해서 무대를 만들곤 했다는 이야기, 예랑이 오랜 침묵을 깨고 <또 다른 시작>으로 발표회를 준비했으며, 이민영을 비롯하여 어렸던 제자들이 이제 30대 초, 중반이 되어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무대를 만들고 손님을 청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백인영의 제자들이 스승의 음악을 이어가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출이어서 너무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갔다.



이 날 발표회에는 모두 5곡을 연주하였는데, 첫 곡은 단원 전체의 합주로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 산조>였다. 원래 이 산조는 남도 무속 시나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음악으로 다채로운 변청(變淸)이 출연하다가 다시 본청으로 되돌아오는 묘미를 담고 있는 점, 판소리의 경드름 부분이 삽입되어 있어 이채롭고, 또한 아래줄에서 윗음을 다양하게 눌러 내는 역안(力按)의 주법이 많이 쓰인다거나, 퉁기는 발음보다는 엄지손가락으로 미는 발음법이 많아 무게가 깊게 느껴지는 점 등을 특징으로 삼고 있는 산조이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 온 연주답게 예랑단원 전체가 연주하면서도 마치 혼자 연주하는 듯한 안정된 호흡을 보여 주었고, 중간 중간에 솔로와 제주가 서로 격하게 또는 유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 흘러갔다. 우리가 흔히 산조 음악을 이야기 할 때, 긴장과 이완의 음악미를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음악이라고 하는데, 바로 오늘의 가야금 산조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를 긴장도 시키고 또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두 번째는 <낙엽>이란 창작곡이었다. 초연은 예랑 대표로 활동하는 이민영이 18현으로 연주하였으나, 이번 무대에는 여기에 25현금을 더해 3중주로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마치 낙엽의 쓸쓸한 최후를 나타내는 부분에서는 음 하나 하나에 생명의 가치를 표출하듯 외양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신정혜의 노래와 임정호의 피리, 그리고 배영은의 신디 연주로 <노을바람>은 판소리 류의 격정적인 노래와 부드러운 피리의 소리가 신디와 묘한 어울림을 남긴 곡이었다. 또한 253중주의 <비애>라는 곡은 김해리, 박기연, 차혜림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 3인의 호흡이 잘 어울린 연주였다. 해맑은 사랑을 순수한 정열로 바친 여인이 사라져 간 그 님과의 추억을 그리듯 아련한 분위기를 묘사해 주었다.



이날의 마지막 곡은 <백인영류 25현 산조 3중주>였다. 원래 가야금은 12현이다. 우륵이 신라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악기가 바로 12현 가야금인 것이다. 그런데 산조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12현 가야금을 길이와 폭을 줄여 만들고 이를 <산조가야금>으로 불러온 것이다. 자연히 산조가야금과의 구별을 위해 종래의 12현을 <법금>, <정악가야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하여튼 120여 년 전부터 산조음악이 잉태되고, 산조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 작은 체제의 12현 가야금이 바로 산조가야금인 것이다. 과거에도 산조음악은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백인영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25현 악기로도 산조가 가능하다는, 아니 어찌 보면 25현의 다현금으로 또 다른 산조의 맛과 멋을 제시해 보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선 것이다. 진정한 평가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지겠지만, 엇박 장단의 멋이나 독특한 시김새의 처리는 산조음악의 또 다른 맛을 선보였다는 중론이다.

공연 도중, 잠시 고 백인영을 회고하는 순서가 있었다. 사회자의 요청에 의해 나는 무대 위에 올라가 백 명인을 알게 된 배경에서부터 그와 함께 지내면서 인상에 남는 이야기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연예와 오락, 사극이나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는 이야기, 클라리넷의 길옥윤, 기타의 신중현, 대금의 이생강, 등과 국풍 80에서 세인을 놀라게 했던 이야기를 했다.



또 백인영 앞에서 함부로 가야금 타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어느 원로의 이야기, 호암아트홀에서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을 때, 마치 선생이 환생하여 연주한 음악회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 즉흥적 연주에 뛰어난 명인, 세계의 어떤 음악도 그의 가야금이나 아쟁은 재현이 가능했다는 이야기, 혹자는 그를 전통보다는 국내외 대중가요나 퓨젼을 즐겨 연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으나 내가 알고 있는 백인영은 항상 전통음악을 먼저 연주할 정도로 전통을 중시한 연주자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제 백인영이 떠나가고 그의 음악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예랑> 실내악단이 선생의 음악을 올바르게 이어가기 위한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하는 것은 반갑기 도 하려니와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예랑 실내악단이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기 바라고, 단원들 하나하나가 모두 국악계의 참된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예쁘고 착한 제자들이 기특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