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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종묘제례악”의 보전, 이왕직아악부의 피눈물 나는 노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9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종묘제례”(宗廟祭禮)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데, 이 종묘제례 때 연주하는 음악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그 중요성 때문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오른 뒤,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묘제례악이 지금까지 전승되는 데는 큰 수난을 겪어왔지요.

 

원래 조선왕조 때는 이 종묘제례악을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인 장악원(掌樂院) 악공들에 의해서 연주되어 왔습니다. 이 장악원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에 교방사(敎坊司)”로 이름이 바뀌고 구성원의 숫자는 무려 772명까지 늘어났지요. 그러나 고종이 강제 폐위된 이후 305명으로 줄어들고 1910년 일본이 강제합병한 뒤엔 장악원을 없애고 대신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를 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성원도 종묘제례악 연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도 안 되는 57명으로 대폭 줄였지요.



 그러나 조선의 마지막 악공들은 종묘제례악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우선 1919아악부원양성소를 두어 악생을 모집해 교육했고, 재능 있는 악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숙식을 제공하고 수당으로 월 15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7원이었으니 수당치고는 적지 않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수석졸업자에게는 30원의 졸업상금까지 주었다 하니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그런 피나는 노력 덕분에 우리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품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