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1395년) 4월 19일 “최무선의 졸기”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1401년) 윤3월 1일에는 “고(故)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최무선(崔茂宣)은 처음으로 화약(火藥)을 제조하여 능히 해구(海寇)를 제어하였으니, 실로 국가에 공이 있습니다. 그 아들 해산(海山)도 또한 마땅히 벼슬을 주어 쓰도록 하여야 합니다."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화약을 발명하고, 이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어 왜구를 물리친 고려 후기 무신이며 과학자인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의 공을 조선의 조정이 인정한 것입니다. 사실 권율장군이 2,300명의 군사로 왜군 3만여 명을 9차례에 걸쳐 격퇴한 행주대첩도 ‘뛰어난 화차가 있었기에 승전보를 남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전함에 배치되어 왜선에 큰 타격을 입힌 천자총통은 사정거리가 약 1.6킬로미터에서 2.16킬로미터나 되었기에 300미터에 불과한 일본의 대통을 압도해 대승을 거둘 수 있다고 하지요. 따라서 첨단 화약과 무기를 개발해 조선군을 무장시킨 최무선은 위대한 과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